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예수님 이야기32: 열두 제자의 파견 - 오천 명을 먹이심(루카 9,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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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9-23 | 조회수4,754 | 추천수0 | |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32) 열두 제자의 파견…오천 명을 먹이심(루카 9,1-17) ‘오병이어의 기적’은 군중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절정
-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 타브가에 있는 빵의 기적 기념 성당.
열두 제자의 파견(9,1-6)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십니다.(9,1)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보여주신 바로 그 힘과 권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지니시는 힘과 권한을 이제 열두 제자 곧 열두 사도에게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까닭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는 두 가지 목적 때문입니다.(9,2)
그러면서 별도의 분부를 하십니다.(9,3-5) 분부하신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팡이도, 여행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9,3) 이 다섯 가지는 당시 여행객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지참물입니다. 지팡이는 사나운 들짐승이나 강도를 만났을 때, 다리가 불편할 때 사용하는 필수 지참물입니다. 빵, 돈, 여벌 옷, 그리고 이런 것들을 넣을 수 있는 여행보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금하십니다. 왜? 열두 제자가 하는 일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 곧 하느님 일입니다. 하느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나머지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일을 챙기기 시작하면 하느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무르라는 것입니다.(9,4) 이 분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도들이 하는 일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 곧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 집 사람들이 사도들이 선포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면 사도들은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그 사람들에게 집중하라는 것으로 이해하면 어떨까요? 한 집에 들어가서 자꾸 다른 집을 기웃거린다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결국 그 집에 대한 복음 선포도 완수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리라는 것입니다.(9,5) 발에서 먼지를 터는 행위는 그 지역과 절연한다는 표시입니다. 유다인들은 이방인 지역을 떠날 때 혹은 거룩한 땅으로 들어설 때 발에서 먼지를 털었다고 하지요. 루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분부대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는 말로 이 기사를 마무리합니다.(9,6)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다(9,7-9)
헤로데 영주가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합니다.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 탄생 때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던 헤로데 대왕의 아들 중 하나로 갈릴래아 지방을 맡아 다스리던 헤로데 안티파스를 말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 세례 이야기를 전하기 전에 이미 헤로데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다는 소식을 전하지요.(루카 3,19-20 참조)
헤로데 안티파스가 당황한 것은 예수님에 대해 사람들이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났다 하거나 또는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거나 또는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살아났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9,7-8)
하지만 헤로데는 당황해 하면서도 이런 소문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9,9) 루카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헤로데가 요한의 목을 베게 된 사연은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이 자세히 전하고 있습니다.(마태 14,3-12; 마르 6,17-29 참조)
루카 복음사가는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 보려 했다는 말로 헤로데 이야기를 끝냅니다. 헤로데는 나중에 예수님을 직접 보게 됩니다.(루카 23,8 참조)
- 빵의 기적 기념 성당 내부 제대. 제대 앞 제단에 빵과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가톨릭평화방송 여행사 제공.
오천 명을 먹이시다(9,10-17)
한편, 열두 제자가 돌아와 자신들이 한 일을 예수님께 보고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벳사이다로 가십니다.(9,10) 벳사이다는 갈릴래아 호수 북동쪽에 있는 어촌으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아, 필립보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폐허가 돼 유적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군중이 이를 알고 예수님을 따라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맞아 하느님 나라에 관해 말씀하시고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러는 사이에 날이 저물기 시작했고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군중을 돌려보내고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라고 말씀드립니다. 그곳은 고을에서 떨어진 “황량한 곳”이었던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가진 것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라고 대답합니다.(9,11-13)
그런데 모인 사람은 장정만 오천 명가량이나 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대충 50명씩 떼를 지어 자리에 앉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복하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눠주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9,14-17)
이 장면을 잠시 떠올려봅시다. 저녁놀이 번지는 벌판에 사람들이 50명씩 떼를 지어 100무리나 앉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예수님께서 빵과 물고기를 들고 축복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빵과 물고기를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고 제자들은 이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섯 개뿐인 빵과 두 마리뿐인 물고기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식사가 끝났습니다. 남은 음식들을 모아보니 열두 광주리나 됐습니다. 성경에서 12는 완전함, 충만함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흔히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라고 하는 이 일화와 관련해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던 것을 내놓았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이 기적 이야기의 본질을 훼손시킨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보다는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내놓으신 성체성사의 예표(豫表)로 보아야 합니다. 실제로 빵을 들고 축복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는 모습은 성체성사에서 그대로 재현됩니다.
이 일화에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벳사이다로 물러나셨습니다. 그것은 분명 제자들과 따로 하실 일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군중이 알고 찾아오자 피하거나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수많은 군중이 황량한 곳으로 예수님을 찾아오는 것은 단순히 호기심 때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의 간절함이나 절박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외면하지 않고 맞아들여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시며 병을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관심과 배려의 절정이 바로 군중을 배부르게 하신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9,9) 하는 헤로데의 궁금증과 결부되면서 예수님 신원에 대한 의문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이 의문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가득찹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마귀를 쫓아내시며 죽은 이를 살리시고 오천 명을 배부르게 하신 예수는 도대체 누구이신가? 답은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드러납니다. 다음 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9월 24일, 이창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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