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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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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5-30 조회수11,181 추천수0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테트


세상을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느님

 

 

히브리어의 아홉 번째 알파벳은 테트다.

 

- <그림1> 테트의 고대 형태.고대 이집트어 네페르(nfr 왼쪽 첫째 글자)는 단순화되어, 십자가 옆에 원을 그리는 3획의 문자가 되었다.(왼쪽 두 번째) 그런데 점차 원을 그리고 안에 십자가 모양을 긋는 형태가 되었다.(붉은색) 원 안에 점을 찍어 2획으로 표현한 형태도 보이는데(주황색), 그리스어의 테타와 무척 비슷하다.

 

 

“좋다”의 발전

 

이 글자는 ‘좋다’, ‘선하다’, ‘기쁘다’, ‘아름답다’, ‘훌륭하다’, ‘회복하다’ 등을 뜻하는 고대 이집트어의 네페르(nfr)에서 기원했다. 네페르는 무척 긍정적인 의미를 지녔기에 ‘네페르티티’처럼 인명에도 자주 쓰인다. 이 글자의 가장 오래된 형태를 과거에는 ‘현악기’의 일종으로 보았으나, 요즘은 ‘식도와 심장’ 또는 ‘심장과 장기’로 본다. 이 글자는 왼쪽의 길쭉한 부분과 오른쪽의 둥근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른쪽의 둥근 부분은 양(羊)의 심장이 지닌 특징을 모방했다. 네페르는 <그림1>처럼 누워있는 형태도 있지만 서 있는 모습으로 자주 나온다. 시나이 반도에서 출토되는 글자는 단순화되어 왼쪽의 길쭉한 십자가 모양과 오른쪽의 원만 남았는데, 간단히 3획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십자가를 긋고 오른쪽에 원을 그리다가, 점차 십자가나 ×자를 긋고 그 위에 그냥 원을 그린(또는 원을 그리고 십자가나 ×자를 긋는) 형태로 발전하여, 마치 둥근 방패 같기도 하고 바퀴 같기도 한 모습으로 고대 셈어 알파벳에 자리를 잡는다. 원 안에 점을 찍어 2획으로 표현한 형태도 보인다. 일부 학자는 이런 모양에 근거하여 이 글자가 ‘물레’ 또는 ‘(물레방아나 물레가 있던) 구역’을 표현한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이 글자는 아람어 계통에서 더욱 단순화되어, 원을 그리다가 원 가운데로 크게 삐침을 표현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쓰면 필기구를 한 번도 떼지 않고 테트를 그릴 수 있다. 이 모양에서 히브리어의 테트가 나왔다. 한편 고대 그리스어 알파벳 테타(theta)는 원 안에 선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고대의 형태를 잘 보존했다. 테타라는 이름은 셈어 테트(tet)에 어미 ‘-아’(-a)를 덧붙인 것이다.

 

<그림2> 테트의 발전.아람어 계통에서 이 글자는 원을 그리다가 원 안으로 크게 삐침을 표현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렇게 되면 필기구를 떼지 않고 1획으로 그릴 수 있다. 이 모양에서 현대 히브리어의 테트가 나왔다.(파란색) 한편 그리스어 테타(theta)의 대문자와 소문자는 원 안에 선을 표현한 고대 셈어 알파벳의 형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초록색)

 

 

“좋다”의 의미

 

히브리어 테트로 시작하는 대표적인 낱말을 꼽으라면 단연 토브라고 할 수 있다. 토브는 구약성경 히브리어에서 가장 긍정적인 의미의 낱말일 것이다. 토브는 원초적인 ‘좋다’의 뜻이다. ‘심장이 토브하다’는 ‘마음이 흥겹다’(판관 16,25) 또는 ‘기쁘다’(에스 5,9)는 뜻이다. 토브한 날에는 토브하게 지내라(“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코헬 7,14)는 말씀에서 보듯 토브는 행복이었다.

 

예쁜 것도 토브라 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 아기가 토브한(잘생긴) 것을”(탈출 2,2) 보았다고 했고, 다윗도 “토브한(잘생긴) 아이였다.”(1사무 16,13) 또한 토브는 느낌이나 감정에서 그치지 않고, 쓸모 있고 좋은 것을 의미하였다. 일찍이 하느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백성을 이끌고 가실 원대한 계획을 생각하실 때부터, 그 땅은 ‘토브한 땅’(좋은 땅, 탈출 3,8 등)으로 불렸다.

 

- 토브.‘좋다’는 의미의 형용사로서 구약성경 히브리어에서 가장 긍정적 의미의 낱말이랄 수 있다. ‘좋다’, ‘흥겹다’, ‘아름답다’, ‘행복하다’, ‘선하다’, ‘옳다’ 등으로 옮긴다.

 

 

상대방의 말에 동의할 때도 토브를 썼다. ‘너의 말이 토브하다’는 “네 말이 옳다!”(1사무 9,10) 또는 “그것이 좋겠습니다”(1열왕 18,24) 또는 “좋겠습니다”(신명 1,14) 또는 간단히 “좋다”(1열왕 2,18) 등으로 옮긴다. 한편 ‘토브하지 않다’는 “좋지 않네”(탈출 18,17)라는 거절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 · 윤리적으로 좋은 것도 토브라 한다. 일찍이 미카 예언자는 “사람아, 무엇이 토브한(착한) 일”인지 깨달으라고 외치며, 다음과 같이 토브의 정의를 내렸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 6,8)

 

토브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느님의 마음을 가득 채운 느낌이기도 했다.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거의 날마다 “보시니 토브하였다(좋았다)”는 원초적 감정을 표현하셨다.(창세 1장) 이렇게 세상을 좋은 것으로 채우신 하느님의 마음은 우리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느낄 수 있다. 하느님은 우리 양심을 통해 좋고 선하고 기쁘고 아름다운 느낌을 들려주신다. 그렇다면 양심의 목소리에 충실한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시편 저자는 “하느님께 가까이 있음이 저에게는 토브합니다(좋습니다)”고 고백했다.(시편 73,28)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5월 28일,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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