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예수님 이야기57: 약은 집사의 비유와 재물의 이용(루카 16,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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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4-01 | 조회수7,161 | 추천수0 | |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57) 약은 집사의 비유와 재물의 이용(루카 16,1-13) 하느님을 섬길 것인가 재물을 좇을 것인가
되찾은 양, 되찾은 은전,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관한 루카복음 15장이 우리를 위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한없는 자비와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면, 16장은 하느님 나라에 들기 위한 인간의 태도, 특히 재물에 관한 태도를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6장 전반부에 나오는, 약은 집사의 비유, 재물의 올바른 이용, 재물에 대한 태도를 차례로 살펴봅니다. 16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로 시작하고 있어, 이 세 비유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약은 집사의 비유(16,1-8)
비유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세속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부자에게 집사가 있었는데 집사가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집사를 불러 집사 일을 청산하라고 이야기합니다.(16,1-2) 집사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중책을 맡은 사람입니다.
이 말에 집사는 혼자 생각합니다. 집사 일은 빼앗길 것인데,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지요. 궁리 끝에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의 빚을 덜어주기로 작정합니다. 그래서 기름 백 항아리를 빚진 사람에게는 쉰 항아리로 줄여 주고, 밀 백 섬을 빚진 사람에게는 팔십 섬으로 줄여 줍니다. 그렇게 해서 집사 자리에서 물러날 때 빚을 탕감받은 이들이 자신을 맞아주도록 조치한 것입니다.(16,3-7)
이 집사가 한 처신은 분명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는데, 이제는 문서를 위조해 주인 재산을 빼돌리기까지 했으니까요. 상식적으로 보면 이 집사는 집사 자리를 잃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가중 처벌을 받아야 할 형편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처벌은커녕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16,8) 여기서 다시 의문이 생깁니다.
실제 세속 사람들 사이에서 불의한 집사처럼 처신하는 경우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집사를 두고 칭찬하는 주인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인이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다니 예수님의 비유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이 의문은 예수님의 그 다음 말씀에서 풀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영리하다.”(16,8)
이 말씀은 집사의 비유를 새로운 각도에서 보도록 해줍니다. 우선, 이 비유는 집사의 도덕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리한’ 일처리를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자녀들과 빛의 자녀들을 구분하시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자녀들이 살아갈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이렇게 영리하게 처신하는데, 빛의 자녀들, 곧 하느님의 자녀들 또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기 위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느냐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연히 불의한 집사가 그랬던 것처럼 ‘영리하게’ 처신해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빛의 자녀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영리하게 처신하는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의 그 다음 말씀,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고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라는 말씀에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라(16,9-12)
어떻게 하는 것이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16,9)
이 말씀은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은 “불의한 재물”이라고 하실까요? 불의한 재물이라는 표현에는 루카 복음사가의 생각이 들어 있다고 보는 설명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더러운 재물이라기보다는 재물이 세상을 자기 노예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불의하다”는 표현을 썼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친구”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학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들어라”는 말씀은 ‘재물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재물로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는 말씀은 또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지요? ‘재물이 없어질 때’는 재물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다 써버렸을 때도 되지만 재물을 더 쓸 수 없는 죽음에 임박했을 때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세상 재물로 자선을 베풀 때, 영원한 거처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문맥으로 보면 ‘가난한 이들’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니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6,20) 그렇다면 “그들(가난한 이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는 말씀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도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반문하십니다.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16,10-12)
학자들은 이 말씀에서 “성실하다”를 “믿을 수 있다”로 “불의하다”를 “부정직하다”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불의하고 부정직하게가 아니라 성실하고 믿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물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의한 재물의 노예가 되지 말고 그 재물로 가난한 이를 도우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처신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거처를 마련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냐 재물이냐(16,13)
주인의 재물을 영리하게 처리해 칭찬을 받은 약은 집사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한 영리한 처신으로 이어지고 재물을 올바로 이용하라는 말씀은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올바로 사용하는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이렇게 재물을 올바로 이용하는 태도를 강조하신 예수님께서는 나아가 하느님과 재물을 극명하게 대비시키십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16,13)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섬길 것인지 재물을 섬길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재물을 섬긴다면 바로 재물의 노예가 됩니다. 이렇게 재물의 노예가 된 사람은 결코 하느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약은 집사의 비유와 재물에 관한 가르침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도 성찰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물음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1)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기 위해, 곧 복음의 기쁨을 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가?
2) 우리는 하느님을 섬긴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재물을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재물의 예속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
3) 재물을 섬기지 않고 하느님을 섬기려고 한다면 재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인가?
4) 나는 나의 일을 하든 아니면 남의 일을 맡아서 하든,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고 있는가?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4월 1일, 이창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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