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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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1-06-05 | 조회수397 | 추천수1 | 신고 |
부활 후 예수님은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사명을 부여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 아버지가 계신 하늘로 승천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그간의 노고를 격려해 주고, 다시 올 그날까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의 마지막 사명은 ‘복음을 전하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마지막의 만남에서 조차도 더러는 예수님을 의심하였다. 엎드려 경배를 하면서도 의심의 마음을 가졌다.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완전 불신이 아니고, 그분의 신성에 대한 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부활의 그 엄청난 기적에도 그들은 더러는 약한 믿음으로 반신반의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더러는 의심하였다.
무엇이 그들을 의심하게 만들었을까? 정말 당신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이 속박에서 진정으로 해방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당신이 부활하신 것과 같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등등 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외형상으로는 깊은 믿음의 절을 하면서도 속마음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되살아난 당신을 바라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자가 사건과 그분의 부활의 모습을 목격하면서도 의심하고 경계심을 늦추진 않은 제자들이었다.
여기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들이야 얼마나 많이 그분의 복음에 대하여 의심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그 제자들이 전해 준 그 복음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그 제자들이 직접 전해 준 복음도 아니다. 그런 우리가 더러는 의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 옛날 예수님이 면접으로 직접 뽑은 사도 들 조차도 그 마지막 사명을 부여 받는 극적인 순간에서도 의심하거늘, 우리들이야. 사실 우리는 여러 모임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하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믿음의 사람은 열정으로 그분의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믿음이 약하고 의심을 가졌다고 해서 스스로를 탓할 수는 없다. 그 옛날 우리의 믿음의 선조인 베드로를 포함한 열두 사도들도 더러는 의심하였다. 유다는 결정적인 배반으로 그분의 십자가 사건의 반역을 거침없이 자행하였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그 약한 믿음을 모를 까닭이 없었다.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예수님은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제자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지상에서 그 제자들이 대행하기로 이미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지만 더러는 이렇게 의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떠나시는 그 마지막 날 까지도 의심을 하는 제자들을 두고 가시는 마당에 그 내색 한번 내지 않고 사랑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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