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히브리어 산책: 레브, 로-, 라숀(심장, 아니오, 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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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9-10 | 조회수6,665 | 추천수0 | |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레브, 로-, 라숀 마음과 말씀으로 하느님과 교감하다
오늘은 라메드로 시작하는 레브(심장), 로-(아니오), 라숀(혀)의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뜻을 알아보자.
- 레브. ‘심장’을 의미하는데, ‘마음’이라는 추상적 뜻으로 훨씬 자주 쓰인다.
히브리어 공부의 묘미
고대 히브리어는 현대언어에 비해 단어의 수가 훨씬 적다. 이 점에서 히브리어 어휘 공부는 쉽다. 히브리어 같은 고대어들은 대개 현대어처럼 낱말이 세분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단어가 구체적인 의미와 추상적인 의미를 동시에 뜻할 때가 많다. 이를테면 ‘심장’(레브)이라는 말이 ‘마음’으로 더 자주 쓰이고, ‘아니오’(로-)라는 말이 문맥에 따라 ‘안된다’, ‘못한다’, ‘없다’를 의미한다. ‘혀’(라숀)라는 말은 비유적 의미로 훨씬 많이 쓰인다.
히브리어 공부의 묘미라면, 이렇듯 한 단어가 지닌 함축적이고 다양한 의미를 깊고 풍부하게 느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단어 안에 하느님 체험의 다양한 차원이 들어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구약성경을 읽으면 현대어 성경을 읽을 때와 퍽 다른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심장은 마음이다
레브는 심장이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뜻으로 훨씬 많이 쓰인다. 시편에 “가난한 이들은 배불리 먹고 / 그분을 찾는 이들은 주님을 찬양하리라 / 너희 레브(마음) 길이 살리라!”(시편 22,27)처럼 ‘마음’을 표현한다.
구약성경에는 인간의 레브(마음)가 하느님의 레브(마음)에 어긋나는 안타까운 장면이 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보면, 인간 “레브(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창세 6,5) 보신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레브(마음) 아파하셨다”(창세 6,6)고 한다.
- 로-. ‘아니오’, ‘안된다’, ‘못한다’, ‘없다’ 등으로 두루두루 부정(否定)하는 표현이다. ‘로-’라고 장음으로 읽는다. 구약성경에 5200번 이상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하느님과 인간의 레브(마음)가 훌륭히 조화를 이룬 경우도 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레브(마음)를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1열왕 8,23)고 기도하자, 하느님께서 화답하시어 “내 눈과 내 마음(레브)이 언제나 이곳에 있을 것이다”(1열왕 9,3)고 답하셨다. 성전은 모름지기 인간과 하느님이 깊이 교감하고 기뻐하는 곳이다.
안된다, 없다
히브리어로 부정(否定)할 때, 대표적으로 ‘로-’라고 한다. ‘아니오’(no)라는 대답이든 ‘안된다’(not)나 ‘없다’는 말이든 모두 ‘로-’라고 하니, 이 점에서 히브리어는 간단하다. 이 말은 쓰임새가 퍽 넓어서 “길 없는(로-) 황무지”(시편 107,40), “구름 끼지 않은(로-) 아침”(2사무 23,4), “인간이 없는(로-) 땅”(욥기 38,26) 등으로도 쓰이니 ‘~이 없는’(without)이라는 전치사의 의미도 된다. 구약성경에 두루두루 쓰여 5200번 이상이나 등장하는 말이다.
- 라숀. 본디 ‘혀’를 의미하지만, 비유적 의미로 풍부하게 쓰이고, ‘언어’ 등의 추상명사로도 옮긴다.
혀에 말이 담긴다
라숀은 입속의 혀를 의미한다. 사람의 혀뿐만 아니라 뱀의 혀(시편 140,4) 등 짐승의 혀도 의미했고, 혀 모양의 물건도 모두 라숀이라고 했다. 그래서 ‘불꽃의 라숀(혀)’은 “불길”이요(이사 5,24), 혓바닥처럼 긴 금괴는 ‘금의 라숀(혀)’(“금덩어리”: 여호 7,21.24)이라고 했다.
사람은 라숀(혀)으로 말하기에, 라숀은 말과 관련된 비유적 표현에 많이 쓰인다. 모세는 자신이 말을 잘 못한다며, 하느님에게 “혀도 무딥니다”(탈출 4,10)고 아뢰었는데, 직역하면 ‘랴숀(혀)이 무겁습니다’이다. 한편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은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라숀(혀)의 사람’은 “험담꾼”이요(시편 140,12), ‘라숀(혀)의 주인’은 “주술사”(코헬 10,11)의 뜻이다. 라숀은 때로 “언어”(창세 10,5)나 “말”(느헤 13,24) 등 추상명사로도 옮긴다.
구약성경에는 하느님 자비의 말씀(라숀)이 가득 차 있지만, 때로 쓰디쓴 경고의 말씀도 있다. 오늘 독서를 보자. 하느님은 악인에게 경고하는 말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복음의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타이르는 말이나 증인의 말도 듣지 않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는 자는 어쩔 수 없다. 다른 민족이나 세리 같은 사람으로 여기라고 하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으로 명심해야 할 말씀이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9월 10일, 주원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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