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신약 여행94: 그 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묵시 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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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4-15 | 조회수4,270 | 추천수0 | |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94) “그 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묵시 1,3) 묵시록의 상징과 비유 전체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 요한 묵시록은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이면서 종말에 드러날 계시를 전하고 있다. 사진은 미켈란젤로 작 ‘최후의 심판’, 바티칸 시스티나성당. [CNS 자료사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요한 묵시록을 시작하는 첫 표현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책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이면서 종말에 드러날 계시를 전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들을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주신 계시입니다.”(묵시 1,1)
책의 시작에서 저자는 자신을 ‘요한’으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런 언급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묵시 1,4.9) 전통적으로 교부들은 요한 묵시록의 저자를 요한 복음서와 요한 서간의 저자와 동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서 요한의 복음서와 서간들 그리고 묵시록을 ‘요한계 문헌’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현대의 학자들은 이런 전통적인 견해를 모두 인정하지 않습니다. 복음과 서간은 동일한 저자에 의해, 한 명이 아닌 요한의 가르침을 살아가던 공동체(요한 공동체)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요한 묵시록은 전혀 다른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요한으로 소개하는 익명의 저자는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와 같은 사명을 가진 인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요한 묵시록 안에서 저자 자신이 받은 계시의 내용을 예언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책 전체를 통해 자신의 사명이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묵시 1,3; 22,18-19)
당시 박해 상황 잘 묘사해
요한 묵시록의 배경에는 박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소명을 밝히는 내용 안에서 박해의 상황이 잘 묘사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과 더불어 환난을 겪고 그분의 나라에 같이 참여하며 함께 인내하는 나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에 파트모스라는 섬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묵시 1,9) 실제로 당시에 파트모스는 소아시아 지방의 이름난 유배지였습니다. 저자 역시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에, 곧 신앙 때문에 박해 당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또 요한 묵시록은 페르가몬의 안티파스라는 첫 순교자를 언급하면서 박해가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묵시 2,13)
1세기 즈음 소아시아 지방은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고 그리스도인들은 크고 작은 박해를 경험했습니다. 역사의 기록에도 이런 사실들이 전해집니다. 박해의 가장 큰 요인은 로마의 정책이었던 ‘황제 숭배 의식’입니다. 로마 제국을 시작하면서부터 로마의 황제를 숭배하는 정책이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모든 지역에 시행되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모두 이런 숭배 의식을 펼쳤지만 그중에 다른 황제보다 더욱 강하게 이 정책을 시행했던 이들로 칼리굴라(37~41년)나 네로(54~64), 또는 도미티아누스(81~96) 황제가 꼽힙니다.
이 중에서 요한 묵시록이 기록된 시기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로 생각합니다. 본문이 전해주는 여러 내용 중에 이 시기와 관련된 암시들을 찾을 수 있고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이전보다 더 강하게 황제 숭배 의식을 강요하고 소아시아 지방의 경제와 정치에 심하게 간섭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점을 감안해서 요한 묵시록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말기인 95년을 즈음해서 기록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환시 통한 계시의 내용 전달
요한 묵시록은 환시를 통해 계시의 내용을 전하는 책입니다. 물론 우리가 보는 것은 글로 기록된 것이지만 그것이 전하는 것은 저자가 보았던 환시입니다. 눈으로 본 환시를, 그것도 비교할 대상이 없는 환시를 글로 전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상징적이고 비유로 된 표현들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요한 묵시록은 많은 상징과 비유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상징과 비유는 시대나 지역이나 문화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요한 묵시록이 사용하는 상징이나 비유를 지금 우리가 이해하기에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어려움은 요한 묵시록이 전하는 내용을 잘못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개별적인 상징이나 비유는 요한 묵시록이 기록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전체적인 문맥에 맞게 해석될 때 그 의미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4월 15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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