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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눈, 나하쉬, 우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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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05 조회수7,487 추천수0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눈, 나하쉬, 우래우스


파괴와 치유의 피조물, 그 위에 서 계신 하느님

 

 

오늘은 히브리어의 14번째 알파벳과 고대근동 세계의 뱀을 알아보자. 뱀은 예사로운 짐승이 아니었다.

 

우래우스. ‘소년왕’으로 알려진 투탕카문의 황금 마스크다. ‘우래우스’라고 하는 코브라 두 마리가 벌떡 일어서서 신적 존재로 여겨지던 파라오를 지키고 있다. ⓒ주원준 2004

 

 

물뱀

 

히브리어 알파벳 ‘눈’은 N의 조상이다. 원시나이어 글자 가운데 뱀과 비슷한 글자가 눈이다. 13번째 알파벳 멤과 14번째 눈은 무척 친근한(?) 사이다. 셈어 알파벳의 순서를 보면 언제나 M의 조상인 멤 다음에 눈이 나오는데, 현대 서양 알파벳에서도 이 순서는 지켜진다. 수천 년간 두 문자는 딱 붙어 다닌(?) 셈이다. 앞에서 봤듯 멤은 물이다. 그래서 눈을 물에 사는 뱀, 곧 ‘물뱀’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히브리어로 눈은 ‘생선’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눈은 우가릿 쐐기문자에서 여러 번 꺾인 뱀처럼 묘사된다. 고대 아람어에서는 두 번 꺾은 곡선으로 묘사되는데, 고대에는 꼬리가 긴 뱀의 모양을 연상할 수 있지만, 후대로 가면서 점차 긴 꼬리가 사라졌다. 히브리어 문자는 두 번 꺾인 곡선을 날렵하게 표현한 것인데, 단어 끝에 쓰는 형태(미형)에서 물뱀의 긴 꼬리를 연상할 수 있다. 아람어에서 눈과 멤은 형태마저 비슷해져 버려서, 자칫 헷갈리기 쉬운 글자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번에도 이 글자의 방향을 바꾸었지만, ‘뉘’라는 이름은 ‘눈’에서 유래한 것이 분명하다.

 

 

신성한 뱀

 

히브리어로 뱀은 나하쉬다. 그런데 ‘점을 치다’는 동사도 나하쉬라고 한다. 뱀의 나하쉬와 점을 치는 나하쉬는 형태가 똑같다. 이런 면도 뱀에 관련된 고대근동의 독특한 문화적, 종교적 코드라고 할 수 있다. 뱀은 거룩함과 관련이 깊다. 이를테면 이집트 파라오의 머리 장식을 보자. 두 마리의 코브라가 일어나서 노려보고 있다. 이 뱀을 우래우스(Uraeus)라고 하는데, 파라오의 신적 주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 이집트어 원셈어 눈. 눈의 가장 오래된 형태로, 뱀을 형상화한 것이다. 벌떡 일어선 ‘코브라’로 볼 수도 있고, 멤과 관련지어 ‘물뱀’이나 ‘장어’ 등으로 보기도 한다.

 

 

구약성경에서 뱀의 역할도 독특하다. 창세기에서 여자를 유혹한 것은 나하쉬(뱀)였다. 그런데 태초에 동산에서 사람이 왜 하필 뱀(나하쉬)의 말을 들었을까? 아마도 뱀이 신령한 짐승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창세기를 보면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창세 3,1)고 나오는데, ‘간교하다’로 옮긴 말은 ‘영리하다’로도 옮기는 말이다.(잠언 12,16.23; 13,16 등) 물론 신령하고 영리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나하쉬의 말을 들은 사람은 태초의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아람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눈. 눈은 점차 단순화되어(붉은색) 날렵한 현대 히브리어 글자에 이른다(파란색). 히브리어 글자의 미형과(초록색) 우가릿 쐐기문자에서(초록색) 뱀을 연상할 수 있다. 한편 아람어 계통에서는 두 번 꺾인 선으로 발전하는데(분홍색), 그리스어 문자 ‘뉘’는(자주색) 방향을 바꾼 것이다.

 

 

점을 치다

 

모세는 이스라엘에서 점쟁이, 복술가, 주술사, 주문을 외우는 자, 혼령이나 혼백을 불러 물어보는 자, 죽은 자들에게 문의하는 자를 엄격히 금지하였다.(신명 18,10-11) 그렇게 금지된 것들 가운데 ‘나하쉬하는 자’(요술사)도 포함되어 있다. ‘나하쉬하는 것’은 ‘마술’로도 옮긴다.(2열왕 17,17) 나하쉬는 비유적인 뜻으로도 쓰여, 어떤 행위를 좋거나 나쁜 ‘징조로 해석하다’(1열왕 20,33)는 뜻도 있었다.(참조: 민수 24,1)

 

- (좌) 나하쉬 뱀. 뱀을 의미한다. 고대근동에서 뱀은 신령하고 영민하여 특별한 짐승으로 생각되었다. (우) 나하쉬 점치다. 뱀을 의미하는 나하쉬와 어근의 형태가 같은 동사로서, ‘점을 치다’, ‘마술하다’, ‘징조를 읽다’ 등으로 옮긴다.

 

 

하느님을 보라

 

광야에서 백성이 하느님을 거스르자, 하느님은 ‘불타는 나하쉬들’(불 뱀들)을 보내셨고, 거역한 백성들이 많이 물려 죽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모세는 이번에도 하느님께 간절히 빌었고, 자비의 하느님은 백성이 살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 방법은 ‘구리 나하쉬’(구리 뱀)를 만들어 높이 달아 놓는 것이었다.(민수 21,6-9) 이 이야기에서 가장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도구로서 나하쉬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은 나하쉬를 보내시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나하쉬에 마음을 뺏기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궁극의 존재는 주님이시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1월 5일,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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