설경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우리들이 가장 경계해야 될 죄, 지옥으로 바로
떨어지는 죄를 무관심의 죄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무관심의 죄에 대한 설명을 하시면서 부자와 라자로와 비유를 예로 들어서
설명을 해 주셨는데 부자집 문 앞에 라자로라고 하는 거지를 데려다 놓았는데
이 라자로는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는 앉은뱅이에다가
온 몸에는 부스럼이 나서 그 부스럼에서 흘러내리는 고름을 들개들이 와서 핥아도
그 들개를 물리칠 힘조차 없는 ...그야말로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꼼짝도 못하는
무력증에 빠져 있는 불쌍한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을 합니다.
유대인 부자는 밥 먹기 전에 물로 손을 닦지를 않고 식빵으로 손을 닦는데
손 닦은 식빵부스러기를 상 밑에 던지면 집에 기르던 개들이 와서 그것을 주워 먹습니다.
개들이나 먹을 수 있는 그 식빵쪼가리를 거두어다가 누구를 먹였습니까?
라자로를 먹였어요.
라자로는 그 부잣집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를 간신히 얻어먹으면서 연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부자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저 거지 저놈은 그래도 우리집 문 앞에라도 사니까
내가 비록 손 닦고 버린 식빵쪼가리라도 먹으면서 내 덕을 보고 사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하느님 앞에 축복을 많이 받을 자격이 있다!’
둘 다 죽었거든요.
죽고 난 다음에 부자는 어디로 갔어요?
천당을 갈 줄 알았는데 지옥으로 떨어졌어요.
그리고 라자로는 어디로 갔습니까?
천당으로 갔어요.
부자가 왜 지옥에 갔겠습니까?
부자는 지나다니면서 자기 집 문 앞에 앉아있는 라자로를 발로 걷어찬 적도 없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면서 '내 집 문 앞에서 당장 꺼지거라...'
한 적도 없고, 더럽다고 물로 끼얹어 내쫓은 적도 없어요.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악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선을 적극적으로 못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착각하는 게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게 뭐냐?
세례 받고 주일미사 참례하고, 남한테 해로운 일 안 끼치고, 죄 안 짓고, 도둑질 안하고,
간음 안하고...그러면 천당 가는 줄 알아요.
다시 말하면 그런 것은 소극적인 선이다.
우리들이 천당을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얘기하신 적극적인 선을 베풀어야 한다.
남한테 해 끼치지 않고, 도둑질 안하고,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고, 우리 가족 알콩달콩
재미있게...아무튼 내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산다.....그것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내세를 믿지 않기 때문에 자기 양심에 따라서 그렇게 살수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얘기하신 적극적인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소극적인 선을 벗어나서
적극적인 선을 베풀어야 한다!
착하게만 살아서 천당 간다..이건 큰 오산입니다.
절약하는 것, 아끼는 것, 그것 가지고 지한테 쓰여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먹을 것 안 먹고, 쓸 것 덜 쓰고, 그걸 절약해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곳에, 남을 위해, 이웃을
위해 쓸 때 그것이 참다운 의미의 절약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항상 머릿속에 생각해야 될 선의 개념은 남한테 해꼬지 안한다는
그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베풀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이 무관심의 죄는 지옥에 갈 만큼 큰 죄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전통적으로 1월의 마지막 주일은 사회복지주일로써 2차 헌금을 합니다.
우리들이 하는 2차 헌금은 전 세계에서 우리 한국 천주교신자들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한테 쓰여집니다.
6.25 이후 적어도 2~30년 동안은 100% 외국신자들의 모금을 가지고
한국천주교회를 이끌어갔습니다.
여기 진천성당만 하더라도 서양신부님들이 많이 와 계셨지요.
7천 평이나 되는 이 큰 부지가 신자들이 돈 내서 산거예요?
아니지요.
미국신부님들이 미국에 가서 강론해가지고 모금해서 이 땅 산거예요.
이 성당 짓는 것도 여러분들이 돈을 내서 지은 겁니까?
어린이집, 수녀원, 모두가 여기 근무하던 메리놀신부님들이 성당마다 다니면서 구걸해서
얻어다가 이 땅을 사고 성당 터를 마련해 놓은 거예요.
6.25 후에 구호물자, 밀가루...거의가 천주교회를 통해서 들어왔지요.
그래서 밀가루신자라는 말도 생겼어요.
6.25 직후에 밀가루 타먹고 옷 얻어 입기 위해서 머리만 들이밀고 세례 받았다가
먹고 살만하니까 떨어져 나간 신자도 많지요.
수십년 동안 한국천주교회는 서양교회의 그 원조로 살았던 겁니다.
20여년 전부터 한국경제가 발전이 되고 살만하니까 이제 반대가 되었지요.
국가와 종교, 이념에 관계없이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우리 천주교신자들은 그 모든 곳에서 굶주리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옛날에 받았던 은혜를 생각하면서 1월 마지막 주일을 사회복지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진천신자가운데는 밥을 굶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우리 신자들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살립니다.
전 세계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기아 속에 헤매고 있지요.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의 60억 인구 가운데 40억 명이 극도의 빈곤한 삶을 살고 있고
그 중에 15억 이상이 굶주리고 있다고 그럽니다.
12억의 사람들이 하루에 미화 1달러, 1200원도 채 못 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28억의
사람들은 하루 생활비가 약 2불, 단 2400원 정도의 돈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매일같이 4만 명의 어린 아이들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내가 말하는 이 순간에도 굶어 죽어갑니다.
150년 동안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전쟁이나 혁명 때문에 죽은 사람보다
지난 5년 동안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이 그 배 이상이라고 그럽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 가는가!
잘 사는 나라의 20%가 전 세계 재화의 86%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20%의 가난한 나라들이 나머지 재화의 1.3%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더 기가 막힌 이야기는 세계 3대 부자의 재산을 합치면 가장 가난한 48개 나라의
1년 동안 국민 총생산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다고 합니다.
그럼 식량이 없어서 굶어 죽느냐!
전 세계에서 추수하고 있는 식량을 가지면 굶어 죽어가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먹고도 남는다고 그래요.
그런데 왜 굶느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곡물을 누가 먹어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40%를 잘 사는 나라에서 기르는 짐승이 먹어요.
육식을 하기 위해서 키우는 소와 돼지들이 그걸 먹어치워요.
엄청나게 많은 곡식을 생산해도 거의가 짐승들이 먹기 때문에
짐승이 사는 대신에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거예요.
왜 하느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계가 이렇게 변했을까?
마더데레사 수녀님은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바를 나누지 않기 때문이며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십시오...나누십시오...나누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한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나라들은 지난 한해만 해도 70만이 넘었습니다.
이 나라 가운데는 갑작스런 재해 때문에 구호를 요청하는 나라도 있고
만성적인 가난 때문에 해마다 구호요청을 하는 가난한 나라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0~40절을 보면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너희가 여기 있는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아 준 그 사람이 바로 나(예수님)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이 거지로 변장하셔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의 사목헌장 69항을 보면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그대가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네가 필요 이상의 것을 두 개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다면
너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을 훔친 것이다.
내가 두 개 중에 하나는 쓰지도 않고 있다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친 것이다.
이것이 현대신학이 가르쳐 주는 사회윤리입니다.
전 세계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힘이 닿는 대로 도와주는 것은 하느님백성 전체의 의무입니다.
자선이라고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명령이라고 하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아침을 먹으면서 현창체험이라고 하는 것을 TV에서봤습니다.
개그우먼 여자가 탁아소에서 봉사를 하는데 거기 담당자가 하는 말이
방글라데시에서는 아이를 사고판대요.
일부다처제라 쫓겨난 여자가 부지기수인데 직장에는 나가야 겠고....
처음에는 ‘탁아소를 하니까 아이를 데리고 오시오.’
해도 장사꾼인줄 알고 안 데려 오더래.
그 나라에서는 한국 돈으로 만원만 주면 애를 사고파는 그렇게 가난한 나라예요.
땅덩어리가 우리나라의 2/3밖에 안되는데 인구는 1억 3천만명, 바글바글대는 거지요.
그 나라에도 한국 천주교에서 원조가 가고 있어요.
인도, 파키스탄, 동티모르, 아프카니스탄.....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가 4백만 명인데 얼마정도 보냈느냐?
신자 1인당 평균 260원, 260원이 큰돈이에요? 작은 돈이에요?
요즘 애들한테 500원 줘도 안 받아요.
1인당 260원씩밖에 안 보냈다니까 사실 자선을 베푼 것이 아니에요.
우리들이 만원만 내면 아이 한 명을 살릴 수 있어요.
선교단체가 밀거래하는데 가서 아이를 사가지고 온대요.
‘차라리 나한테 달라!’
그 아이들의 생명을 10명, 20명씩 사서 키운대요.
우리들은 사회복지주일을 지내면서 구체적으로 두 가지 노력을 해야 됩니다.
첫 번째, 기도 중에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평소에 묵주기도 1단은 굶주리고, 헐벗고,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항상 바쳐주어야 되요.
두 번째로는 생활 속에서 기억해야 됩니다.
물이라든지 음식찌꺼기 생활필수품을 아끼며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밥 먹고 버리는 찌꺼기 많지요?
그것도 목 먹고 죽는 사람이 많아요.
오죽하면 성서에 나오는 라자로는 부자가 손 닦고 버린 빵쪼가리
먹고 살았겠습니까?
사람 먹을 수 있는 것, 버리는 것은 다 죄지요.
절약하셔야 되요.
절약해서 모은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선행을 베푸는데 써야 됩니다.
기도와 선행의 결과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됩니다.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나와 비슷한 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바로 나다.
지금 굶주리는 자가 바로 나다!
지금 죽어가는 자가 바로 나다.
사회복지주일을 지내면서 굶주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사랑이 없기 때문에,
나누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하느님 앞에 우리들의 삶을 반성하고 적극적인 선을 베푸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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