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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신약 여행60: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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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05 조회수4,388 추천수0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60)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 1,23)


십자가의 ‘어리석은 죽음’ 통해 드러난 하느님 지혜

 

 

-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1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을 경고하면서 십자가의 힘을 강조한다. 사진은 코린토 유적지. 가톨릭평화신문 DB.

 

 

경제와 정치 중심지, 코린토

 

로마 시대 코린토는 경제와 정치의 중심지였습니다. 무엇보다 코린토의 지리적 장점들은 코린토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내륙으로는 도시를 방어할 수 있는 아크로코린토라 불리는 산으로 보호를 받고 바다를 통해 무역하기에 좋은 위치였습니다. 당시에 코린토는 레카이온과 켕크레애라는 큰 항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코린토에는 이미 기원전 540년쯤 세워진 아폴로 신전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이 건축물은 6m에 달하는 38개의 기둥으로 된 신전이었습니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으로 불리는 아프로디테의 신전 역시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교회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에 18개월 정도 머물렀다고 전합니다.(사도 18,11) 그리고 이 시기에 이곳에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설립했을 것으로 봅니다. 바오로가 언제 코린토에 처음 머물렀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사도행전이 말하는 유다인들과의 고소 사건(사도 18,2-16)이나 갈리오가 아카이아의 총독으로 있던 때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가 코린토에 머문 것은 50~51년쯤일 것입니다. 그 이후 바오로 사도는 다른 곳을 거쳐 에페소로 가게 되는데 이때에 코린토 신자들에게 첫째 서간을 써 보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시기는 54~55년쯤입니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하 코린토 1서)을 읽다 보면 조금 낯선 표현을 만나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편지에서 “전에 써 보낸 편지”를 말합니다.(1코린 5,9) 그 편지가 언제 어떻게 써 보낸 것인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본문에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말하는 코린토 1서 이전에도 편지가 있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코린토 1서는 바오로와 소스테네스의 이름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편지의 시작에서 코린토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다른 신자들이 사는 곳이든 우리가 사는 곳이든 어디에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에게 교회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말의 의미가 말하는 것처럼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분열된 신자들에게 모두 하느님 자녀임을 강조

 

코린토 1서에서 처음 언급되는 것은 ‘분열에 대한 경고’입니다. 처음 신앙을 갖게 된 이들 사이에서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지에 따라 서로 분열된 모습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모두가 한 분이신 그리스도의 자녀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기에서 아폴로라는 이름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18장 24-28절에서 비교적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러한 권고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강조와 함께 그의 중요한 신학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에 대한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1코린 1,18) 이 부분에서 바오로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지혜와 어리석음의 대조입니다. 십자가 죽음은 사람들의 눈에 가장 어리석은 죽음입니다. 더욱이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 이러한 어리석은 죽음을 맞았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이 어리석은 죽음은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실로 놀라운 사건입니다. 여기서 바오로는 인간의 눈에 가장 어리석어 보이는 죽음을 통해 구원을 가져온 하느님의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어리석어 보이는 사건을 통해서도 인간의 구원을 이룬 하느님은 가장 강하고 지혜로운 분입니다. 마치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 죽음의 결과가 구원이라면, 하느님의 지혜는 얼마나 더 큰 것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렇기에 바오로에게 하느님의 어리석음은 인간의 그 무엇보다 강하고 지혜롭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은 가장 어리석고 비천하고 약한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분이십니다.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1코린 1,21)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8월 6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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