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Re: 5186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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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소순태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22 조회수530 추천수2 신고
 
+ 찬미 예수님
 
그 분의 본글 및 답글은 제가 클릭하고 들어가 읽지 않은 것이 이제 햇수로 3년째가 되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고 살고 있는데, 박윤식 형제님께서 수고를 해주시어, 그 분이 무슨 소리를 하였는지 알 수 있게 해 주셨군요...
 
생업 관계로 바빠서, 틈틈히 들러 살펴 봅니다만,
 
올려 주신 글을 읽고는, 하도 어이가 없어, 한줄답변으로 제가 몇 말씀을 드렸더니 유감스럽게도 다 삭제하셨네요.
 
그래서, 본글로 몇 가지 말씀을 드립니다.
 
1. 제가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이라 함은, 번역된 문장을 원 언어로 역 번역(reverse translation)을 하였을 때에, 거의 원문과 일치하게 되는 번역을 말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제가 말하는 직역 번역에 대하여 몇 가지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1-1. 원문이 한 개의 문장일 경우에 번역된 문장도 반드시 한 개이어야 하고, 그리고 원문이 가지고 있는 문법적 골격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법상의 서술 순서까지도 보존을 할 수 있으면 최상인데, "주어 + 동사 + 목적어" 어순을 가진 대다수의 구라파 지역 언어들 (단, 독일어는 제외)과 "주어 + 목적어 + 동사" 의 순서를 가진 우리말로 번역을 할 경우에 서술 순서가 바뀌는 거의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말로의 번역자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1-2. 두 개의 문장을 번역하였을 때는, 번역된 문장 또한 두 개의 문장이어야 하지, 한 개 혹은 세 개의 문장으로 축소 혹은 확대 번역하여서는 안됩니다.
 
1-3. 원문에 없는 형용사 등의 수식어는 최대한 추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번역자가 개인적 의지/판단 등에 따라 원문에 있지도 않은 단어들을  번역문에 추가하면, 역 번역을 하였을 때에 원문과 결코 동일한 문장으로 수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강조문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에도 강조는 살리되 그러나 역 번역시에 원문으로 제대로 수렴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도록 강조하여야 할 것입니다.
 
1-4. 원 언어의 명사/대명사들에 부착되어 있는 단수, 복수, 남성, 여성, 중성 등의 변별력도, 필요시 신조어를 만들어서라도, 최대한 보존하도록 우리말로 번역을 하여야 합니다.
 
1-5. 독자들의 더 나은 내용 이해를 가능하도록 하기 위하여, 예를 들어,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단어들은 괄호를 사용하여 원어의 해당 단어를 필요시 병기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말 번역 표현이 내용적으로 적절한 정도 이상의 정확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다고 판될 때에도 그러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여야, 나중에라도 효과적으로 번역된 우리말 표현의 완성도를 꺼집어 올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6. 필요시 번역자 주를 통하여, 번역 당시에 번역자가 참고한 자료들 및 특정한 번역 단어의 선정시에 적용한 기준 등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여야, 나중에라도 효과적으로 번역된 우리말 표현의 완성도를 꺼집어 올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7. 지중해 지역에서의 교회의 역사 안에서 그 의미가 정해진 명사, 형용사들의 우7말 번역은, 영한 사전에 있는 세속의 사전에 주어진 설명으로 해당 단어를 우리말로 번역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이는, 그렇게 번역할 경우에, 우리말 번역문이 원문의 내용을 크게 훼손한 경우이므로, 독자들은 원문의 내용을 더욱 더 이해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1-8. 원문 그 자체를 읽고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번역자가 그 원문을 우리말로 번역을 하였을 때에는 번역 과정에서 우리말 단어의 선택을 자신의 개인적 추측에 의하여 하게 되므로, 개념 전달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심각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말 번역자는 특히 다양한 노력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문헌들의 우리말 번역시에, 특히 이미 공포된 보편 교회의 핵심 문헌들의 본문과 내용적으로 절대로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말 단어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만족시키기, 예를 들어,
 
1-8-1.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의 본문을 수시로 들여다 보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1-8-2. 이미 다른 지역 언어로 번역이 된 문장들과의 상호 비교/검토를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1-8-3. 대단히 두꺼운 영영 사전들을 들여야 보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라틴어 등의 어원에 대한 설명이 전혀 주어져 있지 않는 영한 사전만을 들여다 보면서 교회의 문헌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은, 분명한 교만의 소치라는 생각입니다.
 
1-8-4. 필요할 경우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특정 단어에 대한 용례를 살펴봄으로써, 해당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2.
 
위의 직역 번역에 대한 일반적 원칙에 유의하면서, 제가 초벌 번역을 진행 할 때에는 다음과 같이 합니다:
 
2-1. 영어와 동일 어군에 속하나, 영어로 쓰이지 않은 원문은 일단 영문으로의 번역을 진행합니다. 당연히 이 단계에서 라틴어 어원 및 관용어, 숙어들에 대한 검토가 면밀하게 진행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동일 어군에 속하므로,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문의 문장 구조를 보존하게 해 주므로 상당히 유익한 접근이며, 영어로 번역된 문장의 구조 등을, 원문과 비교/검토를 하여 바로 잡은 후에, 우리말로의 직역 번역을 그 다음 순서로 진행합니다.
 
[예를 들어, 원문이 프랑스어와 동일한 어군에 속하고 번역자의 가장 능숙한 언어가 프랑스어일 경우에는, 위의 방식을 적용하되, 영어 번역 대신에 프랑스어 번역을 먼저 한 후에 이 프랑스어 번역으로부터, 원문과 비교/검토하여 문장의 구조 등을 바로 잡은 후에 우리말 직역 번역을 할 것을 권장합니다.]
 
2-2. 영문을 읽으면서 동시에 영어 어순의 순서대로, 영문의 내용을 이해하면서, 이에 따라서, 동시 번역을 하듯이, 즉시 우리말로의 초벌 번역을 진행합니다.
 
2-3. 일단 내용적으로 최대한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하여 최대한도로 원문의 문장 구조를 보존하면서 마련된 초벌 번역문은, 나중에 별도의 시간을 내어 우리말 어법에 맞도록 조사 등의 토씨를 바로 잡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2-4. 저의 경험에 따르면,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서 제가 한 초벌 번역을 다시 들여다 보면, 상당히 많은 경우에 있어, 우리말로 번역된 번역문의 우리말 완성도를 꺼집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때에 저를 가장 많이 도와주는 것은, 그동안 제가 한 우리말 번역문들이었습니다.
 
3.
 
3-1. 이미 제 글에서는 바로 잡았지만, 아래의 제2항에 있는 저의 초벌 번역에서, 다음을 바로 잡습니다:
 
헌장(Constitutions)들이 -----> 헌장(Constitutions)들에 의하여
 
우리말 조사의 사용에 하자가 있어 바로 잡습니다.
 
3-2. 아래의 영어 문장 중의
 
Laws, Councils, Constitutions 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고유한 의미를 가진 단어들입니다. 이런 단어들의 의미도 모르는 분이 번역 오류라고 외치면서 날뛰고, 이에 동조하는 분들도 있으니, 제가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언어 장벽, 문화 장벽에 갇혀 있는 참으로 슬픈 국내의 현실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입니다.
 
3-3. 그 분의 번역문을 읽어보니, John Knox 가 16세기 프로테스탄트 개혁 당시에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조차도 모르는 듯 하니, 제가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3-4. 다음의 영어 문장이, 비록 길기는 하나, 사실은 한 개의 문장입니다:
 
By contrary Doctrine, we understand whatsoever men, by Laws, Councils, or Constitutions have imposed upon the consciences of men, without the expressed commandment of God's word: such as be vows of chastity, foreswearing of marriage, binding of men and women to several and disguised apparels, to the superstitious observation of fasting days, difference of meat for conscience sake, prayer for the dead; and keeping of holy days of certain Saints commanded by men, such as be all those that the Papists have invented, as the Feasts (as they term them) of Apostles, Martyrs, Virgins, of Christmas, Circumcision, Epiphany, Purification, and other fond feasts of our Lady.
 
이 긴 문장은, 위에 제시한 직역 번역의 원칙에 의하면, 한 개의 문장 구조를 유지하면서 우리말로 번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한 개의 문장 전체의 내용이, 번역 과정에서 축소되거나 늘어남 없이, 원래의 의미 그대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3-5. "By A, we understand B" 라는  문장구조를 가진 표현이, 언제 어떠한 용도로 사용되는지를 모르고는, 위의 긴 문장이 어떠한 용도로 마련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영한 사전만을 들여다 보아서는 정말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상, 두서없이 몇 말씀을 드렸으며, 나중에라도 필요시 수정/보강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역 번역이 왜 중요한 가에 대하여 다음의 예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John Knox 는 위의 제3-4항에 발췌한 문장 전문에서 개신교측의 신조들 중의 한 개의 신조에 대한 정의(definition)를 내리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며, 즉 개신교측의 핵심 문헌에서 개신교측의 여러 신조들 중의 한 개의 신조에 대한 정의(definition)를 그 글에서 내리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인데,
 
아마도 그 분은, 그 문장과 John Knox에 대하여 몰랐기 때문인지, 그러한 문장을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하여서는, "가톨릭 교리에 정반대 되는 교리(또는 입장)"이라는 시작 부분에서, 영어 원문에도 없는 "가톨릭 교리에"라는 말을 자의적/자위적으로 추가한 것인데, 이 번역문은 원 언어로 역 번역을 하더라도 원문과 일치하기 힘들어지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개신교측의 신조들 중의 한 개의 우리말로 번역된 본문 중에 "가톨릭 교리"라는 표현이 등장하기에, 국내의 개신교측에서도 그러한 표현이 포함된 문장은 아마도 자신들의 신앙의 신조를 담은 문장으로 받아 들이기가 매우 곤란한, 대단히 잘못된, 우리말 번역이라는 생각입니다.
 
     직역 번역의 또다른 중요성은 다음의 또 다른 예(example)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가톨릭 교회의 핵심 문헌들에서 사용하고 있는 "the Reformation"이라는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을 할 때에, "그 개혁" 홋은 "16세기의 개혁" 혹은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 혹은 "프로테스탄트 개혁"이라고 직역 번역하는 대신에, 우리말로의 번역자가 "종교"라는 말이 추가된 국내의 개신교측의 용어인 "종교 개혁"이라고 번역한 예에서 볼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보편 교회의 문헌들에서, "종교 개혁"이라는 번역 용어에 대응하는 표현인, "the religious Reformation"이라는 용어를, 제가 보아도 분명히 신학적으로 잘못된 용어이기에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용어를,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라는 지역 교회의 언어로 번역된 교회의 문헌들에서, 개신교측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즐겨 사용하는, 그러나 신학적으로 및 어법상으로 틀린, 작위적/자위적 용어인 "종교 개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야 하는지요?
 
 
 
이 용어 번역 오류 지적에 대한 더 자세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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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고린토 1서 13장의 첫 절입니다!
 
작성자   박윤식(big-llight)  쪽지 번  호   5186
 
작성일   2011-05-21 오전 11:30:23 조회수   66 추천수   1
 

아래 소생의 글[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으로, 보다 양심적인 답을! : 일부 댓글은 제외]을 읽으신 후 보시기를 권고합니다. 이 글은 소 순태씨 글에 문 경준씨 두 번째 지적 글[5184번]의 일부를 그대로 요약한 것입니다. 

1]최초 원문 / By contrary Doctrine, we understand whatsoever men, by Laws, Councils, or Constitutions have imposed upon the consciences of men, without the expressed commandment of God's word: 

2]소 순태씨 번역 "받아들이지 않는 교리(by contrary Doctrine)라 함에 대하여서는, 우리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의한 표현된 계명 없이(without the expressed commandment of God's word), [교회] 법(Laws)들과 공의회(Councils)들, 혹은 헌장(Constitutions)들이 사람들의 양심들에 부과하였던, 다음과 같은, 무엇이든지로 이해한다.

3]문 경준 씨가 최초 원문을 새로 작성한 영문 / By contrary Doctrine, we understand whatsoever men have imposed upon the consciences of men by Laws, Councils, or Constitutions, without the expressed commandment of God's word:

4]문 경준 씨가 최초 또는 새로 작성한 여문의 번역문 / 가톨릭 교리에 정반대되는 교리(또는 입장)에 의해, 우리는 무엇이든지간에 법으로, 위원회로, 또는 헌장을 이용해서, (신이 아닌) 인간이 사람들의 양심에 억지로 부과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하느님 말씀(즉 성경)으로 된 명령으로 표현된 바가 전혀 없는 것들이다. 그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이상의 요약을 정리한 후, 문 경준 씨의 두 번째 글을 읽고 최초의 소 순태 씨의 글, 문 경준 씨의 첫 번째 지적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소생의 글에 감정의 골이 깊은 두‘소문’씨의 댓글도 읽었습니다. 저는 정말 두 분께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 어려운 영문을 이 코너를 찾는 분을 위해 번역해 주시는 그간의 노고가 이해됩니다. 그 어려운 종교 서적 원문을 어디 아무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수차례 이런 격론을 거쳤지만 이번 내용을 보고, 두 분의 해박한 지식, 성경 사랑의 깊이를 알 것 같군요. 평소에 예사로 넘긴 그 어려운 인용문, 또는 그 번역, 질문에 대한 그 답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어려운 일을 하였구나 생각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이 번역이 잘 되었느니, 어떤 때는 교리로 옳고 그름을 심도 있게 논할 때는 옆에서 볼 때 짜증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 어려운 번역에 몇 가지 오역이 있으면 어떨까라고 생각도 해 봅니다. 큰 틀의 이해만 되도 큰 수확일 수도 있죠. 그러나 이런 감정이 개입된 격론을 통하여 많은 분들이 성경을 이해하고, 신앙심을 깊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확실할 것입니다.  

허나 믿음의 첫 번째는 사랑이 아닐까요? 그것도 하느님 사랑, 그 다음이 인간 사랑이죠. 성경사랑은 덤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저는 위에 문 경준 씨의 두 번째 지적 글을 일부러 요약 정리했습니다. 위 1]의 영문은 소 순태 씨가 발췌한 성탄/주님 탄생 예고 축일을 이해할 수 있는 어느 책의 일부일 것입니다. 사실 핵심을 이해한 데 별로인 부분이지만, 그래도 이해를 돕도록 인용했겠죠. 2]는 그 어려운 내용을 우리말 번역이고요. 3]은 1]과 2]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 경준 씨가 재구성한 영문입니다. 그리고 4]는 위 1],2],3]을 총 정리한 문 경준 씨의 최종 번역문입니다.  

참 대단들 하십니다. 다시금 더 두 분의 해박한 지식에 경의를 표하면서 소생이 개인적으로 제안하나 드립니다. 성경은 참 어렵고도 쉽다합디다. 쉽게 보면 한없이 쉽고, 어렵게 보면 답이 없답니다. 그리고 내가 어렵게 보더라도 상대방 것을 쉽게 보면 그게 답이랍니다. 그러니 쉽게 보시고, 그것도 상대방 것을 쉽게 봅시다. 그게 답이니까요. 그래서 소생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문 경준 씨의 첫 번째 지적 글에 대한 소생의 아래 질문[보다 양심적인 답을!]에서도 그 답이 그 답일 겁니다. 위 요약에서도 어떤 차이점이 있다면 정말 있고 없다면 정말 없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있다면 그건 골 깊은 감정만이 있을 겁니다. 저는 그 감정을 결코 나쁜 감정만으로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게 용심으로, 그 용심이 욕심으로 그게 욕망으로 하여 오늘의 이 ‘성경 묻고 답하기’로 발전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발전된 양상이 도가 지나쳐 많은 분들의 심기가 다소 불편해 질 지경입니다. 이 선에서 두 분의 깊은 이해를 부탁합니다. 여기에 누가 누구를 이라고 탓하지 맙시다. ‘내 탓이오!’라고만 합시다. 언젠가 누군가의 주선으로 이곳을 사랑하는 분들의 모임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때 그곳에서 서로를 이해할 겁니다. 저는 이렇게 두 분의 격한 논쟁을 수차 보아왔습니다. 이제 이 격론이 마지막이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곳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성경의 쉬운 이해를 위해서 두 분의 협조와 도움이 정말 필요합니다. 그 이해를 위해서 지금이라도 부분[나무]보다는 전체[숲]를, ‘이해시킴’보다는 ‘이해함’을 꼭 부탁드립니다.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성경 고린토 1서 13장의 첫 절입니다. -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 감사합니다. 아멘! ^^+

 
김예숙 ( (2011/05/21) : 좋으신 말씀이세요. 모두 열심으로 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소리가 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소리가 왜 나는지 귀를 기울여 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봉사직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들은 좋은 명성을 얻고,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더욱 큰 확신을 얻게 됩니다." (1티모 2.13)  
 
이성경 ( (2011/05/21) : 우리 한국말도 변하잖아요. 영어도 변하나봅니다. 누가 옳은가로 다투는 일은 답이 나올것 같지 않습니다. 교리와 성경과 성전을 알고 있는 사람에겐 두분 번역에 큰차이가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누가 글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읽는답니까? 대강 읽지요.  
 
박윤식 ( (2011/05/22) : 우리말 성경으로 주된 '묻고 답하기'인 이곳에서 영문 번역으로 더 이상 가타부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출생과 관련된 연대기 사용의 본건은 믿음의 본질과는 이제는 다소 퇴색되었는 바 여기서 끝내기로 선언하며, 저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하신다면 더 이상의 유사 댓글은 제 칼럼임을 감안, ‘삭제’도 불사함을 유념해 주십시오. 아울러 아직도 누그러지지않는 감정표현의 댓글은 삭제되었슴을 양지해 주셨슴을 이해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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