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종교인은 처음과 나중은 언제나 믿음에 기초해야 합니다.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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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의형 | 작성일2011-03-16 | 조회수488 | 추천수0 | 신고 |
제가 천주교인 것에 자부심을 갖는 것과 반대로 천주교 중앙에서 일어난 꼴을 보면 부끄럽습니다.
지금 천주교 묻고 답하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형식적인 답변이 마치 서구 기독교의 면죄부를 돈주고 팔았던 치욕과 다른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형식론에 내용이 없고 진정성이 없는 답변을 하는 꼴이 추합니다.
이미 니편 내편 나눠놓은 것같이 오해하기 좋은 행태를 보면서,
사랑이 없이 상담을 하는 것은 추태일 뿐입니다.
바른 신앙이고 상담자라면 천주교 내부의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먼저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사회문제와 정치 문제로 말을 시작했지만 결국 종교 믿음에 대해 회의를 갖고 물어야 했습니다.
먼저 종교인의 시작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한국의 카톨릭 교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개인 신앙이 하느님 앞에서 바르면 그만이라는 신앙으로써 종교 지도자의 하느님 범죄를 눈감는 행태입니다.
왜냐 신앙이든 비신앙이든 자살과 폭력에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회는 자살과 묻지마 살인 폭력이 늘어가고 있고, 사회와 국가의 법과 제도적 폭력으로 소수가 비참히 당하는 것을 못 본 척 하는 죄가 얼마나 큰 것이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낙태는 더욱 늘어가고 있습니다.
결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게 만든 사회 구조적인 것에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나라에 대해 종교 지도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교회법에 기준으로 키울수도 그렇게 살 수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 비판과 개선을 말하지 않고, 개인의 신앙에 상담과 답변을 하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가장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신부로서, 사제로서, 추기경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종교 지도자로서 빌라도와 같이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가장 몰염치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인간의 참담함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인가요?
그런데 지금 말하는 제 자신이 이런 것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저도 같은 공범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렇게 넋두리를 하는 것 밖에 없으니까요?
이렇게라도 제 자신의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부끄러움일 것입니다.
이러는 사이에
일본의 지진과 핵 재앙을 말하면서,
결국 사회 불안과 물가 상승, 세계 자원 경쟁의 치열함으로
민심은 더욱 흉흉해지고만 있습니다.
말세론이 심각하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종말론이 기승을 더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인간의 약점을 이용한 간악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천주교에서,
아니 추기경님께서 그렇지 않다는 말만 하셨어도 이렇게 분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은 신앙인이 하느님께 참회하는 맘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모이는 것을 정치적이다, 사회적인 것으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세상으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이는 사탄이 할 짓이지 교회가 할 짓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로,
천주교로 몰려오는 사람들을
추기경님께서 교회 중심에 있으면서
보수화하면서 오는 신자들을 세상으로 쫓아내고 있습니다.
신앙 상담을 한다는 것이
형식 논리에 매여서 진정한 신앙인의 길이라가 보다는
그저 무당과 함께 사는 토속 신앙인으로 살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얘기를 하고, 성경 얘기를 한다고, 교회법을 얘기한다고,
바른 신앙이 갖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천주교 신앙을 갖고,
외경의 토빗기를 읽고 저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남의 죽음에 대해 함부로 하지 않은 한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이는 자신이 힘들고 비난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죽은 시체를 장례식을 치뤄주고 고난을 받는 내용입니다.
진정한 실천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게시판에서, 명동주변의 종교 지도자들은
남의 죽음을 함부리 판단하고 성경과 천주교 법에 따라 실천하라고만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절박함과 억울한 죽음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욕만하는 형식논리로만 말만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 보였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힘도 없는 약자를 위해 자신이 얻는 것 없이 고난받는 자에게 정치적이라고 하고 교회법에 어긋났다고 하면서 탄압까지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못합니다.
재갈이 물려있는 천주교 신앙인에게 비난을 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천주교 지성에 묻겠습니다.
바른 것에 눈길과 시선을 돌린 것에 대해 분명히 하느님께 죄가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른 사랑이 아니면 카톨릭 신앙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예수님을 죽게하는 빌라도와 같은 죄인이 된다는 것을 말하려고 합니다.
지금 고민할 것은 어떤 믿음이 바른 믿음일까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이제까지 온 것이 바른 삶이었는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진정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세상은 더욱 악해져 가는데, 지금 한국의 카톨릭 교회가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상담은 이제 그만하세요.
진정한 믿음을 보여 줄 수 없는 신앙의 거짓을 벗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세상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길에서 벗어난 신앙은 누구든지 하느님 앞에서 문제가 된다고 말할 뿐입니다.
제가 자살을 통해서 방향이 어느 곳을 향해야 하는지 보여 주고 싶을 뿐입니다.
토빗기는 아마도 지금과 같은 시대전환점 근처에서 쓰여진 성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미약한 지식이지만 신앙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제 나름의 결백함을 증명해 보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굳뉴스 게시판에 묻고 답을 청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는 믿음과 양심이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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