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예수님 이야기48: 깨어 있음과 충실함(루카 12,35-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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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1-20 | 조회수4,953 | 추천수0 | |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48) 깨어 있음과 충실함(루카 12,35-48)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되어 깨어 있으라”
-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비유는 매순간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와 역할을 성실하고 슬기롭게 이행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사진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를 굽어보고 있는 코르코바도 산 정상의 구세주 그리스도 상. [CNS 자료사진]
재물에 관한 말씀에 이어 예수님께서는 충실하게 깨어 있음의 중요성을 두 가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깨어 맞이하는 종(12,35-40)과 집안 관리를 충실하게 하는 종(12,41-48)의 이야기입니다.
깨어 있어라(12,35-40)
유다인들의 결혼식은 신랑의 집에서 그것도 밤에 이뤄졌다고 합니다. 신랑이 먼저 신부 집에 와서 신부를 데리고 다시 신랑 집으로 가서 식을 올리고 첫날밤을 치릅니다. 한쪽에서는 잔치가 벌어지지요. 잔치 손님들은 한밤중에 돌아가기도 하고 새벽녘에 돌아가기도 하지요. 이 잔치는 보통 7일 동안 계속됐다고 합니다.
자기 주인이 혼인 잔치에 초대받아 가면 종은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려면 그 종은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야” 합니다.(12,35-36)
이렇게 준비하고 깨어 있으면서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행복합니다. 이제는 주인이 직접 허리에 띠를 매고 그 종들을 식탁에 앉힌 다음 곁에서 시중을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12,37) 왜 주인이 직접 종의 시중을 들까요? 주인이 언제 오든 관계없이 깨어 있다가 자기 직분을 다한 종에게 감동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도둑이 언제 올지 알면 집주인은 도둑이 벽을 뚫고 들어올 수 있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라며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고 하시지요.(12,39-40)
도둑이 벽을 뚫고 들어온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만,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가옥들의 벽은 진흙으로 이뤄져 있어서 도둑이 벽을 파서 뚫고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도둑이 어떻게 벽을 뚫고 들어올 수 있느냐가 아니라 도둑이 벽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관건이 되는 것은 도둑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 올 때입니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지금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서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을 때에 내가 올 터이니 준비하고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미래에 있을 일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미 두 차례나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9,22.44-45) 따라서 이 말씀은 당신이 다시 오실 때, 곧 재림의 때 또는 종말의 때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12,41-48)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가 나서서 묻습니다.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12,4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시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충실한 종은 주인이 맡기는 종들을 잘 관리하고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는 종입니다. 이렇게 슬기로운 종에게는 주인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맡길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늦게 올 것이라고 여기고는 맡겨진 종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는 종은 불충한 종입니다. 주인은 생각지도 못한 날, 짐작도 못한 시간에 돌아와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입니다.(12,42-46)
이 비유 자체는 이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는 것 같습니다. 비유는 깨어서 준비하는 자세가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줍니다. 주인이 언제 오든 상관없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다만 불충한 종을 “처단”한다는 표현이 좀 섬뜩합니다. 우리말 ‘처단(處斷)’은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하는 것’을 뜻합니다. 치워 버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처단하다’의 그리스어는 고대 페르시아의 극형 방식인 ‘둘로 잘라 버리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불충한 종의 최후가 그만큼 비참하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주는 섬뜩한 느낌 때문인지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어서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않았거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더 많이 맞을 것”이지만 주인의 뜻을 모르고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라고 조금 표현을 순화하십니다. 그러면서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고 덧붙이십니다.(12,47-48) 이 마지막 말씀은 베드로가 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임무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만큼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하지 못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더욱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깨어 있어라.’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 되어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루카복음서 저자인 루카 복음사가의 관점에서 보면, 루카가 몸담고 있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그 지도자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선포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공동체의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을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을 제때에 맞이하는 종은 행복합니다. 주님께서 그날에 몸소 그들의 시중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또 주님께 받은 직분을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처럼 그렇게 자기에게 맡겨진 공동체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봉사하는 지도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충한 종처럼 자기에게 맡겨진 공동체의 형제자매들을 혹사하며 멋대로 먹고 마시고 술에 취한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거나 주님 뜻대로 하지 않으며 더욱 심한 벌을 받을 것이고 주님의 뜻을 몰라서 그랬다면 덜 심한 벌을 받을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당시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만, 또 예수님의 재림 곧 종말과 관련해서만 적용될까요? 깨어 준비하고 충실한 종이 되라는 말씀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입니다.
우리 신자 개개인에게는 자신의 죽음이 곧 종말일 것입니다. 따라서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잘 맞이하려면 지금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종처럼 처신해야 합니다. 그것은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니 안절부절못하고 걱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찾고 하느님께서 뜻을 실천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특히 주님의 명을 받고 형제자매들에게 봉사하라는 책임을 맡은 지도자들은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하지만 준비해 깨어 있고 맡은 일에 충실하는 것은 죽음이나 종말을 대비해서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언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충실하게 살아가며 깨어 준비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라도 능히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잘 알면서도 또한 곧잘 잊어버리는 삶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월 21일, 이창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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