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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교무금을 강요하는 성당 카테고리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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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경호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22 조회수5,054 추천수4 신고
† 찬미예수님
 
자매님의 사연을 읽고난 뒤, 성모님의 꼬치꼬치 사랑을 생각해봅니다.
자매님의 성씨가 우리 처의 성씨와 같군요. 반갑습니다.
먼저 전체적으로 성가정의 디딤돌이 되길 바라는 마음과 금번 사건이 또한 우리가 함께 생각해볼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성당에서 사무원이 큰 실수를 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필자는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는 가장입니다. 임의 글을 보며 쌀독의 쌀이 떨어질 때 박아지를 긁어야 했던 우리시대 어머니들의 애환을 함께 연상해보기도 합니다. 개인적 느낌이지만 성당에는 삼대 봉사자가 함께 함을 보기도 합니다. 성직자, 사무장, 기관장이라 표현하고 싶군요.
 
이 세 사람의 특징은 일당백 또는 일당 천의 업무를 통괄해야 할 때가 많기에 우리 평신자와 성무자들간의 관계에 있어 때때로 그러한 일들이 보이고 이에 더욱 소중한 보이지 않는 그것들이 우리들의 가슴을 울릴 때가 많다고 봅니다.
 
사무장은 가끔 그것을 사무적으로 처리할 때의 한계와 문제점들이 있겠는데 중요한 것은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인 우리가 이들을 약자로서 예우해 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또한 자매님의 대처는 매우 순수하고 열정이 담긴 과정이라 여겨집니다. 자매님의 여린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것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는 기원을 나누고자 합니다.
 
필자는 성가를 기십여년 불러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 성지에서 최근 1인 미사곡을 지난 사순 3주일까지 7년간 봉송하던 가운데 관련 일화를 비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부님께서 전에 없이 처음으로 봉헌금에 관한 강론을 하셨는데 필자는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가졌지요. "신부님..., 그러지 마시고 주님이 좋아하실 푸른 돈을 냅시다!''라고 한 번 해 보시지요. 하며 속으로 독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천주교가 농담어린 소리로 ''천원을 주일에 내는 종교''인들이라는 죠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날 제의실에서 수녀님이 짜증난 목소리로 "신부가 돈 이야길 하면 성당이 망하지! 망해!"하고 혼자말로 투정을 부리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수녀님, 우리 와이프는 제가 돈 못 번다고 후라이펜으로 때리는걸요"라고 의미형의 한 마디 죠크를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수녀님은 곧바로 "그것은 개인적인 일이잔아욧!"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가벼운 미소를 던지며 일이 매듭 되었고 그 수녀님은 얼마 뒤 모 피정지 수녀원으로 영전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 수녀님 전의 어떤 아기 수녀님이 있었는데 이 수녀님은 이상하게도 미사가 끝난 뒤의 대화는 히스테리 일색이었습니다. 뭔가 남다른 사연이 숨어 있었겠지요. 하여 하루는 나도 맞 짜증으로 다시는 상대하지 않으려는 암시를 보냈는데 수녀님의 기가 강하기에 그 날은 미사 뒤 일부러 따라와서 화해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 필자는 길을 걸으며 이런 말을 하였지요. "수녀님, 우리 평신자들은 세상속에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짜증 함부로 내지 말라는 소리였지요)" 아무튼 제 눈에 안경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는데 얼마 뒤 이 수녀님도 봉쇄 수녀원으로 줄행랑을 쳤겠다는 기억을 회상해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침묵 봉쇄 수도회와 활동 수도회를 연상하고 있습니다. 두 수녀님을 인용한 것은 자매님이 우리처를 닮은 보편 여인으로서 ''교무금'' 관련 사무원과 얽힌 그것들을 함께 풀어보자는 의미입니다. 대모님께서 교무금에 대하여 합당한 설명을 주셨으리라 봅니다. 교무금을 제 때에 내는 신자들 아마도 소수라 여겨집니다. 그만큼 세상속에서 살기가 어렵고 광에서 인심 난다고 우리네 가정사에서도 오늘 이시간 또한 수 많은 부부들이 금전적 문제등과 연루되어 이혼의 위기로 치닿고 있기에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승리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자매님이 고운 새댁이라 하셨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보시는 교형 대다수는 또한 자매님의 가정이 더욱 성화되어 우리 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이끌어 주길 바랄 것입니다. 따라서 금번 사건은 자매님이 앞으로 다수의 여인들이 ''남편의 검은돈''을 경계하지 않는 이 시대의 문제들을 타파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자매님의 이야기는 마치 성모님 품에 안긴 우리가 "엄마! 엄마! 하며 예수님의 생애를 함축한 묵주기도를 연상하듯 고운 모습을 이어주고 계셨습니다.
 
한편 그 사무원은 가톨릭 교회내에서 흔치않은 개인적으로 있을 수 없는 느낌의 언행으로 자매님을 놀라게 하였다는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사무적이다 못하여 아예 가톨릭 교리의 그것과 반하는 실적 위주의 언행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틀림없이 삼대 봉사자의 하나인 사무장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고 이것이 또한 우리시대 교회와 세상을 오가는 우리들의 거울이라 여겨지는 것입니다.
 
미사를 궐하는 신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또한 교무금을 올바로 내지 못하는 우리네 마음과도 비례할 것입니다. 교무금이라는 것 또한 말씀 전하다시피 양보다 질입니다. 자매님이 금번 사건을 계기로 필자처럼 오버페이스 하지 않고 항구하게 신앙생활 영위할 수 있는 신자의 도리로서 적당히 바칠 수 있는 지혜를 추구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적당히라는 말은 사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만 예수님께서는 부자의 그것보다 과부의 은전 두 닢을 더 반겨주심을 묵상하며 현 시대의 예수님 또한 가난하시기에 이태석 요한 신부님 말씀 가운데 세상의 셈 법은 열가지중 한가지를 나누면 결국 남는게 없겠다 하였으나 하늘나라 셈 법은 그것이 천가지 만가지의 열매로 돌아온다 하였슴을 기억합시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비록 멀고도 험하겠으나 오늘의 순수한 자매님의 아내 즉 ''안의 해''로서 남편을 ''남중 내편''으로 더욱 승진하라는 계시라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계시를 따르는 신앙인입니다. 인간의 깨달음으로 얻는 자연 종교인 불교와 교리가 비숫하지만 다소 다른 무엇도 기억할 것입니다. 예로서 불가에서는 비움이 우선이지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그것을 더욱 주님께 정화로서 의탁하고 나눔인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사무원의 그 실수는 또한 자매님과 나를 닮은 어린아이같은 응석이라고 여겨집니다. 한마디로 과잉 충성인 것이겠지요.
 
성당 내에서 돈을 강요한 사무원의 실언은 우리에게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크리스마스 예수님 부활을 기다리는 오늘 수난 예절의 시간과 세상 속에서의 세 번째 크리스마스! 그리스도 미사 여정을 함께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이 이미 세상 한 가운데에서 그 사무원이 될 수 있고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에도 참으로 어려운 해법등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매님은 매우 커다란 은총의 갑옷을 입었다 여겨집니다.
 
필자는 남자의 한 사람으로서 여인의 물질에 관한 박아지를 매우 싫은 것중 하나로 봅니다. 대책없이 싫어만 하였으니 지금의 그 결과와 과정은 어떠할까요? 한마디로 부끄러운 기억들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을 대신하여 인류의 구원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돌아가신 주님께 감사를 올려봅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하면 할 수록 마치 누룩과 같이 진행되온 영성들이 어느덧 변질까지도 생각되어 헤매여야 하는 불찰과 고뇌같은 것을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오늘을 생각하며 나는 과연 얼마나 상대의 영혼을 재빨리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는가?를 끝없이 묻고만 있는 제 자신이 초라합니다.
 
그래서 십자가 예수님의 일곱 마디를 바라보며 자매님의 그것과 함께 다시 한 번 꼬치꼬치 묵상안을 펴 봅니다.
 
1. 저들은 지금 무슨 죄를 짓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2. 어머니, 이 사람들이 이제부터 당신의 아들입니다.
3. 베드로, 야고보, 요한아 이 분을 너의 어머니로 모셔라.
 
4. 목마르다(육의 갈증)
5.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영의 갈증)
6. 다 이루었다.
7. 아버지, 제 영혼을 당신께 맡기나이다(숨을 거두시는 예수).
 
자매님, 주님은 이처럼 분노에 더디십니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천국을 향하는 지름길이 ''돌아가는 길''에 있음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돈과 하늘나라의 상관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결국은 돌아가야 하는 이 여정 속에서 신혼의 희망찬 그것들을 그렇게 곱게 나눌 수 있음에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자매님 덕분에 황씨 성 가진 필자의 처와의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시어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사람 상대하는 사무실 사람들의 때때로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한계성을 잘 거론해 주셨고 상기 주님 일곱 마디에 의거 그들을 위하여 우리가 기도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무장 가운데 극히 일부와 세상속의 수많은 권력형 졸부형 비리자들은 이 시대에 썩어 없어질 사건등으로 재주는 내적 봉사자들이 부리는데 냉담하였던 혼인 가족들과 장례 가족들의 촌지등을 도덕 불감증등에 현혹되어 유다처럼 주머니에 넣는 무리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우리 자신의 내면 겨울일 수 있기에 문제형의 촌지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학부형의 그 맘처럼 우리 가톨릭인들 또한 더욱 그것들을 하느님께 의탁하고 봉헌하는 여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자매님의 그것은 결국 우리가 겉모습에 연연한 거울을 자주 보되 내면의 거울은 자주 보지 못하는 가톨릭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으며 그 가운데 자매님은 특별한 은사를 접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하늘로 돌아갈 때 돈보다, 명예보다 심지어 문 턱까지만 배웅해 주는 가족보다 가장 소외받던 영혼과 비로소 영원속으로 손잡고 떠나는 그날을 예수님의 일곱마디처럼 준비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부활을 기다립시다.
 
세속의 안정욕구등으로 우리나라 아내들 다수가 역시 세속의 명예욕구등에 스스로 시달리는 남편들 다수에게 그저 남는 것은 돈이라는 자괴감으로 가정을 연명하는 안타까운 사례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도 자매님의 본 사건은 놀라운 축복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 저녁 연중 유일하게 미사가 없는 주님 수난 예절에서 자매님 가정을 함께 기억할 것입니다. 자매님도 또한 일상 안에서도 성당 입당시 제일 먼저 그리스도의 제대를 바라봄이라는 은총으로 기억하며 그들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봉헌해 나가는 생활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2011. 4. 22(金). 海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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