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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사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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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8 조회수6,476 추천수0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사메크


우리 생명 소중히 떠받쳐 주시는 주님

 

 

오늘은 15번째 알파벳 사메크를 알아보자. 그리고 평신도 주일을 맞아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고대 이스라엘의 평신도를 묵상해 보자.

 

이집트의 제드. 고대 이집트 신전의 기둥이다. 돌기둥의 상단 장식을 보면, 야자나무 모양으로 꾸몄음을 알 수 있다.

 

 

신전을 떠받치는 기둥

 

통설에 따르면 사메크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어의 제드(djed)다. 제드는 신전을 떠받치는 기둥으로서, 고대 이집트 문헌에는 ‘제드를 세우다’, ‘제드를 바치다’ 등의 표현이 있다. 제드는 본디 야자나무 등 굵고 큰 나무로 만들었다. 건축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점차 돌로 세웠지만, 기둥 상부를 마치 자연의 나무처럼 장식하는 전승은 계속 이어졌다.

 

고대 페니키아 문자나 라키쉬 문헌에서 이 글자는 가로로 그은 3획의 선과 세로로 그은 1획의 선으로 고정되었다. 우가릿 쐐기문자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에르투리아 문자 등에서는 ‘가로의 3획’만 남았는데, 고대 그리스어 문자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붓을 떼지 않고 가로의 3획을 한 번에 그은 것은 그리스어 크시(xi)의 소문자가 되었고, 가로의 3획만을 뚜렷이 남겨놓은 형태는 대문자가 되었다.

 

한편 이 글자는 히브리어로 발전하면서 모습이 완전히 변했다. 라키쉬 문헌을 자세히 보면, ‘가로 3획과 세로 1획’의 사메크 글자는 다른 글자보다 훨씬 크고 획수도 가장 많다. 그래서 이 번잡하고 큰 글자를 퍽 단순화시키려는 노력이 이루어진 것 같다. 우선 아람어에서는 ‘가로 3획’을 그저 지그재그로 표현하고 세로로 쭉 그은 형태로 발전했다. 그럼으로써 이 글자는 이미 1획의 글자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발전하다가 ‘가로 3획’의 흔적은 점차 사라졌고, 결국 사메크는 히브리어 문자에서 동그란 폐곡선으로 변했다. 가장 크고 번잡한 글자가 그저 하나의 동그라미로 변해버린 것이다.

 

사메크의 발전1. 이집트어에서 제드는 신전 돌기둥 모양의 글자인데(맨 왼쪽 오렌지색), 원셈어에서는 점차 3획의 가로선과 1획의 세로선으로 발전했다. 라키쉬 문헌의 글자나(붉은색) 우가릿 쐐기문자도 이 형태를 따랐다(분홍색). 에르투리아어 계통에서는 붓을 떼지 않고 3획의 가로선을 지그재그로 긋는 형태로 발전했는데, 여기서 그리스어 소문자와 대문자가 나왔다(파란색).

 

 

사메크의 발전2. 라키쉬 문헌의 형태는(붉은색) 아람어 계통에서 극적으로 변했다. 아람어의 사메크는 3획의 가로선을 짧게 지그재그로 긋다가 세로선을 길게 내린 형태다(보라색). 후대로 갈수록 짧게 지그재그로 긋는 형태는 더욱 간략화돼 결국 사라졌고, 둥근 원처럼 발전하다가 히브리어에서는 아예 1획의 폐곡선이 되었다(자주색).

 

 

떠받치다

 

- 사마크. 히브리어로 ‘지탱하다’, ‘떠받치다’를 의미한다. 시편에는 주님께서 인간을 사마크해 주신다는 표현이 풍부하다.

 

 

사메크의 어근인 사마크는 히브리어로 ‘떠받치다’는 뜻이다. 시편에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떠받쳐 주신다는 표현이 풍부하다. 의인은 주님께서 사마크해 주시는(받쳐 주시는) 사람이니(시편 37,17) 의인들의 팔은 결코 부러지지 않는다. 내가 “자리에 누워 잠들었다 깨어남은 주님께서 나를 사마크해 주시기(받쳐 주시기) 때문이니”(시편 3,6) 인간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도우시는 분으로서, “주님은 내 생명을 받쳐 주시는 분이시다.”(시편 54,6)

 

하느님께서 마치 신전 기둥처럼 우리 인간을 받쳐주신다는 시적 표현은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이 본디 얼마나 거룩한 것인지를 알려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고대 이스라엘의 시인은 평범한 인간 하나하나를 소중히 받쳐주시는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노래하고 싶었을 것이다. 평신도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의 예감보다 훨씬 큰 것이다.

 

 

서기

 

- 소페르. 히브리어로 서기(書記)를 의미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종합 지식인으로서, 오늘날 평신도 지식인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메크로 시작하는 낱말 가운데 소페르가 있다. ‘서기’란 뜻이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서기의 교육, 선발, 운영 등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도 이 제도를 받아들여, ‘임금의 소페르(서기관)’(2열왕 12,11) 등이 활약했다. 소페르들은 임금의 행적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이들이 남긴 “다윗 임금의 실록”(1역대 27,24), “솔로몬의 실록”(1열왕 11,41),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1열왕 14,19; 15,31; 16,5.14.20.27 등) 등의 기록은 소실되어 제목만 전할 뿐이니 참으로 안타깝다.

 

소페르는 하느님 백성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승했다. 물론 성경의 기록과 전승도 이들의 몫이었다. 소페르는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친밀하게 교류하며 믿음과 지식을 기른 신앙인이자, 다양한 글을 읽고 남긴 종합 교양인들이었다. 그러므로 고대 이스라엘의 소페르는 오늘날 평신도 지식인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 고대 이스라엘의 평신도들을 묵상하고, 오늘날 평신도 지식인들의 지식과 믿음이 함께 자라나고 심화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1월 19일,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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