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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아모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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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07 조회수4,657 추천수0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아모스서

 

 

예언자 아모스 시대는?

 

기원전 750년경, 아모스가 예언자로 등극하던 시대에는 북부 이스라엘 왕국이 주변 국가들과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 덕분에 이스라엘은 태평성대를 누립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태평성대 곧 경제적 호황이 종교적 쇠퇴를 불러오는 주요 요인이 됩니다.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따라 살지 않고 자만에 빠져들게 됩니다.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 으뜸가는 이 나라의 귀족들! 그들에게 이스라엘 집안이 의지하러 가는구나.”(6,1) 이처럼 이스라엘의 전성기가 그들의 쇠퇴기를 불러오고 맙니다.

 

 

경제 발전과 종교적 삶은?

 

대부분 깊은 관계에 있습니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종교적 삶도 그에 부응해야 할 터인데 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생활수준이 나아질수록 사람들은 하느님께 더욱 감사드리며 그만큼 더 섬겨야 함이 지당할 터인데 인간 역사의 현장을 지켜볼 때, 예나 지금이나 인간실존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을 흠숭하며 예배를 드릴 시간까지도 돈벌이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인간 실존의 단면을 고발하는 아모스?

 

당시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종교 행위가 돈벌이를 멈추게 하는 장애요소라고 보았습니다. 게다가 눈금이나 무게를 속이면서까지 판매를 합니다. “너희는 말한다. ‘언제면 초하룻날이 지나서 곡식을 내다 팔지? 언제면 안식일이 지나서 밀을 내놓지? 에파는 작게, 세켈은 크게 하고 가짜 저울로 속이자.’”(8,5)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분 앞에서 죄를 짓는 이스라엘과 그들의 겉치레뿐인 예배행위를 거절하십니다. “너희는 베텔로 오너라. 그리고 죄를 지어라…… 길갈로 오너라. 그리고 더욱더 죄를 지어라. 아침에 너희의 희생 제물을 바치고 셋째 날에 너희의 십일조를 바쳐라.”(4,4) “나는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친다 하여도 받지 않고 살진 짐승들을 바치는 너희의 그 친교제물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5,21-22)

 

 

부정부패와 불의로 물든 사회?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불의와 부패로 이미 중병에 걸렸다고 진단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2,6ㄱㄴ)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죄악은 늘상, 가진 이와 없는 이, 채권자와 채무자, 남자와 여자, 강자와 약자 등 양극화된 두 부류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네 가지 죄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죄는 채무자 인신매매입니다. “그들이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넘겼기 때문이다.”(2,6ㄷㄹ) 두 번째 죄는 약자의 권리를 짓밟는 것입니다. “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고 가난한 이들의 살길을 막는다.”(2,7ㄱㄴ) 세 번째 죄는 인륜을 거스르는 패륜입니다. “아들과 아비가 같은 처녀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다.”(2,7ㄷㄹ) 네 번째 죄는 채무자 강탈입니다. “제단마다 그 옆에 저당 잡은 옷들을 펴서 드러눕고 벌금으로 사들인 포도주를 저희 하느님의 집에서 마셔댄다.”(2,8)

 

 

아모스는?

 

이스라엘 사회를 양분하여 어느 한쪽만을 일방적으로 나무라지 않고 늘 ‘이스라엘의 죄’라고 일컬으며 사회 전반에 걸친 죄악을 고발합니다(2,6). 이로써 예언자는 지금 가난한 이들도 훗날 부유하게 되면 같은 죄를 저지를 수 있음을 예견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총체적 타락상을 바라보면서 외칩니다. “아, 너희, 공정을 쓴흰쑥으로 만들어버리고 정의를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자들아!”(5,7) 구약 전반에 걸쳐서 등장하는 ‘공정(미쉬팥)’과 ‘정의(츠다카)’는 궁극적으로는 영원하신 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덕목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공정과 정의를 오물처럼 내던져버린 것입니다. “말이 바위 위를 달릴 수 있느냐? 소를 부려 바다를 갈 수 있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공정을 독으로, 정의의 열매를 쓴흰쑥으로 만들어버렸다.”(6,12) 인간 사회 질서의 근본인 공정과 정의가 외면당하거나 짓밟혀버리면 불의와 부정 그리고 가진 자들의 횡포와 압력으로 약자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고, 무죄한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법정에서의 혜택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은 [그 지역의 재판이 열리는] 성문에서 올바로 시비를 가리는 이를 미워하고 바른말 하는 이를 역겨워한다. 너희가 힘없는 이를 짓밟고 도조를 거두어가니…… 포도밭을 탐스럽게 가꾸어도 거기에서 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5,10-11)

 

 

이스라엘 백성은?

 

아모스서에서는 시나이 계약이 한 번도 전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예언자는 북부 이스라엘인들도 남부 유다인들처럼 선택된 민족으로서 계약의 백성임을 전제합니다(3,1-2). 이제 이스라엘인들은 살기 위하여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너희는 나를 찾아라. 그러면 살리라. 너희는 베텔을 찾지 말고 길갈로 가지 마라……. 너희는 주님을 찾아라. 그러면 살리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불처럼 들이쳐 요셉 집안을 삼켜버리리니 베텔에는 그 불을 끌 자 없으리라.”(5,4-6) 사실 베텔과 길갈은 이스라엘인들이 정기적으로 순례 가서 주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께 경배 드리며 복을 빌던 성소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전통 성소였던 베텔과 길갈은?

 

그저 풍성하게 바치는 외적인 희생제물 봉헌에 치중하며 보이는 것에 큰 가치를 두게 되어 사실상 하느님을 뵙고 경배 드리는 인격적 영적 만남의 성소 기능이 사라지게 됩니다. 성소에 현존하시며 이스라엘과 온 인류에게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러 간다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축복을 기대하며 성소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아모스는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가 어떤 예언자인지를 한 눈에 알게 해주는 구절을 봅니다.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5,24) 이스라엘에는 우기(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에만 물이 흐르는 이른바 마른 개울들이 있고 사철(우기뿐 아니라 건기로 구분되는 4월부터 9월까지도) 물이 흐르는 개울들도 있습니다. 아모스는 여기서 일 년 내내 이스라엘 전체에 걸쳐서 물이 흐르는 개울처럼 정의가 그렇게 흘러넘쳐서 백성 모두가 그분께서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생명수를 마시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아모스가 바라는 참된 경신례는?

 

지금과 같은 그런 식의 희생제물이 아니라(5,21-23.25) 하느님 백성 구성원 상호간에 공정과 정의가 자리 잡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성소에 모여 영원하신 분의 현존을 체험하면서 높고 낮음이나 계층의 구별 없이 결국 모두가 하나 되어 그분께서 창조주로서 인류 역사의 주님이시며 구원의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가운데 행해지는 경신예배입니다. 시편기도에서 그러한 모습을 봅니다.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으로 나아가라. 너희는 알아라, 주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그분께서 우리를 만드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떼이어라.”(시편 100,1-3)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7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용현5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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