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르 쉬외르(Eustache Le Sueur 1617-1655)는 교회와 수도원에 대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이 그림은 에페소 사람들이 바오로 앞에 마술 책을 가져와 불사르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사도 19,19 참조). 중앙에 붉은 겉옷을 걸친 바오로가 설교를 하고 있고, 곁에는 프리스카와 아퀼라로 추정되는 남녀가 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선교사들이 안수를 하고 있는 모습과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한 젊은이는 과부에게 자선을 베풀고 있다. 당시 바오로의 일행들이 공동체에서 행했던 일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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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외조 하느라 아주 바쁩니다.”라고 말하는 백 요셉님의 옆에서 윤 마리아 님이 활짝 웃고 있습니다. 본당 사목회가 개편되면서 여성분과를 책임 맡게 된 부인의 활동에 차량 봉사 등, 여러 가지 도움을 아끼지 않는 남편의 헌신에 고마움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님은 몇 해 전에 사목회장을 맡았던 요셉님의 봉사에 말없이 적극적인 내조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성서모임을 소개하여 활동과 기도의 근원이 되는 성서에 더 깊이 맛들일 수 있도록 권하였습니다. 이렇게 부부가 하느님의 교회를 위해 함께 봉사하며 서로 간의 역할에서 적절한 조언과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서, 초대교회에서 사도 바오로의 전교의 협력자이었던 프리스카와 아퀼라 부부를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사도 바오로는 프리스카와 아퀼라 부부의 헌신적인 봉사를 귀하게 여겨 자신의 편지를 통해 이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특별히 안부를 전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의 협력자들인 프리스카와 아퀼라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하여 주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모든 교회가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도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로마 16,3-5; 1코린 16, 19와 2티모 4,19 참조). 바오로가 남편 아퀼라 앞에 아내 프리스카의 이름을 쓸 때 이것은 단순한 예의 이상입니다. 이 부인은 그녀의 개인적인 활동과 결정과 신학적인 태도에 있어서 타고난 지도자였던 것처럼 보이며, 아내가 남편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8장에서 여러 번 그녀의 이름을 듣게 됩니다.
두 나그네가 낯선 타향에서 서로 만났습니다. 지적으로 거만하고 영적인 면에서는 눈먼 아테네인들로부터 떠나온 바오로와 로마에서 내쫓긴 프리스킬라와 아퀼라라는 유대인이 만납니다. 이들 부부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 1) 에 의해 로마를 떠나 코린토에서 피난처를 구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부인의 이름이 ‘프리스킬라’라고 불립니다(사도 18,1-2 참조). ‘프리스킬라’는 ‘프리스카’의 의미 축소형 이름으로, 사도행전 저자는 구어체의 이러한 형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바오로는 우선 생활을 꾸려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였습니다. 실제적으로 그들의 직업이 천막을 위한 재료를 만드는 것이었는지, 또는 이런 재료나 가죽을 준비하는 것이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바오로 자신이 여러 번에 걸쳐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듯이, 그가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자신이 설립한 교회에 물질적으로 종속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자신의 생업을 계속하였다는 사실입니다(1테살 2,9; 2테살 3,8; 1코린 4,12; 9,13-15; 사도 20,33-35 참조).
이미 코린토에서 안정을 찾은 신심이 깊은 이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바오로 사도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극진히 대접하면서 함께 일하는 가운데 많은 위로를 주었을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오로를 돌본다는 것은 목숨이 위태로운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와의 만남은 프리스카에게 인생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후 프리스카는 남편과 함께, 코린토에서 시리아로 떠나는 바오로와 동행하였고, 바오로는 이들 부부를 에페소에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한편, 에페소에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폴로라는 유대인이 와 있었습니다.
바오로가 떠난 뒤 코린토 교회 공동체는 피할 수 없는 인간적인 요소에 직면하면서 심각하게 분열되었습니다(1코린 1,10-13 참조). 아폴로에게 개인적으로 호의를 가졌던 바오로에 의하면, 그의 활동은 자신의 활동처럼 은총을 받았고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오로는 교회 안의 일치에 대해 크게 염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전교활동에서 무엇이 실제적으로 결정적인 요소인가를 신자들에게 지적해 주었습니다. “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1코린 3,5-6). 오늘날 각지에서 복음 선포를 하는 모든 이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구변이 좋고 성서에 정통한 사람으로 서술된 믿음이 충만한 아폴로를 참된 신앙으로 이끌어주는 사람이 바로 프리스카와 아퀼라였습니다. 아폴로가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으나 회당에서 담대하게 전교하는 것을 들은 프리스카는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하느님의 길로 나아가는 말씀을 더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던 것입니다(사도 18,24-26 참조). 이 부부는 사도 바오로의 만년에도 에페소 교회의 기둥 역할을 하였습니다(2티모 4,19 참조). 이와같이 사도행전의 저자는 교회의 구원 활동에서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수행한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소명감을 지니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교 활동을 충실히 해 나가는 선교사들이 서로 협력하는 모습은 교회 안에서 일치와 친교의 밑거름이 되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 속에서 참된 증거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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