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마르코 복음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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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3-07 | 조회수5,340 | 추천수0 | |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마르코 복음서 (1)
복음사가 마르코는?
네 복음사가 가운데서 제일 먼저 예수님 말씀(복음 선포)과 행적(기적과 행적)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펴냅니다. ‘복음’이라는 말도 네 복음사가 가운데 마르코가 제일 먼저 사용했으며 이 한 권의 책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Evangelium)’이라고 이름 지어 부릅니다. ‘복음’은 모든 이를 위한 기쁜 소식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복음서를 제일 먼저 쓴 인물이 마르코입니다.
그는 모든 이에게 궁극적 구원을 가져다주는 이 기쁜 소식을 어떤 때는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1,1) 또는 “하느님의 복음”(1,14), 그리고 어떤 경우는 단순히 “복음”(1,15)이라고 부릅니다. 마르코가 이름 지어 부르기 시작한 ‘복음’ 또는 ‘복음서’는 어느 한 인물의 일생을 그린 ‘전기(傳記)’ 또는 우리가 일컫는 ‘역사(歷史) 책’과는 뚜렷이 구별됩니다. 복음은 그보다 훨씬 깊고 넓은 인류 구원의 신비를 담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마태오와 루카는?
예수님 탄생에 얽힌 이야기까지도 상세히 전해줍니다. 그러나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설교 다음에 등장하시어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밖에도 마태오와 루가 복음서 안에 들어있는 많은 이야기가 마르코 복음서 안에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놓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다르게 생각합니다. 마르코는 짧은 이야기 안에서 풍요로운 내용을 전해줍니다.
복음서를 집필할 때?
마르코는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이야기와 말씀을 전해 듣고, 그들 가운데 몇 가지만 가려서 복음서에 기록했다고 봅니다. 이런 점은 다음 요약문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1,32-34ㄱ). 마르코가 그 모든 이야기를 다 적을 수도 또한 그럴 필요도 없었기에 그저 몇 가지 중요한 내용만을 추려서,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살아계신 하느님 아드님이심을 선포하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특히 네 복음서를 읽을 때 요한 복음사가의 맺음말을 상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참조: 요한 20,30-31; 21,24-25)
메시아 비밀?
마르코를 이야기하면서 ‘메시아 비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참으로 메시아이심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려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1-10장). 그분이 누구이신지는 결국 예루살렘 입성하시면서 환히 밝혀집니다(11-13장). 예수님께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시려고 흔히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3,12).
메시아 비밀 이면에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인간의 눈에 어두움과 실패 그 자체이므로 쉽사리 이해할 수 없다는 사상이 깔려있습니다. 그러나 마르코는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선사하는 신비의 사건인 부활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깨우쳐줍니다.
세례 장면에서?
마르코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명료하게 계시해줍니다.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1,9-11)
사람의 아들?
묵시문학 전통에 따를 때 ‘사람의 아들’은 마지막 날에 죄인들을 심판하고 의인들은 구원하러 오시는 분입니다. 다니엘은 어느 날 환시에서 ‘사람의 아들’을 만납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다니 7,13;) 초대교회에서는 이 칭호를 예수님께 적용시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참조 9,6; 17,9 등)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28; 마태 12,8)
하늘이 갈라져 성령께서 예수님 위에 내려오셨다는 말은?
예수님의 오심과 더불어 하늘과 땅이 하나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느님의 영과 예수님은 나뉠 수 없는 분임을 계시해줍니다. 마르코는 요르단 강 세례 장면에서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단순히 지상적 존재일 뿐 아니라 바로 천상의 하느님이심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유혹 장면?
마르코는 예수님 유혹 사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그 뒤에 성령께서는 곧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1,12-13)
마태오와 루카복음서에 비해 훨씬 짧은 유혹 이야기 안에서 마르코는 엄청난 신학을 요약하여 전해줍니다. 사나운 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다는 이야기를 읽는 오늘날 우리는 아담의 범죄 이전의 낙원 생활을 연상하게 됩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세 1,26)
예수님 곁에 머무는 들짐승들과 하늘의 천사들
예수님은 곧 천상의 존재이시라는 사실을 마르코는 예수님 유혹 이야기에서 오늘의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곧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어떤 들짐승도 예수님께 해를 입히지 않고 그분을 중심으로 평화로이 지내는, 천상낙원과 같은 지상낙원의 모습을 그려줍니다.
마르코는 이어서 사십일 내내 하늘의 천사들이 예수님 곁에서 그분을 에워싸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르 1,13) 천사들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천상의 존재들입니다. 이로써 마르코는 인간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본디 천상적 존재시라는 사실을 계시해줍니다.
마르코와 신앙고백?
복음사가 마르코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그는 오늘 우리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8,29)는 예수님의 다음 질문에 응답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 옛날 카이사레아 필리피에서 제자들에게 던지셨던 이 물음을 오늘 우리에게 되풀이하시기 때문입니다. ‘과연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오늘 우리도 사도 베드로처럼 각자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을까요?’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8,30) 아울러 십자가 아래 서있는 백인대장처럼 우리도 우리의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15,39)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3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용현5동성당 주임)]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마르코 복음서 (2)
복음사가 마르코가 전하는 예수님은?
첫째로, 예수님은 파견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십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복음은 구약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은?
파견된 그리스도이십니다. 마르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마르 1,1)이라는 표현으로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이 제목 안에 이미 마르코 신학이 깊이 뿌리내려있습니다. 이는 마르코가 이미 초대교회에 널리 퍼져있던 그리스도론적인 호칭 ‘그리스도’를 사용한다는 데서부터 드러납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는 관점 안에는 이미 신앙고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코는 이 신앙 고백문을 자신의 복음서 전체를 관통하는 대주제로 삼고 긴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마르코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 두 호칭을 씁니다. 어떤 경우는 둘을 함께 사용하고 어떤 경우는 하나씩 따로 씁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어디 나옵니까?
크게 세 곳을 봅니다.
ㄱ) 세례 장면에서: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여기서 예수님이 누구신지가 계시되고 있습니다.
ㄴ) 거룩한 변모에서: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9,7)
ㄷ)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마주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하고 말하였다.”(15,39)
하느님의 아들 안에는 언제나 베드로의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8,29-30)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이어 예수님은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8,30) 메시아 비밀[함구령]의 의미는 뒤따르는 구절 안에서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8,31)
메시아(그리스도)와 사람의 아들?
이들 두 표현은 밀접히 연관되어 서로를 보완해주는 호칭입니다. 최고의회에서 심문을 받으시는 장면 안에 이 두 호칭이 등장합니다. “대사제는 다시 ‘당신이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메시아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14,61-62)
대사제의 질문?
“당신이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메시아냐”고 묻는 대사제의 질문은 예수님의 정체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신가라는 물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를 묻는 물음에 힘주어 그렇다고 인정하십니다.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전해주고자 하는 마르코 복음사가의 의지를 엿보게 됩니다.
둘째로 마르코의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십니다. 마르코의 그리스도론은 처음부터(1,1) 명료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 자신이 이 복음서의 내용이며 동시에 복음의 선포자이십니다. 공적으로 등장하시면서 곧바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15)
‘하느님의 복음 선포’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복음 선포’를 위하여 세상에 오십니다(1,15). 곧 예수님 복음 선포의 핵심 내용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왕국(Basileia)은 ‘나라’ 또는 ‘다스리심’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본디 ‘다스리심’이 더 적절한 말이라고 봅니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의 다스리심이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치유기적들과 구마 활동 안에서 그분께서 메시아이시라는 사실이 밝게 계시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권력과 통치세력들과는 달리 참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온 누리에 선포하십니다.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빛으로 가는 새 시대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부르심 받아 파견되어야 합니다(1,16-20; 3,13-19; 6,6ㄴ-13).
셋째로 마르코의 예수님은?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복음은 구약의 말씀 곧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느님 친히 지어내신 첫 인간 아담에게 하신 약속(계약)으로부터 노아 – 아브라함 – 모세 – 다윗 가문과 맺으신 계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창세 1,26; 2,22-24).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하느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구약의 모든 계약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며 완성하십니다(요한 1,18; 골로 1,15-20; 히브 1,1-4). 하느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구세주로서-먼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통하여 뭇 민족의 구원을 이루시기로 약속하신 분입니다. “먼저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합니다.”(마르 13,10)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 인류구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복음을 마르코가 복음서를 통하여 전해줍니다.
예수님께서 뽑으신 제자들?
그분의 제자들은 이와 같은 하느님의 계약, 인류구원 약속과 구원위업의 선포자들입니다. 마르코 복음서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구원계약을 밝혀주는 말씀으로 들어차 있습니다. 다음 두 단락을 꼽아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르 8,34-37; 병행구 참조: 마태 16,24-28)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10,17-22)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4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용현5동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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