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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카보드, 카베드, 켈렙(주님의 영광, 간,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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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19 조회수10,713 추천수0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카보드, 카베드, 켈렙


구원의 날에 드러날 주님의 영광

 

 

오늘은 카프로 시작하는 카보드(영광), 카베드(간), 켈렙(개)을 알아보자.

 

- 카보드. 주님의 영광을 표현하는데 가장 자주 쓰이는 낱말이다. 카프(회색) 안의 하늘색 점은 일부 자음(bgdkpt)으로 음절이 시작할 때 사용하는 기호다(약한 다게쉬).

 

 

무겁다

 

카보드의 어근은 ‘무겁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은 가볍고 신속하고 새로운 것을 선호하지만, 과거에는 무겁고 두텁고 오래된 것에 큰 가치를 두었다. 카보드는 구약성경에서 무척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요셉은 이집트에 팔려가서 모진 고생 끝에 부와 권력을 얻었다. 그는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결국 용서하며 아버지를 보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집트에서 누리는 이 카보드(영화)와 그 밖에 무엇이든 본 대로 다 아버지께 말씀드리십시오. 서둘러 아버지를 모시고 이곳으로 내려오십시오.”(창세 45,13) 피는 물보다 진했던가. 그는 오랜 세월 힘들게 이룬 무겁고 두터운 부와 권력을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편히 모시고 싶었을 것이다.

 

야곱은 라반 밑에서 대단한 부자가 되었는데(창세 30,43),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우리 아버지 것을 모조리 가로채고, 우리 아버지 것으로 그 모든 카보드를(재산을) 이루었다”(창세 31,1)고 말하며 시기했다. 그들은 야곱이 라반 밑에서 오랜 세월 모은 소중한 중천금(重千金)을 탐냈던 것이다.

 

 

명예와 높음

 

카보드는 물질적 부(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카보드는 명예나 고귀함이나 권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자 하느님께서 그의 꿈에 나타나시어 “부와 카보드(명예)”(1열왕 3,13)를 약속해 주셨다. 카보드는 물질적 부보다 훨씬 높고 고결한 것이다. 그래서 카보드를 사람에 적용하면 ‘귀족’으로 옮긴다.(이사 5,13)

 

구약성경에 특이하게도 ‘카보드한 숲’이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는 “화려한 숲”(이사 10,18)이라고 옮긴다. 숲이 카보드하다니 무슨 뜻인지 궁금한데, 오랜 세월 가꾸어진 깊고 풍요로운 숲이라는 뜻에 가깝다. 그래서 일부 외국어 번역본에서는 ‘영광의 숲’ 또는 ‘숲의 영광’ 등으로 옮긴다.

 

- 카베드. 사람이나 동물의 간을 의미한다. 간의 이름이 히브리어로 ‘묵직함’이라는 표현이 흥미롭다.

 

 

하느님의 영광

 

카보드는 주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대표적 낱말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영광(카보드)’은 본래 가볍고 얇고 짧은 것이(輕薄短小) 아니라,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무겁고 깊으며 큰(重厚長大) 것이다. 주님의 카보드는 이미 십계명을 받을 때 드러났고(신명 5,24), 모세와 아론을 지켜 주셨으며(민수 14,10), 하늘보다 높으신 것이요(시편 113,4), 온 땅에 가득하다.(이사 6,3) 주님의 카보드는 결국 먼 미래에 구원의 날에 드러날 것이다.(이사 40,5)

 

구약 시대에 번제를 드린 목적은 주님의 카보드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레위 9,6) 예수님이 오시고 나서 더 이상 우리는 번제를 드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치는 희생과 기도가 모두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점은 똑같다.

 

 

간(肝)

 

카보드와 같은 어근에서 나온 낱말로 ‘카베드’가 있다. 사람이나 동물의 간(肝)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히브리어로 간은 ‘묵직함’이란 말과 같다. 간을 왜 이렇게 불렀을까? 실제로 간은 꽤 무거운 장기이기도 하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므로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다른 한편 고대근동에서는 짐승을 잡아 간의 모양이나 금을 보고 점을 쳤는데(에제 21,26),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 이름과 잘 어울린다.

 

켈렙. 히브리어로 개를 의미한다. 비하하는 표현에도 쓰이지만, 충실한 종의 의미로도 쓰인다.

 

 

겸손과 충실함의 개

 

한편 켈렙은 개란 의미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개는 욕설의 대상이었고 구약성경에도 그런 용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1사무 17,44; 이사 56,11 등) 그런데 특이하게도 스스로를 개로 낮추어 겸양의 표현을 쓰기도 했다.(2사무 9,8 등) 개는(켈렙은) ‘충실한 종’의 의미도 지녔던 것이다.

 

켈렙의 오래된 형태가 칼렙인데, ‘여푼네의 아들 칼렙’의 이름에서 이 형태를 찾을 수 있다. 그는 모세에 적극 협력했고 주님께 충실한 자로서(민수 13장),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함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인물이다.(민수 14,30) 주님의 진실된 충견(忠犬)이니, 칼렙은 구약성경의 ‘도미니카누스’(Domini/주님의 - canus/개)라고 하겠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8월 20일,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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