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식물] 성경의 식물 명칭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보는 성경 속 식물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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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8-13 | 조회수7,839 | 추천수0 | |
‘성경의 식물 명칭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보는 성경 속 식물들 ‘초막’ 짓는 데 사용하던 나무는 무엇이었을까?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이들은 하나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시작되는 구약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 수난, 부활의 거룩한 역사가 다양한 언어로 쓰인 여러 책을 모은 성경은 오늘날 우리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닐 것이다. 성경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이라도 꾸준히 들여다보라고 권유한다. 또 그냥 읽기보다는 성경이 쓰인 당시를 떠올리며 성경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풍속, 기후 등 그 배경을 고려할 때 성경을 더 잘 이해하고 성경의 참맛을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문화영성학과 김영숙씨(클라라·63·대구 범어본당)는 최근 박사논문 「성경의 식물 명칭에 대한 연구?성경번역과 주석을 위한 성서신학적 가치와 전망」을 발표했다. 김씨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식물들을 한글과 중국어, 일본어 신·구약 성경 42종을 살펴보며 식물 명칭을 분석했다. 또 성경에서의 표현과 식물 특성, 번역상의 문제 등 100여 종의 성경 속 식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논문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성경 속 식물 명칭이, 실제로는 중국이나 일본의 것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틀리게 번역됐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성경 번역 작업에도 이 논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논문 내용 중 눈길을 끄는 사례를 소개한다.
- 대추야자나무와 그 열매.
‘종려나무’와 ‘대추야자나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던 날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맞았다고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이튿날, 축제를 지내러 온 많은 군중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 이렇게 외쳤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복되시어라.”(요한 12,12-13)
‘종려나무 가지’는 요한복음에서만 언급된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잎이 많은 나뭇가지’, 그냥 ‘나뭇가지’로 쓰이거나 루카복음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요한복음에서 나오는 ‘종려나무’는 중국 자국에서 자라는 ‘당종려’ 나무 이름을 따와 중국어로 번역된 것으로, 우리보다 일찍 신앙을 받아들인 중국의 성경을 따라 우리말 성경에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성경의 경우 대추야자나무를 뜻하는 나츠메야시(なつめやし)로만 번역하고 있다. 2005년 발행된 「성경」에서는 야자나무가 38회, 종려나무는 5회, 대추야자로 표기된 것이 3회로 혼용되고 있다. 하지만 종려나무와 대추야자나무는 열매와 잎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에 고쳐 써야 바람직하다. 또 가장 많이 표기된 야자나무의 경우는 종의 수만도 2600여 종에 달하기에 ‘대추야자나무’로 통일해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도금양’과 ‘미르투스’
- 미르투스. 초막을 만드는 데 사용되거나,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할 때 사용되던 중요한 나무다.
미르투스(Myrtus communis)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유다, 그리스, 고대 로마, 중세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사랑과 부활을 상징하는 중요한 수목이었다. 성경에서 미르투스는 초막절에 초막을 만드는 데 사용되거나,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할 때 사용되던 중요한 나무다. 미르투스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나무이고, 평화와 감사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불멸성과 부활을 상징하는 나무로 나타난다.
미르투스는 동아시아에서는 자라지 않는 식물이기에 화석류 나무, 은매화, 소귀나무, 도금양 등 아주 다양한 이름으로 번역되고 있다. 한중일 성경에서도 천리향, 감탕나무, 석류나무, 도금양나무 등으로 표기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미르투스를 ‘桃金孃(도금양)’이라고 쓰고 읽을 때에는 ‘텐닌쿠와(てんにんくわ, 天人花)’로 읽었다. 1949년 우리나라에 「영한사전」이 출간되면서 일본서적을 여과 없이 그대로 인용하면서 아직까지 미르투스를 도금양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미르투스를 한글로 번역하면 가장 가까운 수목인 ‘서향’으로 쓸 수도 있겠지만, 미르투스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학명인 미르투스(Myrtus)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 쥐엄나무와 그 열매 꼬투리.무게가 균일해서 열매 1개의 무게를 보석의 중량을 뜻하는 캐럿(carat)의 기준으로 삼았다.
‘쥐엄나무’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루카 15,16)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나오는 대목이다.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상속 받아 탕진했던 둘째 아들이 너무나 허기진 나머지 돼지의 여물통을 뒤적였다는 이야기이다. 돼지 먹이로 등장하는 열매 꼬투리는 쥐엄나무(Carob) 열매 꼬투리이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먹기도 했고, 가축의 사료로도 사용됐다. 지중해 연안에 자생하는 흔한 나무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에는 기록된 바 없다. 이스라엘에서 흔히 자라는 쥐엄나무는 매년 많은 열매가 달리는 상록활엽중교목이다.
쥐엄나무 열매는 콩 같은 5~10개의 씨가 일정한 무게로 꼬투리 안에 달린다. 그 무게가 균일해서 저울추로 쓰여 무게의 기준(0.2g)이 되기도 했다. 쥐엄나무 열매 1개의 무게를 보석의 중량을 뜻하는 캐럿(carat)의 기준으로 삼았다.
중국 성경은 쥐엄나무를 번역하면서 계속 콩껍질을 의미하는 荳莢(두협), 豆莢(두협)으로만 번역해 왔다. 일본 성경도 콩깍지 豆莢(두협)을 1910년까지 계속 사용하다가, 1917년부터 메뚜기콩을 의미하는 이나고마메(いなごまめ, 蝗豆)로 번역하고 있다. 반면 한국 성경에서는 「예수셩교젼셔」(1887)에 ‘콩?디’로 잘 출발했지만, 갑자기 「성경전서」(1911)부터 「개역개정판」(2002)에 이르기까지 출처가 불분명한 ‘쥐엄나무 열매’로 표기했다. 그러다가 「성경」(2005)에서는 ‘열매 꼬투리’로만 번역하고 있다.
쥐엄나무는 그 유래가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표기라 인지도가 꽤 높지만 국가표준식물목록에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못한 식물이다. 따라서 앞으로 성경 번역에서 어떤 용어로 표기할 것인지는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성경의 식물…」 논문 발표 김영숙씨 - “성경 속 식물 연구하며 말씀과 더 가까워졌죠”
1978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한 김영숙씨. 이듬해 통신교리를 통해 신앙을 접했다. 세례는 받았지만 신앙적으로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고는 영적 갈증을 해소하고자 성경을 손에 들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성경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던 김씨는 1994년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실시하던 통신성서 과정을 8년 만에 수료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는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자비로운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언어로 당신 백성에게 말씀을 전해주시거든요.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져도 많은 분이 성경을 읽으며 말씀 속에서 화두를 찾고, 또 그 뜻을 찾아 되새기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본당에서 주일학교 교리교사로 활동하며 학생들에게 성경을 재미나게 가르치기도 했다는 김씨는 2004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성서학과에 입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이후 줄곧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김씨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성경 공부를 하면서 자캐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올라간 나무는 왜 ‘돌무화과’로 쓰기도 하고 ‘뽕나무’로 쓰기도 할까? 무슨 차이가 있을까? 궁금했었습니다. 그래서 식물의 특성들을 찾아보니, 돌무화과의 열매는 무화과처럼 생기긴 했는데 잎은 뽕나무처럼 생겼다는 것을 알고 혼돈이 생긴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조경학과 교수인 남편 덕에 김씨에게 식물은, 특히 나무는 친숙한 소재였다. 성경을 읽으며 귀에 익숙하지 않은 식물들이 나올 때면 남편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직접 자료를 찾아보곤 했다. 그저 성경 속 배경, 소재로만 생각하지 않고 식물의 이름과 의미, 특징을 찾아보니 말씀이 더 와닿았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많은 이들이 자기 존재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성경 속에서 그 답을 찾고 꿈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가 꼭 그 꿈을 이뤄지게 도와주실 테니까요.”
[가톨릭신문, 2017년 8월 13일, 박원희 기자, 사진 김영숙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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