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세례성사---이완희 신부님 | 카테고리 | 7성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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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타한인성당 | 작성일2011-05-19 | 조회수2,708 | 추천수0 | |
세례성사
이완희 신부
본당에 세례성사가 있는 날은 여전히 잔칫집 분위기가 난다. 꽃다발 하며 여러 가지 성물들 십자가, 묵주, 성상 그리고 교회 서적들이 새 영세자들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기념사진을 신부님들 수녀님들과 함께 폼나게 찍고 가족들과 대부모들이 함께 모여 맛있는 것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의미 있는 나눔들이며 그곳에 구원의 기쁨이 함께 있음을 고백하는 아름다운 모습임에는 틀림없다.
세례 성사에는 이와 같이 충만한 기쁨이 가득 넘친다. 그리고 그러한 기쁨은 죽음을 뛰어넘었다는 통과(Pascha)의 축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죽음을 뛰어넘었다는 고백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이 세상을 살면서 죽어야 할 운명임에도 세례성사를 통해서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다니 세례성사는 참으로 기쁘고 의미있는 사건인 것이다. 죽음을 뛰어넘는다는 이 대사건은 죽음의 체험에서 출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음을 통해서 완성되듯이 세례성사도 죽음을 통해서 구원이 이르게 됨을 선포한다. 즉 죄에 대해서 죽고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세례예식은 침례로 거행되었다. 깊은 물속에서 온몸을 다 담근 채 성사를 주고 받았다는 것이다. 주례자는 영세 받는 이의 머리를 세 차례 물속에 밀어 넣으며 세례성사를 집전하였다. 물속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으므로 이 예식은 상징적으로 죽음을 의미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남에 대한 명확한 의미가 세례예절에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세례는 이렇게 죽는 성사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이미 죽은 목숨들이라고 하겠다. 죄에서 죽고, 생명으로 부활한 이들이라는 것이다.
요즘에는 세례성사가 더 이상 침례로 집전되지 않는다. 그 대신 상징적으로 이마에 물을 세 번 붓는 예식으로 집전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세례성사의 의미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모든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죽은 목숨들인데, 지금 저 마다 살았다고 소리치며 아우성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성사에 대해서 공부해 보기로 하자.
(1) 초대교회의 세례성사
세례성사에 대한 가르침
세례성사에 대한 언급은 이미 신약성서 곳곳에서 발견된다. 공관복음에서 예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고 있으며(마태28,19), 사도행전도 예수의 이름으로(사도 8,15-17) 세례를 베풀었다고 전한다. 사도 바오로는 파스카와 관련시켜 세례에 대해서 말한다(로마 6,3). 이렇게 성서에서 벌써 세례성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초대 교회 문헌에도 세례성사는 자주 등장한다. 디다케(1세기말-2세기 초 시리아 기원의 문헌)는 세례성사의 예식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언급하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흐르는 물 안에서 세례를 주는데 흐르는 물이 없다면 그녕 물로 주며 물이 모자를 때는 머리에 3번 부으면 된다”고 디다케는 말하고 있다. 성 유스티노는 자신의 호교론에서 세례성사를 받기 전에는 집전자와 예비자 모두 단식해야한다고 가르친다. 이는 세례성사를 받기 전에 엄격한 준비 과정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러 교부 문서들을 분석해보면 초대교회에는 세례성사는 주로 사순시기가 끝나는 부활시기에 집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신자들의 세례는 여자 집전자가 물 속에 함께 들어가 주어야 한다고 히뽈리또는 사도전승에서 가르치고 있다. 예비자와 신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2세기의 떼르뚤리아노의 증언에서 볼수 있듯이 세례 준비기간은 초대교회부터 중요시 여겨졌다. 특히 당시가 혹독한 박해시대였으므로 예비자의 선발 및 교육과정은 매우 엄격했다. 치쁘리아노는 세례자들을 말씀의 청취자(audientes)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오리제네스는 세례 지원자들을 일정기간이 지난 후 세례후보자들로 선발하는 선발예식의 집전을 주장하기도 했다. 히뽈리또의 사도들의 전승에서도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예비기간을 두었음을 알수 있다.
예비자 입교 허락식(히뽈리또, 떼르뚤리아노)
세례자가 많아지고 세례예식이 더욱 발전하여 4세기 경에는 교회의 교도권에 생명의 전수를 예비자가 청원하는 예식이 생겨나는 데 이를 입교 허락식이라고 불렀다. 이 때 예비자들은 세속적인 것을 끊을 것을 서원하였다. 아우구스띠노의 증언에 따르면 이 예식은 서방교회에 4세기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이 예식 중에 십자표시를 이마에 그어 주었다고 한다. 후에 소금을 뿌리는 예절, 안수등이 이 예비자 입교 허락식에 추가 되었고 7세기에는 숨을 불어넣는 예식으로 시작하여 강복으로 끝났음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대부모의 역할
초대교회 때부터 대부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대부모는 예비자에 대해 교회 앞에 완전히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이 박해상황이었고 많은 밀고자와 배교자가 있었기에 새 영세자들의 대부모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었다. 특히 떼르뚤리아노와 테오도로는 대부모를 보증인이라고 불렀고, 에제리아는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렀으며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대부모를 영적 부모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예비자 교리
예비자 교리는 성직자, 평신도 모두 할 수 있었다. 아우구스띠노에 의하면 예비자 교리는 창세기 첫 구절(In principio fecit Deus caelum et terram)로 시작했다고 한다. 예비자들은 주일 집회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으나 미사의 말씀의 전례 부분만 참석할 수 있었고 성찬의 전례(Eucharistia)가 시작될 때는 성당에서 퇴장하여 교리교육을 받았다. 예비자들을 위한 교육기간은 지역교회별로 차이가 있었는데, 떼르뚤리아노는 3년간 교리를 배워야 했지만 예비자가 열심하면 더 빨리도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증언한다. 300년 경의 스페인의 Elvira 공의회에서는 2년을 표준으로 삼았고 병자는 빨리 받을 수 있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3세기 이후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세례 성사의 집전을 부활절(빠스카)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예비자 교리 교육기간에는 다양한 예절들이 행해졌다. 의미 있는 예절로는 자기 이름을 기록하는 예절이 있는데 이는 대부모와 함께 주교에게 나아가서 생명의 책에 자기 이름을 쓰는 예절이다. 이 때 새 이름을 쓰는데 이는 구원으로 선발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예식 후에는 예비자들을 “뽑힌 이(로마)”, “지원자(다른 서방지역들)”, “빛으로 나아가는 이들(동방지역들)”이라고 불렀다. 특히 세례성사를 받기 바로 직전의 사순절에는 3가지 준비를 통해 세례를 준비하여야 했다. 이 3가지 준비는 교리교육, 전례적 준비, 고행이었다. 이 기간에 이뤄지는 교리교육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는데 예비자들은 거의 매일 성당에 모였고 이 때 주교는 집중적으로 성서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고 한다. 또한 예비자들에게 이 시기에 신경, 주의 기도 등의 내용에 대해 집중으로 가르치기도 하였다. 또 다른 준비로 전례적 준비가 있는데 이를 통상 구마예식이라고 불렀다. 이 기간에 신자로서 악의 세력과 대항하기 위한 전례적 준비로 구마예식을 거행하였던 것이다. 거의 모든 초대교회의 전례 자료들이 증언하고 있는 이 구마예식은 성사적인 차원에서 엄격하게 집전되었다. 마지막 준비로 세례예식 직전의 사순절에 거행하는 단식과 고행의 시기가 있다. 이때는 음주, 육식 등이 금지되었고, 목욕이나 호화생활 등은 자제 되었으며 밤샘기도, 금욕, 희사 등이 강조 되었다.
세례 준비예절
세례를 박기 직전에 마지막 준비예절을 거행하였는데 사순시기 중에 세례를 준비하기 위한 마지막 예절로서 공적으로 악을 끊고 신앙을 고백하는 예식이 집전되었다. 또한 밀라노와 로마에서만 있었던 예절로 “열려라(에파타)”라는 예식이 있었는데 그 말이 뜻하는 데로 신앙을 위한 귀와 혀의 열림을 상징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마태 7,32-35). 이 마지막 준비예절은 사탄과 세속적 유혹을 끊고 그리스도와 일치를 고백하는 예절이 거행되었는데 지역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이 끊음의 예식이 거행되었다. 참고로 안타오키아에서는 “나를 그리스도와 묶겠다“는 고백이 이 예식 중에 행해졌다고 한다.
마지막 준비예절 중에 중요한 것이 도유예절이다. 이 도유예절은 예비자성유의 도유예절(라틴교회와 희랍교회)과, 구마의 성유의 도유예절(예루살렘), 향유의 도유예절(안티오키아)등 이 지역별로 다양하게 거행되었으며 이에 따라 기름의 종류와 명칭 등도 매우 다양하였다. 기름을 바른 후에 몇몇 지역에서는 옷을 벗기는 예절을 거행하였다. 침례를 위하여 옷을 벗기는 것으로서 옷 벗김의 의미, 세례의 의미 등에 대한 설명 및 기도가 뒤따르는 예절이었다.
세례식
이러한 준비가 모두 끝나면 세례식이 거행되었는데 파스카 저녁(부활성야)에 장엄하게 집전되었다. 맨 먼저 세례수가 축복되었는데 전승에 따르면 빠스카 날 첫 닭이 울 때 물을 축복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물은 세례를 상징하는 것이며 이 축복 예식 안에서 구약의 여러 가지 상징적인 사건들이 설명되었다. 이 예식은 로마유형, 스페인 갈리아 유형, 동방 유형등으로 구분할수 있으며 물을 축복하는 예절과 세례대의 뚜껑을 여는 예절(스페인)로 나뉘어 있기도 하다. 이어서 신앙고백예절과 침례가 뒤따른다. 예비자가 물속에 들어가 서서 주교의 물음에 답하고 신앙을 고백하면 주교는 그 예비자에게 세례를 집전하였다. 침례를 위한 잠수 숫자는 지역 교회마다 차이가 있었다.
세례 후에는 몇가지 보충 예절이 뒤따랐다. 아프리카에서는 도유와 안수가 뒤따랐는데 이 보충예식으로 세례가 완성되었다. 떼르뚤리아노 교부가 남긴 세례 후의 낭송된 시는 세례의 의미를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다.
“육신은 씻겼습니다. 영혼의 정화를 위하여
밀라노지역에서는 세례 후에 도유와 세족례, 흰옷을 입힘, 십자를 긋는 예식 등이 뒤따랐으며 로마에서는 도유와 십자표시를 그음과 안수, 흰옷을 입히는 예식이, 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도유, 안수, 그리고 곳에 따라 흰 옷을 입히는 예식이나 혹은 세족례가 뒤따랐다. 세례 이후에 성령을 청원하는 예절이 거행되었는데 이는 견진성사의 초보 형태로 예절의 형태는 차이가 있었지만 동서방 교회 모두 보존하고 있었다. 서방교회에서는 이 예식이 후에 견진으로 발전하여 세례성사로부터 분리된다. 세례성사는 새 영세자들이 성찬에 참여하게 되는 영성체로 장엄하게 완성되었음을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초대교회 때 이미 오늘날 거행하고 있는 많은 예식들이 거행되었다. 세례를 통해 죽음을 이긴 우리는 이러한 세례 예식을 하나 하나 묵상함으로써 더욱 의미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 중세와 근대의 세례성사
카롤링 왕조(7-8세기)까지의 입교성사
교회가 자유를 얻음에 따라 입교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지방마다 매우 다양하게 여러 단계별로 이뤄지던 세례성사 예절이 로마를 중심으로 단순화하여 7단계로 조정되었고 주의 기도 수여식 때 성서가 함께 수여되기도 하였다. 또한 세례성사를 집전하는 형식이 744년 교황 자카리아에 의해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에게 세례를 줍니다”라는 현행의 형태로 확정되었다. 특히 갈리아와 스페인 지역에서는 이 때 집전시기에 대해 엄격하게 규제하여 예절들이 파스카 축제일에 거행되어야 함을 강조하였고 따라서 성지주일과 부활 사이에 많은 예절들이 거행되었다.
9-12 세기의 입교성사
이미 대다수의 성인들이 세례성사를 통해 신자가 되었으므로 성인입교 예절이 전례 안에서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세례성사의 주 대상이 되어 세례성사는 어린이를 위한 성사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 때부터 사제들이 거행했던 유아 세례집전을 더욱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주교들의 보충예절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는 견진성사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후에 어른들이 입교할 때도 어린이 예식을 사용하게 되었으므로 단계별 세례예식은 사라지게 되고 어린이들에게 집전하듯이 한꺼번에 성사를 베푸는 <간략한 입교 예식>이 유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예식서와 예식의 형태가 변경되면서 초대교회부터 사용되어오던 성유축성기도문, 물 축성기도문의 형식이 변화되어갔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대로 유아 영세자가 대부분이므로 첫 영성체를 언제 할 것인지에 관한 규정들이 생겨나게 된다.
12세기 이후의 세례성사
12세기 이후에는 원죄를 없애주는 세례성사의 성격이 강조되어 아기가 태어나면 생후 즉시 세례 받는 것을 강조하게 된다. 이는 유아 사망률이 높은 시기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 이르러 몸 전체를 물 담그는 침례가 간결하게 물을 몸에 붓는 형식으로 예절의 형태가 바뀌게 된다. 또한 단계별 예식이 완전히 사라지고 한꺼번에 모든 예절이 집전된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관습이었던 신경과 주님의 기도를 수여하는 예절 등이 사라지게 된다.
트렌토 공의회 직후에 전례 개혁운동이 잠시 일어났고 이 때 Santori추기경이 초대교회 전승의 세례예절을 도입한 예식서를 간행했으나 결국 1614년 간행된 교회 공식 예식서인 바오로5세의 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에서 채택되지 못함으로써 세례성사는 개정되지 못하였다. 1614년 개정 예식서는 아메리카, 아시아 등의 선교지역 교회를 위하여 예식서에 성인 영세예절을 어린이 영세예절로부터 독립하여 수록하고 있지만 이 성인입교 예식도 교회 전통의 단계적인 예식 집전이 아니라 한꺼번에 예식 전체를 거행하는 예식으로 꾸며지게 되었다. 단지 이 예식서는 옛 전승 예절 중에서 영세준비예절의 첫 구마기도 부분만을 부분적으로 채택하였을 뿐이다. 이 예식서에 특색이 있다면 예식 중 사제가 예비자 성유를 도유한 후에 자색 제의에서 흰색 제의로 갈아입는다는 것과 대세를 받은 사람들을 위한 보례예식을 부록으로 싣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앞서 말한 대로 견진성사 예식은 세례성사와 완전히 분리되어 주교에게만 위임되었다.
12세기 이전에는 견진과 첫영성체는 조기 허용이 매우 강조되었는데 이는 당시의 높은 사망률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첫영성체의 남용으로 인해 13세기초 파리 시노드에서는 어린 아기들에 대한 영성체는 금지시켰다. 이 규정이 1215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확정됨으로써 첫 영성체시기는 7세에서 12-3세로 늦춰지게 되었다. 또한 견진성사는 처음에는 나이에 관계없이 주교님을 첫 번째로 만날 때 집전할 수 있었으나 1566년 이후에는 오성이 열리는 나이가 되어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18세기 이후에 와서 첫영성체 이후에 견진을 받는 오늘날의 전통이 불란서에서 시작되었고 어린이의 첫영성체 나이는 1910년 교령 <Quam singulari>에 의해 명오가 열리는 때인 만 7세 전후로 하는 것을 권고하였고 이는 1917년 교회법전에 명문화되었다.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세례
공의회의 전례헌장은 예식서의 폭넓은 개정을 제시하여 준다. 전례헌장은 두 가지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첫째, 어린이 세례예식서는 “어린이들의 현실에 맞게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며, 둘째, 성인입교예식은 초대교회 때 행했던 것처럼 단계별, 시기별로 다양하게 거행되었던 세례 성사예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입각하여 어린이 세례예식서가 1969년 5월 15일에 출간되었으며 또한 어른 입교 예식서도 1972년 1월 6일에 공의회의 요구대로 단계별 입교예식을 중심으로 출간되었다.
어린이 세례예식
새 예식은 공의회의 뜻에 따라 단순히 어른 예식의 수정판이 아니라 어린이의 현실에 맞게 개편되었다. 그 결과 어린이의 부모들의 역할과 이를 위한 사목적 배려가 강화되었으며, 영세 받는 어린이의 숫자에 따라 예식을 구분하였고, 또한 어린이 세례를 평신도(회장)도 집전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대세를 받은 어린이의 보례예식도 어린이에 맞게 새로 꾸몄다.
어른 입교 예식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출간된 새 예식서에는 단계별 입교예식과 간략한 입교예식, 대세, 성인 첫영성체준비, 소년들을 위한 입교절차 그리고 부록으로 개신교 세례자에 대한 일치예식이 수록되어 있다.
1) 전예비기간
예비자가 첫 번째로 교회와 만나는 기간을 전예비기간이라고 하며 이 때는 특히 사목자의 세심한 배려가 요구되는 때이다. 따라서 예비자 모집기간 마지막 주일에 교우들과 함께 예비자를 환영하는 환영식을 거행하며 교리반 편성 등에 있어서 신상명세서 등을 참조하여 교육수준, 가정환경, 배우자의 신앙상태 등을 배려해야 한다.
2) 예비자로 받아들이는 예식과 예비기간
예비자로 받아들이는 예식을 통하여 예비기간이 시작된다. 이 예식은 공적으로 교회에 자신의 입교 의지를 드러내 보이는 예절이다. 단계별로 예식을 집전할 때는 이를 예식서 에 준하여 행하면 되는데 이때 세례명 짓기, 첫 신앙에의 동의를 표하는 예식, 숨을 불어넣어 주는 예식, 구마(잡신 끊기)기도, 이마에 십자표 긋기, 말씀의 전례, 복음서 수여 등이 뒤따른다.
예비자로 받아들이는 예식 이후 선발예식까지의 기간을 예비기간이라고 한다. 이때는 교리교육, 신자들과의 친교생활, 전례에의 참여, 생활 안에서의 신앙증거 등을 통해 그리스도교 초보적 삶을 익히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는 말씀의 전례. 첫 구마식, 예비자 강복식 등을 반복해서 거행할 수 있으며 첫 도유식과 몇 가지 수여식(신경, 주님의 기도 등)도 거행할 수 있다.
3) 선발예식과 정화와 조명의 기간
선발예식은 교회 전통상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때에 거행하는 것이 좋다. 선발예식은 영세 대상자의 선발과 선발된 이들을 위한 기도로 이뤄진다. 선발예식이 끝나면 정화와 조명의 기간이 시작된다. 이 기간은 집중적으로 그리스도 신자로서의 삶을 위한 정화를 청하는 시기이며 사순시기의 의미와도 잘 일치된다. 이 기간 중에 구마식을 곁들인 3 차례의 수련식과 신경 및 주의 기도 수여식을 거행할 수 있다.
4) 입교예식(세례식)과 신비교육기간
입교예식인 세례식을 거행하기 전에 최종준비예식을 행하는데 통상 이는 성토요일에 거행하는 것이 좋다. 신경수락식과 에페타 예식, 세례명 선택예식과 예비자 성유를 바르는 예식 등을 최종준비 예식에서 거행할 수 있다. 이어서 부활성야나 부활대축일에 입교 성사를 집전한다. 입교성사는 호칭기도, 영세수 축성, 구마, 예비자 성유의 도유, 신앙고백, 세례식, 크리스마성유의 도유, 흰옷을 입힘, 촛불을 켜줌 등의 예식으로 거행되며 부활을 통한 구원의 기쁨을 새 영세자들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세례식이 모두 끝나면 이때부터 신비교육기간에 들어간다. 이 때는 새 영세자들이 교회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시기로써 새 영세자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주위의 모든 신자들과 사목자가 각별히 배려해야하는 시기라 하겠다. 영세자가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 때까지 이 배려는 계속되어야 한다.
새 예식서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단계별 예식 외에도 간략한 입교예식을 수록하고 있다. 이 예식은 일반적으로 입교자의 수가 많은 특별한 경우 사용하는 예절로서 교회는 가능하다면 단계별 예식을 거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단계별 예식이 더 초대교회의 전례 전승에 가까운 것이라고 하겠다.
비록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 간략한 예식을 집전할 때라도 단계별 예식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예비자 교육기간에 각 단계의 의미를 예비자들이 되새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간략한 어른 입교식은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예식들을 한꺼번에 거행하는 예식으로서 환영식, 간구와 참회식, 구마기도와 예비자성유의 도유, 영세수 축성, 마귀와 죄를 끊어버림, 신앙고백, 세례식, 크리스마 도유, 흰옷을 입힘, 촛불을 켜줌 등을 한꺼번에 거행한다.
세례성사는 새로 태어나는 성사이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질곡의 노예살이에서 새로운 해방의 삶으로 옮겨갔듯이 우리도 자유와 해방에로 초대되어 새롭게 변화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 세례성사의 참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죽음의 사슬에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초대되었음을 기뻐하는 성사가 세례성사이다. 이스라엘이 해방을 맛보기 위해서 40년을 척박한 광야를 배회하였다. 예수께서도 부활로 나아가기 위하여 십자가라는 고통의 형극을 맛보고 죽으셔야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약속된 미래를 맛보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광야를 가로질렀는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는가? 만약 너무 편하게 세례를 받았다면 이제부터라도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가 걸어야할 광야를, 우리가 짊어져야 할 저 십자가를 바라보자. 세례는 영원히 살기 위해서 지금 죽는... 죽는 성사이기 때문이다.
[인천가톨릭대학교 홈페이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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