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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오바드야서, 요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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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07 조회수4,294 추천수0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오바드야서, 요나서

 

 

오바드야서는?

 

본디 ‘오바드야’는 ‘야훼를 섬기다.’는 뜻입니다. ‘아바드’(섬기다)와 ‘야훼’(주님)의 합성어입니다. 히브리말 ‘오바드야’를 직역하면 ‘주님을 섬기는 자’ 또는 ‘주님께 경배 드리는 자’입니다. 구약 46권 가운데 길이가 가장 짧은 오바드야서는 “오바드야의 환시”(1,1)라는 머리글로 시작됩니다.

 

그밖에 예언자 오바드야에 대한 다른 어떤 서술이나 정도도 나오지 않아서 우리는 오바드야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름에서 풍겨 나오듯 오바드야는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에 걸맞게 주 하느님을 열심히 섬기면서 그분 말씀을 선포하던 예언자였다고 봅니다. 구약에 오바드야라는 인물이 여덟 번이나 나옵니다(1열왕 18,3-16; 1역대 3,21 등).

 

 

오바드야가 예언자로 활동하던 때는?

 

다음 구절에서 유다 역사상 가장 큰 재앙 곧 바빌론 유배 장면을 엿보게 됩니다. “네가(에사우, 에돔) 저만치 떨어져 서 있던 그날, 이민족들이 야곱의 재산을 끌어가고 낯선 자들이 그의 대문으로 쳐들어가 예루살렘을 두고 제비를 뽑던 그날 너도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너는 네 아우의 날을, 그 재난의 날을 흐뭇하게 바라보지 말아야 했다. 유다의 자손들이 멸망하던 날, 너는 그를 두고 기뻐하지 말아야 했다. 환난의 날에 너는 입을 크게 벌리지 말아야 했다.”(10-11절;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멸망을 상기시켜주는 구절 참조: 시편 137,7; 애가 4,21-22; 에제 25,12-14; 35,1-15)

 

기원전 587년 바빌론 제국의 네부카드네차르 임금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불태운 다음 지도층을 비롯하여 수많은 유다인들을 유배지로 끌고 간 사건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나옵니다.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멸망은?

 

유다민족에게는 더없이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한 국가의 멸망으로 인한 정치 사회적 재앙이며 불행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버려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던 이스라엘 종교의식, 하느님 예배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유배당하지 않고 유다 땅에 살아남은 이들은 더는 예전처럼 제사를 봉헌할 수 없었지만, 대 재난 속에서도 또 잿더미로 변한 예루살렘 성전자리에서 참회하고 탄식하면서 탄원의식을 거행할 수 있었습니다.

 

 

오바드야서의 주된 내용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 터에서 거행되던 일종의 탄원예식 가운데서, 유다민족의 부르짖음에 대한 주님의 응답으로 보면 틀림없겠습니다. 사실 오바드야로부터 50여년이 지난 뒤에 즈카르야 예언자 시대에 이르러서는 매년 한 차례씩 이 같은 탄원의식이 거행됩니다(즈카 7,3.5; 8,19).

 

예루살렘의 멸망은 안으로는 유다민족 스스로의 책임이며, 겉으로는 바빌론 제국의 침공이 큰 책임이지만, 그보다 더 큰 책임은 이웃민족 에돔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에돔의 책임?

 

오바드야서에 나오는 21구절 안에 에돔이 세 번에 걸쳐서 나오며 에돔의 원조상을 뜻하는 에사오(창세 36,9)가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이 구절 모두가 에돔이 유다멸망에 원인이 되었음을 지적합니다(11-14절). “모든 민족들에게 주님의 날이 가까웠으니 네가(에돔) 한 그대로 너도 당하고 너의 행실이 네 머리 위로 돌아가리라.”(15절)

 

 

예언자 오바드야의 목표는?

 

폐허와 절망의 늪에 빠진 유다백성을 하느님 이름으로 위로하며 그들에게 새 희망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오바드야는 먼저 에돔에게 내리는 심판을 선포합니다. 민족주의나 증오가 목표가 아니라, 성전방화로부터 노약자 강탈이나 살상 그리고 유배 등으로 유다민족을 절망으로 떨어뜨린 악의 무리들에 대한 심판 선포입니다. 새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어두운 밤을 겪어야 하듯이, 과거청산 없이 새 시대는 오지 않습니다.

 

 

요나서 저자는?

 

저자는 요나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정보를 주지 않을 뿐 더러 그에 대한 관심도 없어 보입니다. 나아가 저자는 요나를 하느님 말씀을 따르지 않으려는 이들의 전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나서는 예언서라기보다는 특별한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책입니다. 요나서 외에 다른 예언서들은 하나같이 예언자 자신이 선포한 말씀을 전해줍니다. 그에 반해 요나서 안에서 요나가 선포한 말은 다음의 한 구절뿐입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3,4)

 

요나서의 나머지는 하느님과 예언자 요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점에서 요나서는 여타의 다른 예언서들과는 구별됩니다.

 

 

요나서 집필 시기와 니네베는?

 

바빌론 유배(기원전 538년)가 끝나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다음 대략 기원전 300년 전후에 쓰인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기원전 2세기 말에 집필된 집회서(49,10)에 ‘열두 예언서’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요나서도 그 전에는 이미 쓰였다고 봅니다.

 

요나서 본문에 따르면 니네베는 엄청나게 넓은 도읍으로 묘사됩니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3,3ㄴ) 이스라엘 예언자가 다른 나라로 가서 무작정(?) 하느님 말씀을 선포한다는 이야기가 이미 너무나 생소합니다. 따라서 요나서는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을 전한다기 보다는 어떤 교훈적이거나 신학적인 의미 전달에 관심이 있다고 봅니다.

 

 

요나서 이끎말(1,1-3)은?

 

주님께서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에게 명하십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그 성읍을 거슬러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나에게까지 치솟아 올랐다.”(1,2) 그런데 요나는 그분 말씀과 정반대 방향으로 달아납니다. “요나는 주님을 피하여 타르시스로 달아나려고 길을 나서 야포로 내려갔다.”(1,3ㄱ)

 

 

본문 첫 부분(1,4-16)은?

 

요나가 배를 타기가 무섭게 위기가 닥칩니다. “주님께서 바다 위로 큰 바람을 보내시니, 바다에 큰 폭풍이 일어 배가 거의 부서지게 되었다.”(1,4) 겁에 질린 뱃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신에게 부르짖으면서, 배를 가볍게 하려고”(1,5) 짐을 내던지며 무진 애를 써보지만 허사였습니다. 재앙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가려내고자, 그들 풍습대로 제비뽑기를 하니 요나가 걸려듭니다.

 

요나는 자신이 히브리 사람이라고 밝히면서 말합니다. “나는 바다와 뭍을 만드신 주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오…… 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1,9-12)

 

 

이때 선원들은?

 

자신들뿐 아니라 요나까지 모두 살리고자 무진 애를 씁니다. “사람들은 뭍으로 되돌아가려고 힘껏 노를 저었으나…… ”(1,13) 외교계 뱃사람들이 누구 못지않게 인도적임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기도드리기 시작합니다. “아, 주님! 이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킨다고 부디 저희를 멸하지는 마십시오……. ”(1,14)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고 서원까지 합니다.(1,16)

 

외교인들의 도읍 니네베에 가서 주님 말씀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거역하고서, 뒤돌아서 세상 끝 타르시스로 향하는 요나가 외교계 뱃사람들에게 하느님을 경외하도록 해준 것입니다.

 

 

둘째 부분(2,1-11)은?

 

요나가 자신을 살려주신 주님께 미리 감사의 마음을 담아 드리는 기도가 나옵니다. 셋째 부분(3,1-10)은 요나가 주님 분부대로 니네베로 가서 말씀을 선포하니 임금으로부터 모든 백성이 회개하여 결국 재앙을 피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넷째 부분(4,1-11)에서 요나서 집필 목적이 드러납니다. 요나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 버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 반면 주님께서는 십이만 명이나 사는 거대한 성읍 니네베를 더더욱 아끼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4,11) 이렇게 볼 때 요나서는 뭇 민족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 구원의 보편성을 가르쳐주는 교훈서이기도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8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용현5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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