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의 세계: 키루스 임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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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1-21 | 조회수6,071 | 추천수1 | |
[성경의 세계] 키루스 임금
기원전 538년 이스라엘은 바빌론 유배에서 풀려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해방을 선포한 이는 키루스(Cyrus) 왕이다(2역대 36,23). 바빌로니아 멸망 직후였다.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라 했다(이사 45,1). 이방인으로 이렇게 칭송된 이는 이후 등장하지 않는다. 유대인 50년 포로생활을 끝내게 했기 때문이다. 1세대는 바빌론에서 대부분 죽었다. 귀향은 2세들이 주도했다. 바빌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300km. 긴 여정이었다. 여러 이유로 포로지에 정착한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키루스 임금은 유대인 종교와 전통을 모두 인정했다. 바빌론이 이스라엘에서 뺏어왔던 성전 기물도 천개 이상 돌려줬다(에즈 1,9). 성전 재건에도 깊이 관여했다. 기초공사에 왕실 경비를 부담시킨 것이다(에즈 6,4). 바빌론 신전도 복구했으며 그들의 종교도 모두 인정했다. 속국 종교에 간섭하지 않는 정책을 펼친 것이다. 키루스는 티그리스 강변 메디아(Media) 출신이다. 지금의 이란 땅 북서쪽이다. 왕의 외손자로 태어났지만 쿠데타로 실권을 잡았다(BC 550년). 바빌로니아 정복을 끝내자 메디아를 합병해 새로운 나라를 선언했다. 페르시아 제국이다. 재위 20년 동안 이집트를 제외한 오리엔트 전 지역을 정복했고 중앙아시아 유목민과 전투 중 죽었다. 평생 전쟁터를 누빈 왕이다. 아들 캄비세스 2세가 뒤를 이었지만 얼마 못가 죽고 둘째 아들은 살해되었다.
혼란을 수습하고 왕위에 오른 이가 세 번째 임금 다리우스(Darius)다. 키루스 왕 사위였다. 제국을 안정시켰고 유대인에겐 성전 재건의 은인이었다. 바빌론에서 돌아온 이들이 예루살렘 성전 복구에 매달렸지만 여러 사정으로 중단되곤 했다. 다리우스는 법령을 내려 제도적으로 도움을 줬던 것이다(에즈 6,7). 기원전 519년이다. 바빌론에 남았던 유대인들의 로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왕실 문서고에서 키루스 칙령을 찾아내 왕에게 보여줬던 것이다(에즈 6,3).
다리우스 아들이 넷째 임금 크세르크세스(Xerxes)다. 다리우스와 키루스 딸 아토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확실한 신분으로 준비된 왕이었지만 전쟁에 시달리다 측근의 반란으로 죽었다. 구약에 의하면 그의 왕비가 에스텔이며(에스 8,1) 유대인 축제 푸림절에 관여된 왕이다. 크세르크세스 아들이 아르타크세르크세스(에즈 8,1). 키루스 증손자로 사제 에즈라와 총독 느헤미야를 파견해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마무리했다. 키루스는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왕이란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그렇게 불러도 손색없는 왕이었다. 속국의 모든 종교를 존중해 줬고 포로들을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고대사회에서 정복지 문화를 인정한다는 건 대단한 지혜였고 자신감이었다.
[2018년 1월 21일 연중 제3주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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