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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미카서, 나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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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09 조회수4,287 추천수0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미카서, 나훔서

 

 

미카는?

 

자신과 동시대의 예언자들이 주로 우상숭배와 형식주의에 빠진 종교의 타락상을 지적하는데 반해 미카는 사회 병폐를 지적합니다.

 

“야곱의 우두머리들아, 이스라엘 집안의 지도자들아, 들어라. 공정을 바로 아는 것이 너희 일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선을 미워하고 악을 사랑하며 사람들의 살갗을 벗겨내고 뼈에서 살을 발라낸다.”(3,1-2) 이 구절에서 보듯이 미카는 사회악을 원색적으로 고발합니다.

 

 

유다 지도자들은?

 

미카는 특히 지도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하여 못된 짓을 저지르고 있음을 고발합니다. “탐이 나면 밭도 빼앗고 집도 차지해 버린다.”(2,2ㄱ) 미카는 부정을 저지르는 종교인들도 고발합니다. “사제들은 값을 받아 가르치며 예언자들은 돈을 받고 점을 친다.”(3,11ㄴㄷ) 북부 이스라엘에서 비롯되어 남부 유다왕국에까지 뿌리내린 이러한 병폐의 직접적인 책임이 지도층에 있다는 것입니다.

 

 

미카의 심판 예고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정의가 무너졌기에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 심판을 자초했다는 것입니다. 미카는 이스라엘이 정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로 시온을, 불의로 예루살렘을 세운다.”(3,10)고 질책합니다. 정의는 인간 생존에 밑바탕이며 필수적인 요소로서 사회공공 질서와 공동선을 유지시켜주며 평화를 가져다주는 필수 요소입니다. 미카는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송아지나 양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6,8).

 

 

미카 예언서의 절정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고에 있습니다. 온 인류의 주님께서는 이제 다윗 가문에서 새 영도자가 태어나 온 세상을 통치하게 하시리라고 선포합니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5,1ㄱ)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터전이요 삶의 중심지 예루살렘에서가 아니라 알아주는 이 없는 시골, 다윗임금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분,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5,4ㄱ)고 선언합니다. 그리하여 미카를 흔히 ‘정의와 평화의 선포자’라고 부릅니다.

 

 

새 시대가?

 

주님께서 이끄시는 인류구원 역사가 다윗 임금이 이룩해 놓은 왕국을 통하여 활짝 피어나 그 절정에 다다릅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남부유다왕국과 북부이스라엘왕국의 사회적 병폐와 지도자들의 부패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과 멸망을 자초했다고 지적합니다. 미카는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야곱의 죄, 이스라엘 집안의 죄악 때문이다. 야곱의 죄가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죄악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1,5) “나을 길 없는 그 상처가 유다까지 다다라 내 백성의 성문까지, 예루살렘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1,9)

 

 

미카서의 핵심은?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구원 선포입니다. 그는 하느님 백성이 자기 심장처럼 여기는 예루살렘 성전에까지 재앙이 들이닥치리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때문에 시온은 갈아엎어져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폐허 더미가 되며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수풀 언덕이 되리라.”(3,12) 그러나 바로 그 곳으로 뭇 민족이 몰려 와 그곳이 구원의 장소가 되리라고 예언합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 백성들이 이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민족이 모여오며 말하리라.”(4,1) 모두가 그곳 시온 산에서 주님의 다스리심으로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5,3-4). 훗날 에페소서 저자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라고 선포합니다(에페 2,14ㄱ).

 

 

나훔서는?

 

“니네베에 관한 신탁. 엘코스 사람 나훔이 본 환시의 책”(1,1)이라는 첫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의 함락과 제국의 멸망을 노래합니다. 심판하시는 하느님, 복수하시는 하느님을 기리는 찬가가 나훔서의 골격을 이루고 있습니다(1,2-8). “주님은 선하신 분, 환난의 날에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분,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을 알아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께 맞서는 자들을 넘쳐흐르는 홍수로 끝장내시고 당신의 원수들을 어둠 속까지 쫓으신다.”(1,7-8)

 

 

나훔의 활동 시기는?

 

아시리아가 몰락의 길로 접어들던 기원전 631년경부터 바빌론 왕국이 무너지고 신바빌론 왕국이 등장하여 그들이 (기원전 626년) 메대인들(오늘날의 이란 산악지대)과 흑해 북부 평원 지대에 사는 유목민과 힘을 합하여, 근동지방 전역을 거의 다 누비며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아시리아 니네베를 함락시키던 때에, 그 사이에 예언활동을 했다고 봅니다.

 

 

나훔서를 크게 구분한다면?

 

전반부(1,9-2,3)와 후반부(2,4-3,19)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적과 그 임금에게 내릴 심판과 유다 왕국에 내릴 구원이 선포됩니다. “너희는 주님께 무슨 음모를 꾸미느냐? 그분은 모조리 끝장내시는 분 어떤 적대자도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바싹 마른 검불처럼 타 버리리라.”(1,9-10) 후반부에서는 니네베의 멸망을 노래합니다. “아시리아 임금아, 네 목자들은 졸고 군관들은 드러누워 있다. 네 백성이 산에 흩어졌으나 모을 자가 하나도 없다. 네 상처는 아물 길 없고 부상은 나을 길이 없다. 네 소식을 듣는 이들은 모두 너를 두고 손뼉을 쳐댄다. 너의 끊임없는 악행을 겪어 보지 않은 이가 있느냐?”(3,18-19)

 

 

나훔이 선포하는 하느님은?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는 인간을 외면한 채 저 높은 곳에서 편히 쉬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 내려오시어 인류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인격적 하느님입니다. 그러기에 나훔의 하느님은 그분께 신뢰하고 의지하는 이들에게는 자비를(1,7), 그분을 등지며 죄를 짓는 이들에게는 벌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1,8).

 

 

나훔서의 주님과 패권 국가?

 

아시리아처럼 고대 근동의 여러 나라들을 정복해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는 역사의 주님이십니다. 아시리아가 주변 국가들을 정복할 때처럼 정복전쟁은 단순히 ‘이긴 자의 승리로’ 끝날 수가 없습니다. 싸움에서 진 자와 진 나라 백성이 겪게 되는 폭력, 강탈, 강압과 수탈, 살인 등 원하지 않는 서러움과 고통이 반드시 따르게 마련 아닙니까?

 

 

약자(유다왕국)가 강자(아시리아 제국)에게 겪는 수모?

 

한 예로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유다를 쳐들어갈 때의 상황을 봅니다. “히즈키야 임금 제십사년에,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요새 성읍으로 올라와서 그곳들을 점령하였다. 유다 임금 히즈키야는 라키스로 아시리아 임금에게 전갈을 보냈다.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돌아가 주십시오. 그러면 임금님께서 부과하시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자 아시리아 임금은 유다 임금 히즈키야에게 은 삼백 탈렌트와 금 서른두 탈렌트를 요구하였다. 히즈키야는 그에게 주님의 집과 왕궁의 창고에 있는 은을 모두 내주었다. 유다 임금 히즈키야가 주님의 집 문짝들과 문설주에 입혔던 금을 벗겨, 아시리아 임금에게 내준 것도 그때이다.”(2열왕 18,13.15-16)

 

 

니네베의 멸망을 선포하는 나훔?

 

이제 예언자 나훔은 선언합니다. 아시리아의 멸망은 곧 하느님의 심판이었다고. “보라, 내가 너에게 맞서리라.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너의 병거를 연기 속에 불태워버리고 칼이 네 새끼 사자들을 삼키게 하리라…… .”(1,14) “보라, 내가 너에게 맞서리라.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3,14ㄱㄴ)

 

 

예언자 나훔?

 

그를 두고 속 좁은 민족주의자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미카와 같은 예언자들처럼 선택된 민족의 죄상과 회개를 외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훔이 강조한 ‘강자의 폭력과 죄악을 징벌하시고 심판하시지만, 그분께 신뢰하고 의지하는 약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 상을 깊이 이해한다면 나훔을 올바로 보게 될 것입니다. 나훔은 힘없지만 그분께 다가와 그분 품에 안기는 이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역사의 하느님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9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용현5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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