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고린토 1서 13장의 첫 절입니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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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1-05-21 | 조회수700 | 추천수3 | 신고 |
아래 소생의 글[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으로, 보다 양심적인 답을! : 일부 댓글은 제외]을 읽으신 후 보시기를 권고합니다. 이 글은 소 순태씨 글에 문 경준씨 두 번째 지적 글[5184번]의 일부를 그대로 요약한 것입니다. 1]최초 원문 / By contrary Doctrine, we understand whatsoever men, by Laws, Councils, or Constitutions have imposed upon the consciences of men, without the expressed commandment of God's word: 2]소 순태씨 번역 "받아들이지 않는 교리(by contrary Doctrine)라 함에 대하여서는, 우리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의한 표현된 계명 없이(without the expressed commandment of God's word), [교회] 법(Laws)들과 공의회(Councils)들, 혹은 헌장(Constitutions)들이 사람들의 양심들에 부과하였던, 다음과 같은, 무엇이든지로 이해한다. 3]문 경준 씨가 최초 원문을 새로 작성한 영문 / By contrary Doctrine, we understand whatsoever men have imposed upon the consciences of men by Laws, Councils, or Constitutions, without the expressed commandment of God's word: 4]문 경준 씨가 최초 또는 새로 작성한 여문의 번역문 / 가톨릭 교리에 정반대되는 교리(또는 입장)에 의해, 우리는 무엇이든지간에 법으로, 위원회로, 또는 헌장을 이용해서, (신이 아닌) 인간이 사람들의 양심에 억지로 부과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하느님 말씀(즉 성경)으로 된 명령으로 표현된 바가 전혀 없는 것들이다. 그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이상의 요약을 정리한 후, 문 경준 씨의 두 번째 글을 읽고 최초의 소 순태 씨의 글, 문 경준 씨의 첫 번째 지적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소생의 글에 감정의 골이 깊은 두‘소문’씨의 댓글도 읽었습니다. 저는 정말 두 분께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 어려운 영문을 이 코너를 찾는 분을 위해 번역해 주시는 그간의 노고가 이해됩니다. 그 어려운 종교 서적 원문을 어디 아무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수차례 이런 격론을 거쳤지만 이번 내용을 보고, 두 분의 해박한 지식, 성경 사랑의 깊이를 알 것 같군요. 평소에 예사로 넘긴 그 어려운 인용문, 또는 그 번역, 질문에 대한 그 답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어려운 일을 하였구나 생각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이 번역이 잘 되었느니, 어떤 때는 교리로 옳고 그름을 심도 있게 논할 때는 옆에서 볼 때 짜증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 어려운 번역에 몇 가지 오역이 있으면 어떨까라고 생각도 해 봅니다. 큰 틀의 이해만 되도 큰 수확일 수도 있죠. 그러나 이런 감정이 개입된 격론을 통하여 많은 분들이 성경을 이해하고, 신앙심을 깊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확실할 것입니다. 허나 믿음의 첫 번째는 사랑이 아닐까요? 그것도 하느님 사랑, 그 다음이 인간 사랑이죠. 성경사랑은 덤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저는 위에 문 경준 씨의 두 번째 지적 글을 일부러 요약 정리했습니다. 위 1]의 영문은 소 순태 씨가 발췌한 성탄/주님 탄생 예고 축일을 이해할 수 있는 어느 책의 일부일 것입니다. 사실 핵심을 이해한 데 별로인 부분이지만, 그래도 이해를 돕도록 인용했겠죠. 2]는 그 어려운 내용을 우리말 번역이고요. 3]은 1]과 2]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 경준 씨가 재구성한 영문입니다. 그리고 4]는 위 1],2],3]을 총 정리한 문 경준 씨의 최종 번역문입니다. 참 대단들 하십니다. 다시금 더 두 분의 해박한 지식에 경의를 표하면서 소생이 개인적으로 제안하나 드립니다. 성경은 참 어렵고도 쉽다합디다. 쉽게 보면 한없이 쉽고, 어렵게 보면 답이 없답니다. 그리고 내가 어렵게 보더라도 상대방 것을 쉽게 보면 그게 답이랍니다. 그러니 쉽게 보시고, 그것도 상대방 것을 쉽게 봅시다. 그게 답이니까요. 그래서 소생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문 경준 씨의 첫 번째 지적 글에 대한 소생의 아래 질문[보다 양심적인 답을!]에서도 그 답이 그 답일 겁니다. 위 요약에서도 어떤 차이점이 있다면 정말 있고 없다면 정말 없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있다면 그건 골 깊은 감정만이 있을 겁니다. 저는 그 감정을 결코 나쁜 감정만으로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게 용심으로, 그 용심이 욕심으로 그게 욕망으로 하여 오늘의 이 ‘성경 묻고 답하기’로 발전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발전된 양상이 도가 지나쳐 많은 분들의 심기가 다소 불편해 질 지경입니다. 이 선에서 두 분의 깊은 이해를 부탁합니다. 여기에 누가 누구를 이라고 탓하지 맙시다. ‘내 탓이오!’라고만 합시다. 언젠가 누군가의 주선으로 이곳을 사랑하는 분들의 모임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때 그곳에서 서로를 이해할 겁니다. 저는 이렇게 두 분의 격한 논쟁을 수차 보아왔습니다. 이제 이 격론이 마지막이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곳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성경의 쉬운 이해를 위해서 두 분의 협조와 도움이 정말 필요합니다. 그 이해를 위해서 지금이라도 부분[나무]보다는 전체[숲]를, ‘이해시킴’보다는 ‘이해함’을 꼭 부탁드립니다.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성경 고린토 1서 13장의 첫 절입니다. -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 감사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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