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예수님 이야기24: 평지 설교 (2) (루카 6,27-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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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7-29 | 조회수4,490 | 추천수0 | |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24) 평지 설교 II (루카 6,27-49) 원수를 사랑할 만큼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면
이번 호에서는 평지 설교의 두 번째로 원수 사랑과 남을 심판하는 문제, 나무와 열매, 그리고 말씀의 실천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살펴봅니다. 참행복과 불행 선언이 말 그대로 선언적 내용이라면, 이제부터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체적인 실천을 요청하는 실천적 또는 윤리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곳으로 추정되는 갈릴래아 호수 언덕. 마태오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고 해서 산상 설교(마태 5―7장)라 부르는 부분이 루카복음에서는 평지 설교(6,17-49)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된다.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원수 사랑(6,27-36)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사람들의 통념과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보통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미워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어떤 식으로 사랑해야 하는지 방법까지도 알려 주십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해 주고, 우리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축복하며, 우리를 학대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겉옷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속옷도 가져가게 놔두며, 달라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주되 되찾으려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6,27-30)
원수 사랑의 이런 여러 방법을 종합하면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도 남에게 해주어라’(6,31)는 것입니다. 이를 ‘황금률’이라고 합니다. 황금률의 가르침은 유다교 사회에서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황금률은 ‘네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마라’는 형태입니다. 곧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형태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해주라’며 적극적인 황금률을 제시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황금률을 실천해야 할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 곧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려면 그렇게 해야 하나요? “그분은 은혜를 모른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6,35)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자기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주고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꿔 주는 것은 죄인들도 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6,32-34).
원수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다음 말씀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6,36) 원수를 사랑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가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마침내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이어 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곁들여 모두 다섯 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참행복과 원수 사랑 등에 대해 제자들을 가르치신 곳으로 추정되는 갈릴래아 호수 언덕. 호수 저편에 보이는 산이 아르벨 산으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수많은 유다인들이 로마 군대에 맞서 독립 투쟁을 하다가 저 산 절벽에서 최후를 맞았다.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길(6,37-46)
첫째는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않고, 오히려 용서하는 것입니다.(6,37). 성경학자들은 “…그러면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단죄받지 않을 것이다.…용서받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심판과 단죄와 용서의 주체는 하느님이라고 설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심판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심판받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한테 심판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색하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6,38)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에게 주는 것 이상으로 후하게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줄 때 아까워서 “되질하듯이” 준다면 “되질하는 바로 그대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라고 단언하십니다.
셋째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기보다는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눈 속의 들보를 보지 못한 채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 아니라 위선적이라고 질타하십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6,42) 이 말씀은 잘난 척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자신의 잘못을 먼저 살피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선한 마음을 지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6,43-45)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않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않듯이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알듯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6,45)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섯째는 들은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6,46-49) 예수님께서는 ‘주님, 주님!’ 하고 조아리기만 하는 이를 질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6,48) 이어서 땅을 깊이 파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짓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과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를 말씀하십니다. 반석 위에 튼튼하게 집을 지으면 홍수가 나더라도 그 집이 흔들리지 않지만, 기초 없이 맨땅에 집을 지으면 완전히 허물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6,49)
생각해 봅시다
참행복과 불행(선언)으로 시작한 예수님의 평지 설교는 원수 사랑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심판하지 말고 용서하라’ ‘인색하지 말고 주어라’ ‘잘난 척하지 말고 겸손하게 자신의 잘못을 살펴라’ ‘선한 마음을 지니도록 하라’ ‘말씀을 듣고 실행하라’는 다섯 가지 길을 제시하십니다.
참행복과 원수 사랑, 다섯 가지 길은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더라도 예수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힘들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6,36)는 예수님의 말씀을 단지 명령이나 분부가 아니라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격려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요? “원수 사랑이 힘들지만, 너희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자녀들이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자비의 유전 인자’가 너희에게 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용서하고 주고 자신을 돌아보고 아버지의 마음을 지니려고 노력하고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해 보려무나.”
이런 의미에서 ‘내 말을 실행하여라’(6,46-49)는 평지 설교의 마지막 말씀은 더욱 깊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튼튼히 지어진 집처럼 유혹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은 사람은 맨땅에 지어진 집처럼 유혹이 닥치면 삽시간에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들은 말씀을 지금 당장 작게라도 실천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7월 30일, 이창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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