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틀림도 다름도 다 정답, 사랑만이 진리이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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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1-05-28 | 조회수660 | 추천수3 | 신고 |
서론 이 글은 문 경준 씨가 소생에게 ‘남의 글 신중히 읽어달라는 부탁과 그의 글 내용과 소생의 생각이 다르다는 요청’에 의해, 어떤 내용의 ‘다름’에 대한 문 경준씨의 생각에 대한 소생의 의견이다. 세 가지 제시된 사례 정리를 통해 견해 차이에 대한 그간의 과정을 밝힌다. 본론 사례1] 소 순태씨가 ''새 성경 번역이 마소라본을 저본으로 삼았다''는 내용 1. 발단 배경 : 복음서마다 예수님 부활 내용이 다름 2. 최초 복음서의 정의 : 복음서는 구체적 사건에 대한 역사적 확인이 아니라 부활 사건의 신앙적 증거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3. 복음서의 정의에 관한 최종 결론 : 복음서는 예수님의 행적과 부활에 대한 충분하고도 만족스러운 역사성을 갖지만, 그 각각의구체적 사건에 대한 역사적 확인은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므로 모든 사건이 역 사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그 사복음서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부활 사건의 신 앙적 증거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4. 소생의 의견 : 똑 같은 정의를 두고 살을 넣고, 보태지 않고의 차이를 두고 격한 논쟁 전개[글번호 5118번 참조] 사례 2]소 순태씨가 급기야는 ''raised by''를 수정했을 때 1. 발단 배경 : 예수님 탄생일에 대해서 2. 내용 : 정의 차이 발생 A]크리스마스에 관한 의문들은 칼빈주의자들과 청교도들에 의한 개혁의 시기에 처음으로 제기되었는데... B]크리스마스에 대한 의문들은 종교개혁 시기 동안에 칼빈주의자들과 청교도들에 의해 처음 제기되 었는데... 3. 소 결론 : 두 분의 크리스마스 정의 차이는 위 A/B참조 4. 소생의 의견 : 영문번역의 관점에서 차이는 있으나 뜻은 동일함[글번호 5173번 참조] 사례 3]The Reformation이 ''종교개혁''이냐 그냥 ''개혁''이냐? 1. 발단 배경 : The Reformation이 ''종교개혁''으로 번역한 것은 오역 2. 내용 : 개념 차이 발생 A]'the Reformation' = 'the Protestant Reformation'( '프로테스탄트 개혁') 따라서, 'the Reformation'의 표현을 지금처럼‘종교개혁’으로 번역할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 되도록 '프로테스탄트 개혁’으로 번역할 것을 제안합니다. B]16세기를 전후하여 중세 말기 가톨릭세계를 뒤흔든 종교적인 분열과 개혁... 이걸 세계사와 교회 사는 종교개혁이라고 하는 것이다. 당시 가톨릭은 개혁의 '개' 자도 꿈꾸지 못했고, 가톨릭이 중세 말에 보인 이런 저런 불합리와 폭력성 때문에 프로테스탄트들이 개혁의 불길을 주도했던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이라는 네 글자는 이미 태생적으로 '프로테스탄트적'인 것이었다. 영어로는 대문 자를 써서 'Reformation'이 되는 거고, 그걸 풀어쓰면 'Protestant reformation'이 되는 것이다. 3. 소 결론 : 두 분의 개념 차이는 위 A/B참조 4. 소생의 의견 : 가톨릭/개신교, 영어권/한자권 차이에서 오역으로의 주장 또는 제안의 차이[글번호 5200번 참조] 결론 문 경준 씨의 답에 소생의 의견은 그야말로 혼잡스럽다. 어떤 차이가 있었기에 그간 그렇게 시끄러웠는지. 그게 그것이다. 감정만 있는 문제 제기는 있었지만 감정을 푸는 답의 합의는 거의 없었다. 서로의 불신이 심각하고, 성격 탓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세 가지 사례에 관한 문 경준씨의 견해도 소생의 의견도 별반 차이가 없다. 그 어려운 과정을 겪었기에 일까! 대부분은 소 순태씨가 문제를 제기하고 문 경준 씨는 반론하고 소생은 매듭을 푸는 것에 매달렸다. 간혹 ‘글을 좀 신중히 읽어 주십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은 좀 그렇다. 잘 읽도록 글을 작성하는 게 우선이다. 또한 성경에서 대부분 ‘틀림과 맞음’으로 이야기를 하려면 대부분 평행선이다. 그러나 ‘틀림과 다름'으로 이야기하면 재미난다. 생각의 폭이 유연하고 넓어지니까. 소생은 성경의 해석 차이에서의 결론은 교도권이 우선이고 그 외에는 ’다름‘으로 종결시켜야한다. 믿음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우선해야 한다. 우리 평신도는 가끔은 무식하게 틀림과 다름에 대해 자기 기분으로 이야기해도 좋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이야기한 후에는 각자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결론을 내야 한다. 우리는 가벼운 시작으로 너무 많이 토론을 했지만 너무 격한 토론을 진행하고는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종종 망각하고 감정으로 번지는 경향을 보이곤 했다. 쉽게 생각하자. 끝으로 소생이 위 사례에 대한 참고 글 번호를 다시 더 차분히 읽어보자. 그 끝은 별것이 없지만 그 과정 과정에 큰 고비들이 있었다. 소생은 문 경준씨의 해박한 지식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 지식으로 이 묻고 답하기가 더 발전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 글이 또 새로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엔 아무도 그 답을 줄 수 있는 분이 없기에. 그분 말고는.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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