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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암, 도르, 올람(백성, 세대,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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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12-27 조회수6,671 추천수0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암, 도르, 올람


아기 예수의 탄생은 새 세대의 시작

 

 

만백성이 한 아기의 탄생을 기뻐한다. 그 아기로 시작된 새로운 세대는 영원할 것이다. 하느님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영원한 찬미를 드리며 기뻐하는 밤이다.

 

암. 백성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할 때만 쓰이고, 다른 백성을 의미할 때는 쓰지 않는다. ‘하느님 백성’의 기원이 되는 말로 매우 의미 깊다고 할 수 있다.

 

 

백성이 고대한 아기

 

히브리어로 백성을 ‘암’이라 한다. 고대 셈어에서 암은 본디 아버지의 형제들(patruus), 곧 ‘친삼촌’을 의미하는 말이었는데(외삼촌을 의미하는 말은 따로 있었다) 나중에 ‘친척’, ‘부족’ 등으로 발전하다가, 결국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가부장제가 당연하던 고대 사회였으니 ‘부계혈족’만을 의미하는 말이 백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이해된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피붙이로 국한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혈족 공동체이기도 하면서, 믿음을 나누는 신앙 공동체이기도 했다. 일찍이 창세기 시대에도 피붙이가 아니더라도 할례를 받으면 ‘하나의 암’(한 겨레)이 될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창세 34,22)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암(하느님 백성)은 운명 공동체였다. 하느님은 당신의 암(당신 백성)에게 다양한 체험을 함께 겪게 하셨으며,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신앙은 깊어져 갔다. 그들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한 아기의 탄생을 고대하게 되었다. 우리는 성탄 대축일 밤 미사의 1독서에서 그 아기로 인해서 구원과 경륜의 새 세대가 펼쳐지길 간절히 염원하는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마음을 확인한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 9,5)

 

- 도르. 세대를 의미한다. 인간의 한 세대를 의미할 수도 있고,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세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겹쳐 쓰면 ‘대대로’라고 옮긴다. 달레트(d)안에 찍은 하늘색 점은 특정한 자음(bgdkpt)으로 음절이 시작함을 알리는 기호다(약한 다게쉬).

 

 

세세대대로

 

아기의 탄생은 새 세대의 시작이다. 세대는 도르라고 한다. 구약성경의 도르는 ‘아버지의 탄생부터 첫아들의 탄생까지’의 시간을 의미했다. 가부장제의 고대사회이니 한 대(代)를 ‘아들에서 아들까지’로 셈했던 것이다. 그런데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의 복음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아들에서 아들까지’만 기술된 것이 아니다. 이 족보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게다가 이 족보의 마무리는 성모님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이 족보는, 인간은 비록 아들만 보더라도 하느님은 딸들도 살뜰히 살피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또한 새로 태어날 아기가 남성과 여성을 모두 구원할 것이라는 것도 암시하는 듯하다.

 

히브리어에는 일종의 겹쳐쓰기 수사법이 있다. 도르에 도르를 겹쳐 쓴 ‘도르 도르’는 세대가 거듭된다는 의미이다. 도르 도르는 ‘대대(代代)’라고 옮기는데, 우리말과 형식과 의미가 일치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표현은 구약성경에 퍽 자주 등장한다. 암의 조상들이 믿던 주님의 칭호는 ‘도르 도르’(대대로) 기릴 것이며(탈출 3,15), 주님의 의로움은 영원하고 그분의 구원은 ‘도르와 도르에’(대대에) 미칠 것이다.(이사 51,8)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의 화답송을 부를 때도 이 말을 기억해두면 좋을 것이다. “영원토록 네 후손을 굳건히 하고 도르와 도르에(대대로) 이어질 네 왕좌를 세우노라.”(시편 89,5)

 

올람. 영원을 의미한다. 과거를 향해서나 미래를 향해서 끝없는 시간을 의미한다. 무한하신 하느님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중요한 말이다.

 


영원하신 하느님

 

세세대대로 이어지는 것은 영원한 것이다. 영원은 올람이라고 한다. 본디 이 말은 무한한 시간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을 의미했지만 점차 ‘영원’을 뜻하게 되었다. 미래를 향해 끝없는 시간도 올람이라고 했고, 과거를 향해 무한한 시간도 올람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올람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속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일찍이 “아브라함은 브에르 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그곳에서 올람의(영원한) 하느님이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창세 21,33)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은 올람의(영원하신) 하느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이사 40,28)로 노래했다.

 

주님의 창조와 구원은 시간의 한계를 넘은 것이니, 그런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일도 영원히 이어져야 마땅하다. 또한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의 자애와 성실을 대대손손 전해야 할 것이다. 대림 제4주일 미사에서 화답송을 부를 때 하느님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도르와 올람을 기억하는 것은 어떨까. “저는 주님의 자애를 올람(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으로 당신의 성실을 도르와 도르(대대로) 전하오리다.”(시편 89,2)

 

※ 그동안 집필해주신 주원준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2월 25일, 주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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