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히브리어 산책: 차하크(웃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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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12-18 | 조회수7,102 | 추천수0 | |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차하크 기쁘게 자비를 실천하는 우리는 주님의 일꾼
오늘 제1독서와 화답송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으니, 기쁨으로 충만한 하느님의 일꾼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차하크. ‘웃다’는 뜻이다. 동사 어근은 대문자로 적고 관습적으로 ‘아’(ā)를 넣어 읽는다. 그러므로 ‘차하크’로 발음한다.
기쁨의 하느님
구약성경에서 기쁨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사악 탄생 이야기에서 그 의미가 잘 드러날 것이다. 히브리어로 차하크는 ‘웃다’는 뜻이다.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어 주시면서 늙은 사라이를 통해 “아들을 얻게 해 주겠다”(창세 17,16)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이미 늙어버린 아브라함과 사라이는 속으로 차하크하면서(웃으면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믿지 않았다.(17,17; 18,12) 하느님은 인간이 간절히 바라시는 것을 이루어 주시지만, 정작 인간은 하느님의 권능과 자비를 신뢰하지 못하고 엇나갈 때가 있다. 아브라함과 사라이도 그런 인간적 나약함을 드러냈던 것이다.
하지만 자비의 하느님은 인간의 나약함을 따뜻하게 덮어주신다. 하느님은 고대하던 아들을 주셨고, 늙은 부부는 주님의 명에 따라 그 아이의 이름을 이츠하크(이사악)라고 지었다. 이 이름은 ‘그가(하느님께서) 기뻐하신다’ 또는 ‘그가(하느님께서) 웃으시리라’의 뜻으로 새길 수 있다.
하느님은 이츠하크(이사악)를 통하여 영원한 계약을 세우셨다.(17,19) 이츠하크를 통한 계약이니, 이 계약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인간은 모두 웃을 것이다. 하느님은 이츠하크(이사악)라는 상징적 이름을 통해서 인간의 기쁨과 하느님의 기쁨이 일치하는 계약이 영원히 이어지길 원하셨을 것이다.
- 이츠하크. 이사악의 이름이다. 직역하면 ‘그가 웃을 것이다’인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리라’는 의미로 새긴다. 하늘색 윗첨자 e는 거의 발음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종
염원하던 아들을 얻자 아브라함은 무척 기뻤다. 이어 주님의 천사가 마므레의 참나무 곁에서 나타나자(18,1) 아브라함은 스스로를 ‘종’이라 부르며 주님의 천사들을 맞았다. 히브리어로 종을 에베드라 한다. 사실 에베드(종)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다. ‘종노릇’이란 말이나 ‘이집트 종살이’(탈출 6,6; 20,2 등)의 의미는 얼마나 부정적인가.
하지만 고대근동과 고대 이스라엘에서 종(에베드)은 주인과 친밀한 자요, 주인의 명령을 충실히 실행하는 자를 의미하기도 했다. ‘임금의 종’은 정식 직위의 이름이었다.(2열왕 19,6) 그러므로 하느님의 종이란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당신의 종이라고 부르셨다.(창세 26,24) 모세는 창세기의 세 조상, 곧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을 하느님의 종이라고 불렀고(탈출 32,13), 훗날 모세 자신도 주님의 종이라 불렸다.(여호 1,1) 많은 예언자들도 스스로를 주님의 종으로 칭하며 기도하였다. 한마디로 하느님의 종은 겸손함과 친밀함과 충실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호칭이다.
‘주님의 종’은 이사야 예언자를 거치며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는 ‘주님의 종의 노래’를 통해(42,1-4 등), 장차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인물을 노래하였다. 신약성경은 바로 이 노래가 예수님을 예언한 것으로 고백하였다.(마태 12,18 등) 성모님도 당신 스스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루카 1,38)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유구한 전통을 이으신 것이다.(루카 1,38.48)
- 에베드. 종을 의미한다. 종은 ‘종살이’나 ‘종노릇’처럼 천한 삶을 가리키기도 했지만, 주인과 가장 친밀한 자를 의미하기도 했다. 주인과 마음이 잘 통하여 주인의 일을 실행하는 일꾼이라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종’ 또는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을 쓴다. ‘사목 일꾼’도 비슷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사목 일꾼의 기쁨
사도들은 하느님의 종이란 참된 자유인이라고 가르쳤다.(1베드 2,16) 바오로 사도는 “주님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종은 이미 주님 안에서 해방된 자유인입니다”(1코린 7,22)고 설명하였다. 또한 사도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종’으로 불렀다.(2베드 1,1 등) 하느님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 안에서 기도하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은 해방된 자유인으로서 기꺼이 그리스도의 협력자가 된 사람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사목 일꾼’(27항, 76항 등)이란 표현을 즐겨 하셨는데, 필자는 ‘주님의 종’과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사람의 호칭은 조금씩 바뀌었다. 하지만 시초부터 하느님 종의 내면에는 기쁨이 자리 잡고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기쁜 마음으로 뛰어들고 세상에서 활동하는 사목 일꾼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가르치신다. 기쁜 마음으로 행하는 하느님의 일에 자선이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자선 주일에 교회 안팎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꾼들을 위해 기도한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2월 17일, 주원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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