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신약 여행48: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사도 10,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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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5-13 | 조회수5,712 | 추천수0 | |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48)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사도 10,15) 믿음 가진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길 열렸다
- 베르나르도 카발리노 작 ‘성 베드로와 코르넬리우스 백인대장’ 부분, 1640년대, 로마 국립근대미술관, 이탈리아.
“카이사리아에 코르넬리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부대라고 불리는 군대의 백인대장이었다.”(사도 10,1)
사도행전 10장 전체는 베드로와 코리넬리우스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코르넬리우스는 이방인으로, 로마의 군사를 이끌던 지휘관이었습니다. 복음서에서도 간간히 등장하는 백인대장은 로마의 군대에서 백 명의 군사를 이끌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는 이방인 출신이었지만 이미 신심을 가진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내용에서 차이는 있지만 코리넬리우스의 이야기는 루카복음(7,1-10)에서 전하는 백인대장의 이야기와 비교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특이한 점은 베드로와 코르넬리우스 모두 환시를 통해 서로 만나게 된다는 점입니다. 백인대장은 환시를 통해 베드로를 찾아가라는 천사의 말을 따릅니다. 베드로 역시 환시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는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것이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 그 안에는 “네발 달린 짐승들과 땅의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생명체를 일컫는 표현입니다.(창세 6,20)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유다인들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의 구분은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정결법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속된 것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했으며 이것은 유다인들의 특징처럼 표현됩니다.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는 말씀처럼 유다인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거룩함을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줍니다.
음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깨끗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철저하게 구분했고 정결한 짐승만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레위 11장 참조) 베드로는 말합니다. “저는 무엇이든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에게 주어진 환시는 사도행전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이제 구약의 법은 예수님에 의해서 새롭게 됩니다. 복음서에서도 이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마르 7,18-23) 더 이상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분은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음식에 대한 내용만은 아닙니다. 먹을 수 있는 짐승에 관한 이 환시의 의미는 선택받은 민족과 그렇지 못한 민족에게로 확장됩니다. 정결한 것과 속된 것의 구분은 유다인들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었고, 이 선택은 민족들에게도 해당됩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뽑힌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 곧 그 외의 민족들과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환시 이후에 코르넬리우스를 만난 베드로는 이렇게 설교합니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하느님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사도 10,34-35)
더 이상 민족들 간의 구분과 차이는 없습니다. 구원은 믿음을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행한 베드로의 설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역시 복음 선포의 내용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사도 10,39-40) 여기서 베드로는 ‘십자가’라는 표현 대신 ‘나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신명기(21,22-23)를 생각하게 합니다. “죽을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을 나무에 매달 경우, 그 주검을 밤새도록 나무에 매달아 두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그날로 묻어야 한다.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에게 십자가는 이런 의미였습니다. 하느님의 저주인 십자가에서의 죽음 그리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일으킨 사건인 부활. 서로 조화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이것이 초기 교회의 믿음이었고 선포였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5월 14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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