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뱀과 그리스도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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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두석 | 작성일2011-06-24 | 조회수735 | 추천수2 | 신고 | ||||||||||||
다음과 같이 교리서와 성경 주석을 통해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창세기 15장의 "여인의 후손"은 누구인가?
다음에 인용된 가톨릭 교리서에 근거하면,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의 "여인의 후손" 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일부 우상숭배자들이 성모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현혹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가톨릭 교리서 410 창세기의 이 구절(3장 15절)은 ''구속자 메시아'' 에 대한 첫 예고, 곧 뱀과 여인 사이의 싸움과 이 싸움에서 마침내 ''여인의 후손''이 승리하리라는 것을 처음 알리는 것이어서 ''원복음(原福音)'' 이라고 불린다.
가톨릭 교리서 411 그리스도교 전승에서 이 대목(창세기 3장 15절)을 ''새로운 아담''의 예고''라고 본다.
위와 같이 교리서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여인의 후손''은 성모님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남성 명사과 여성 명사를 구분하여 사용하는 언어군, 예를 들어 헬라어(그리스어)/라틴어/이태리어/불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 등등 에서는 이러한 오해가 생기지 않는데 그 이유는 성경에서 "여인의 후손"을 남성명사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모님이 "여인의 후손"이라면 여성명사로 받아야 하겠지만, 성경에서는 남성명사로 번역하고 있으므로 뱀의 머리를 밟고 계시는 분은 성모님이 아니고 당연히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남성명사로 받고 있고 교리서에서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묵시록 12장의 여인은 누구인가?
미국 가톨릭 성경인 NAB 의 묵시록 12장 주석에 의하면, 여인은 신구약의 하느님 백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참고로 여성명사로 받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교회는 건물이나 장소가 아니고 주님을 믿고 새생명으로 태어나서 주님과 유기적으로 한 몸을 이룬 하느님 백성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단체적인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바로 교회가 단체적인 사람으로 성경에 표현되고 있으며, 주님의 몸(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 새 예루살렘, 하느님의 거룩한 도성, 처녀, (어린 양의) 신부, 여인 등으로 나타납니다. 여인의 출산이라는 말씀에서 출산으로 상징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하느님 백성"이 물과 성령 세례를 통해 새생명으로 태어남을 상징합니다. 이후에 이러한 새생명은 골로사이서 3장 3절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시듯이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는" 상태이며 그리스도 재림 시에 주님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묵시록의 여인 또한 성모님으로 보아서는 안되고 단체적인 사람인 교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상징 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원죄에 물들지 않으시고(무염시태), 평생 동정으로 사시며(평생동정), 돌아가신 뒤 하느님에 의해 불러 올리심을 받으신(몽소승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있어서의 어머니이신(하느님의 어머니) 성모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신앙의 모범(Role Model)이 되시며 우리와 함께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하느님께 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할 지라도 성모님은 우리와 같은 피조물로서 교회의 지체로 계신 것이므로 기도의 대상이 되거나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3.고통의 십자가인가? 기쁨의 십자가인가?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성령과 함께 우리 안에 살아 계실 때,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고통의 십자가여야 함에도 역설적으로 기쁨의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가 우리의 무거운 죄짐을 내려놓을 때, 주님 친히 우리의 짐을 들어주시어(우리와 함께 십자가를 지시어) 우리에게 기쁨의 십자가(쉬운 멍에)를 지고 주님 안에서 편히 쉬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음의 마태오 복음서 12장의 말씀이 상징하는 바가 바로 그러한 기쁨의 십자가입니다. 주님 안에 내려놓을 때 기쁨의 십자가가 되는 것이고, 우리가 스스로 지려 할 때 그것은 고통의 십자가입니다.
강생 구속 부활 승천 성령강림하신 주님. 십자가에 가시관을 쓰시고 못 박혀 계신 주님은 또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었을 뿐만 아니라 성령강림하시고 우리 안에 살아계시기도 한 것이며, 이 모든 일을 함에 있어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하느님으로서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말구유에서 강생하시고, 30세에 공생활 시작하시어 33세에 십자가 구속하시고, 죽은지 삼일 만에 부활하시어, 40일이 차자 승천하신 주님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하느님의 속성 중에 시간(하느님에게 있어서의 시간의 통시성)과 장소에 있어 무소부재하심에 의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도 계시며, 동시에 부활승천하시어 보좌우펀에서 우리를 위한 기도를 하고 계시며, 또한 놀랍게도 성령과 함께 강림하시어 우리 안에 생명으로 살아계시기도 한 것입니다.
이는 삼위일체의 분리되지 않으심에 의해 가능한 것이며, 교리서에서 이야기 하는 바와 같이 성부가 계신 그곳에 성자 성령이 계시며, 성자가 계신 그곳에 성부 성령도 계시며, 성령이 계신 그곳에 성부 성자도 함께 계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성당의 중심은 바로 십자가이며 제대 (제대가 십자가를 상징함)입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이 생명으로 오실 때,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를 함께 지게 하심으로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십자가는 전례에 있어서도 중심이 되고 우리의 내적 신앙에 있어서도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함에도, 십자가 위 (개신교 십자가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음), 또는 저기 하늘 위, 또는 그림(성화)에 있는 주님(하느님)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그때에만 바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어 주시는 주님을 찬미하며 글을 마칩니다.
위에 기술한 내용은 교리서와 성경의 주석에 근거한 것일지라도 가톨릭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제가 쓴 글이 잘못 된 것임을 사전에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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