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예수님 이야기36: 예수님을 거부한 마을(루카 9,51-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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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11-04 | 조회수4,374 | 추천수0 | |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36) 예수님을 거부한 마을(루카 9,51-56)
예루살렘 향해 사마리아 마을 거쳐가려 했으나…
이번 호부터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기를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9,51-56)
예루살렘 상경기는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9,51)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란 거룩한 변모 기사의 “세상을 떠나실 일”(9,31)을 가리킵니다. 이는 그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까지를 포함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이 일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져야 하기에(9,31 참조),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주 활동 무대는 갈릴래아와 그 주변 일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루살렘을 향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시고,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갑니다.(9,52)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하지요. 하나는 사마리아 지역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사마리아 지방을 피해 요르단 강 동쪽을 따라 내려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마리아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데는 3-4일이면 됐지만 사마리아 지방을 피해 에둘러서 가면 훨씬 더 많은 시일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을 거쳐 가기로 작정하십니다. 유다인들이 사마리아인들에게 갖고 있는 편견을 부수고 두 집단 사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아니면 예루살렘에서 이룰 일을 생각하면서 그 길을 서둘러 가고 싶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심부름꾼을 먼저 보내신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사마리아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싫어하는 유다인들의 성도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루카는 기록합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나섭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는 저 사마리아 사람들을 불살라 버리면 어떻겠느냐는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고 일행은 다른 마을로 갑니다.(9,53-56)
야고보와 요한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사람들을 불살라버리면 어떻겠냐고 예수님께 여쭌 것은 빈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다 보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해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이야기하시는 것도 직접 목격했습니다.(8,28-36 참조)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처럼 다혈질적인 그들은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신 자기들의 훌륭한 스승이 사마리아인들에게 거부당하자 화가 치밀어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살라 버리자는 험악한 말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엘리야 예언자가 사마리아 임금 휘하의 오십인 대장과 그 부하들을 불살라 버린 일화(2열왕 1,10-12)가 떠올랐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나눈 대화는 당신이 “세상을 떠나실 일”(931), 곧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했듯이, “당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새로운 탈출을 실현시키실”(「주석 성경」) 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이루시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해 사람들을 불살라 버린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꾸짖으시지요.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기를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하신 일과 앞으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은 이 일화와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하신 활동은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선포하신 말씀에서 잘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이것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일대에서 하신 일,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4,43)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면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두 번이나 예고하십니다. 루카는 그 일을 이루시려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첫머리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겪으실 일에 대한 복선을 깔아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가 난 제자들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반대자들을 불살라 버리자고 청하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겪으실 배척과 반대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암시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알아 둡시다 : 유다와 사마리아
예수님 시대에 유다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원래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민족이 솔로몬 왕 이후 남쪽은 유다 왕국으로, 북쪽은 이스라엘 왕국으로 갈라진 후 기원전 890년쯤부터 북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건설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북부 갈릴래아와 남부 유다 사이의 요르단 강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을 가리키게 됩니다.
사마리아인이나 유다인은 원래가 똑같은 유다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가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시킨 후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가고 대신에 아시리아 사람을 비롯한 다른 이방 민족들을 사마리아에 살게 하면서, 사마리아 지역에 살던 유다인들의 순수성이 훼손됐습니다. 게다가 야훼 신앙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져 지냄으로써 사마리아 사람들은 남쪽 유다인들에게 점점 멸시를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8) 이후 사마리아인들이 유다인들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반대하면서 앙금의 골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나중에 예루살렘 성전 대신 사마리아의 그리짐 산에 성전을 세워 예배했는데, 이 성전을 유다인들이 파괴하면서 갈등이 더욱 심화됩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 시대에 사마리아인들과 유다인들의 사이는 아주 좋지 않았지요.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0월 29일, 이창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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