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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경의 세계: 예루살렘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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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26 조회수6,164 추천수0

[성경의 세계] 예루살렘 성전 (1)

 

 

초기 이스라엘은 계약 궤를 여러 장소로 옮겼다. 궤에는 모세의 십계 판이 담겨 있었고 주님께서 현존하시는 곳으로 여겼다. 그런 이유로 계약 궤를 둔 장소를 지성소라 했다. 가장 거룩한 장소란 뜻이다. 다윗은 한 곳에 영구히 보관하려 했다. 예루살렘을 정복하자 적임지로 여겨 즉시 옮겼다. 이후 모든 지파 행사는 그곳에서 하게 했다. 열두 지파 연합을 상징하는 신도시로 만든 것이다.

 

다윗은 성전 장소로 예루살렘 북쪽 모리야 산을 지정한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치려 제단을 쌓았던 곳이다. 솔로몬은 정확하게 그 장소에 성전을 지었다. 역사에서 말하는 솔로몬 성전이다. 훗날 두 번째 성전이 등장하면서 제1성전으로 불리게 된다. 왕이 된지 4년만에 착수했고 11년에(BC 959년)에 완공했다(1열왕 6,38). 7년 걸린 작업이었다. 성전 건물은 동쪽을 향해 있었고 직사각형이었다. 건물은 크지 않았지만 뜰이 넓었다. 건물 안에는 방이 3개 있었다. 입구인 현관과 가운데 방 성소(聖所)와 계약 궤를 안치한 지성소(至聖所)다. 지성소는 주님의 현존 장소로 여겼기에 1년에 한 번 대사제만 들어갈 수 있었다. 속죄의 날 백성을 위해 기도하러 들어갔던 것이다.

 

바빌로니아는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면서 제1성전을 파괴했다. 솔로몬 성전이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후 바빌론 귀양을 끝내고 돌아와 제2성전을 지었다(BC 515년). 즈루빠벨 성전이다. 설계도면은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헤롯 임금은 제2성전을 리모델링했다. 예수님께서 장사꾼과 환전상을 몰아냈던 그 성전이다. 솔로몬 성전을 능가하는 화려한 건물이었건만 70년에 파괴된다. 130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무너진 성전 자리에 로마 최고의 신 유피테르(Iuppiter)의 신전을 지었다. 유대인은 반기를 들고 전쟁을 일으켰다. 2차 독립전쟁이다. 하지만 6년 뒤 진압되고 예루살렘은 다시 파괴되었다. 황제는 모든 유대인을 이스라엘에서 추방했다. 대부분 이집트로 피신했고 알렉산드리아는 해외 유대인 거점 도시가 되었다.

 

예루살렘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등장으로 전환기를 맞게 된다. 황제는 306년 즉위해 337년 죽었다. 성전 자리에 있던 로마 신전은 허물어졌고 곳곳에 세워진 석상들도 모두 제거되었다. 유대인의 예루살렘 출입과 거주도 허락되었다. 동로마가 이곳을 장악하자 기독교 문화는 300년간 찬란한 꽃을 피웠다. 비잔틴 황제들은 교회와 수도원을 수없이 지었다. [2018년 2월 25일 사순 제2주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신안동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예루살렘 성전 (2)

 

 

솔로몬 성전이 있던 자리엔 현재 이슬람 건물이 서있다. 예루살렘 사진에 늘 등장하는 황금색 둥근 돔을 지닌 건물이다. 바위 돔 사원으로 불린다. 70년 헤롯 성전이 파괴된 그 장소다. 예루살렘 성전 터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려 했던 모리야 땅이다. 당시 제단으로 사용되었다는 바위가 황금색 사원 안에 있다. 길이 18m, 폭 13m, 높이 1.25~2m 바위다. 이슬람교는 창시자 무함마드가 이 바위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해서 신성시한다. 성전 건물은 사라졌지만 성전 터의 증거인 바위는 남아 있는 것이다.

 

동 로마시대엔 이곳에 기념성당이 지어졌다.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선언한 후 건립되었다. 하지만 638년 무슬림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기념성당은 이슬람 사원으로 개축된다. 현재의 알아크사 모스크(Al-Aqsa Mosque)다. 황금색 둥근 돔 건물 남쪽에 있다. 모스크 내부엔 691년 알 말리크(al-Malik) 칼리프(caliph) 때 완공됐다는 기록이 있다. 칼리프는 무함마드 후계자를 가리키며 모스크는 이슬람 사원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아랍어는 마스지드(masjid), 엎드려 예배드리는 곳이란 뜻이다.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발발했다. 이듬해(1915년) 영국은 아랍 세력 지지를 위해 팔레스타인 국가 건립을 약속한다. 아랍은 연합군을 밀었다. 전쟁이 길어지자 유대인 재력이 필요했다. 영국은 전쟁비용 부담을 조건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또 약속한다(1917년). 연합군이 승리하자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은 국가 건설을 원했다. 영국은 양쪽과 이중계약을 맺었기에 전면에 나서질 못했고 숙제는 유엔으로 넘어갔다. 유엔은 두 개의 국가를 세우자는 절충안을 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은 유엔이 직접 관리하기로 했다. 중립지역이 된 것이다.

 

아랍인은 반대했지만 유대인은 수락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한 것이다. 아랍은 반발하며 전쟁으로 응했다(1차 중동전쟁). 이후 휴전으로 예루살렘은 동서로 분할된다. 성전이 있던 동쪽은 요르단 땅이 되고 서쪽만 이스라엘 소유가 되었다. 아랍은 테러로 전쟁을 이어갔다. 1967년 6월 이스라엘은 상황타개를 위한 전투를 벌인다. 철저한 준비로 선제공격했고 이집트와 요르단을 초토화시켰다. 유엔은 즉각 정전을 결의했고 양측이 받아들여 6일 만에 끝났다(6일 전쟁). 이때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자국 영토로 선언했고 현재도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구약성경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했다. 그런 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설이 아닐는지. [2018년 3월 4일 사순 제3주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신안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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