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 그리스도 승천 축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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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5-21 | 조회수3,450 | 추천수0 | |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 그리스도 승천 축제(Zum Fest Christi Himmelfahrt)
1943년에 발표된 비오 12세 교황님의 역사적인 회칙 「성령의 영감(Divino afflante Spiritu)」은 성경 해석에서 문학적인 형식과 양식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한 예가 있습니다.
교황님의 회칙보다 11년 전에 독일에서 출간된 빌람F. M. Willam의 책 『이스라엘 땅과 백성 안에서의 예수의 생애』는 그 당시 베스트셀러였습니다. 550쪽에 이르는 이 방대한 책이 제 부모님의 서가에도 꽂혀 있었지요. 당시 열두 살이던 제가 그 책을 읽었는데, 아직도 이 책은 제 서가에 있습니다. 1932년에 출간된 이 책은 판을 거듭했고, 11개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위대한 점은, 빌람이 예수님을 아주 진지하게 유다인이신 분으로 그렸다는 사실입니다. 유다인들의 생활 방식과 종교 예식, 관습과 생활 형태 등을 독자가 눈에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자세하게 제시합니다. 당시 이런 설명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했지요.
참담한 결말
하지만 이 책은 부족한 면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빌람은 복음서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예수님에 대한 하나의 ‘역사서’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그보다 11년 후에 비오 12세가 주의를 기울이라고 촉구했던 성경의 문학적 양식을 무시하는 우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복음서의 이야기들은 광범위하게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수많은 ‘신학적’ 해석들을 담고 있기도 하지요. 이러한 해석 작업은 절대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역사적인 설명은 무엇이나 다 해석을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여러 상징적 요소들을 동원해 일종의 ‘다큐멘터리’를 만들 듯 예수님의 생애를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무슨 의미인지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빌람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자신의 책을 마무리하면서 루카가 전하는 예수님의 승천 이야기를 사용합니다. 이 승천 이야기는 빌람이 자신의 책을 효과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매우 적합한 소재였지요. 하지만 그가 예수님의 승천을 설명하는 방식은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는 제자들의 시각으로 예수님의 승천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곧 루카와는 달리, 예수님의 시각으로 승천을 설명합니다. 그리하여 그의 책을 읽는 이는 예수님과 함께 점점 더 높이 공중으로 올라가고, 그러다보면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입니다. 발 아래로 보이는 땅은 동시에 점점 확대됩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식이지요.
“예수는 마지막으로 당신 제자들의 무리에 축복을 내렸다. 그런 다음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권능으로 하늘로 올라가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점점 높이 오르며 예수님이 내려다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올리브 동산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들이 보였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자신의 지상 생애를 통해 거룩하게 만든 땅들이었다. 동쪽으로는 희미한 갈색의 유다 광야가 펼쳐져 있었고, 그 뒤로 굽이굽이 흐르는 요르단 강이 보였다. 서쪽으로는 골고타 언덕을 지나 도성의 성벽이, 남쪽으로는 베들레헴의 들판이 보였다.”
예수님이 점점 더 하늘 높이 오를수록 그분이 내려다보는 지역도 더 넓어집니다.
“유다의 수많은 산악지대와 그 옆으로 굳게 잠긴 바다가 보였다. 거기 구릉과 분지마다 자리 잡고 앉은 도시와 마을들도 보였다. 그다음 겐네사렛 호수가 보였다. 푸른 물결 주위로 들어선 마을들 때문에 호수 전체가 마치 왕관처럼 보였다. 이즈르엘 평야 위쪽으로 나자렛도 보였다. 그가 높이 오를수록 자신의 생애를 함께했던 지역들이 점점 더 하나로 모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다. 이스라엘 땅, 구세주의 땅으로!”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빌람은 예수님의 승천 이야기를 전하는 루카의 문학적 양식에 유념하지 않은 것입니다. 루카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작별, 우리로서는 상상 불가능한 예수님의 승천을 전적으로 제자들의 시각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루카는 성부 오른편에 오르신 예수님의 승천을 성경의 표상들을 사용해 설명하는데, 이 성경의 표상들은 당연히 ‘신학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루카는 예수님이 하늘로 오르는 여정을 묘사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가 전하는 텍스트의 중심은 오롯이, 남겨진 제자들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빌람은 마치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듯 예수님의 승천을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책을 의도와는 전혀 달리 우스꽝스럽게 끝맺고 맙니다. 그에게는 비오 12세의 회칙이 너무 늦었던 것이지요.
신학적 표상인 구름
루카의 승천 이야기가 지닌 문학적 양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면 제자들의 시각에서 이 이야기를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시각이 아니지요. 그래야만 이 이야기에서 올바른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제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실 때 그분을 감쌌던 구름에 관해서입니다(사도 1,9 참조). 제자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 구름은 일정한 한계를 나타냅니다. 곧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분이 어떻게 하늘로 오르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그분의 영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는 온전히, 승천하시어 영광을 받으신 그분에 의해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분의 승천을 남김없이 세세히 묘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구름은 예수님을 제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이 점을 상기할 때만,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에 등장하는 구름이 비구름이나 뭉게구름 또는 짙은 안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기상학적인 승강기도 아닙니다. 여기서 구름은 성경적 상징 언어로서, 당시 누구나 즉시 그 점을 알아차렸습니다. 구약에서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 구름 기둥이 백성을 앞서 가며 그들을 인도합니다(탈출 14,19-20; 40,36-38 참조).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서도 빛나는 구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마태 17,5 참조).
성경에서 말하는 구름은 바로 하느님의 현존을 가리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곁에, 그 한가운데 계시며 백성과 함께 걸으심을 나타냅니다. 동시에 그분은 감추어 계신 분, 아무도 조종할 수 없는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승천에서 바로 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구름이 그분을 감쌌다면, 이는 상징적 언어로서 예수님이 이제 최종적으로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셨음을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제 당신 자신을 감추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동시에 당신의 공동체 곁에, 그 한가운데 계십니다. 마지막까지 모든 날을 늘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셨듯이, 승천하신 예수님이 이제 당신의 공동체를 앞서 가시고 그들을 이끄십니다.
흰 옷을 입은 두 남자
구름은 그리스도의 승천 축제가 지닌 풍요로움을 밝혀주는 여러 표상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빛나는 옷을 입은 두 남자도 그러한 표상에 속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굳어버린 채 서 있던 제자들에게 갑자기 그들이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 1,11)
이렇게 해서 제자들의 시야는 하늘에서 땅으로 돌아옵니다. 하느님 나라는 구름 위에 있지 않습니다. 땅에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땅 끝까지 나아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느님의 다스림은 보이는 장소를 가지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땅을 토대로 합니다. 변모된 세상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토대입니다. 세상의 변모는 성령 강림과 더불어 시작되어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 역시 세례를 받고 견진을 받은 신자로서 이 일에 동참할 자격이 있습니다. “너희는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지금까지 두 가지 예를 들어 어떻게 예수님의 승천 이야기를 우리의 상황에 맞추어 읽어야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야기는 예수님의 하늘 여행기가 아닙니다. 바로 제자들의 시각에서 설명한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이 이야기의 핵심도 바로 ‘우리’를 향합니다. 남아 있는 우리, 깊은 갈망으로 예수님에게 시선을 고정한 우리에게로 향합니다. 천사들이 그 시선을 ‘지금 여기 오늘’로 돌려놓습니다.
성령을 기다리며
‘여기 오늘’에는 결정적으로 성령에 대한 기다림도 포함됩니다. 루카가 전하는 예수님의 승천은 바로 성령을 직접적으로 아주 분명하게 가리킵니다.
당신 제자들을 떠나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바로 이런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아버지께로 가시기 직전에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루카가 자신의 사도행전 전체를 요약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루카의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의 내용을 짧게 보여주는 목차라고나 할까요. 갓 출범한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먼저 ‘예루살렘’과 그 주변에서 메시아시며 주님이신 예수님을 증거합니다(사도 2-6장 참조). 그다음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박해로 그리스도인들이 ‘사마리아와 시리아’로 퍼져 나가고 거기서 복음을 선포합니다(사도 8-12장 참조). 이어 그리스도 공동체들이 계속 생겨나고 점점 불어납니다. 복음은 바오로 사도의 역할을 중심으로 마침내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까지 도달합니다(사도 28장 참조). 로마에 도달했다면, 이는 복음이 ‘땅 끝까지’ 이른 것입니다.
아버지께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당신의 성령을 선물로 주시도록 기도하고 이를 지향하며 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천 축제를 그 의미에 걸맞게 제대로 지내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장 소중한 보물이자 그분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이 성령 안에서 예수님은 바로 우리 곁에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성령 안에서 우리는 힘을 얻어 지금 여기 그리고 땅 끝까지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 - 세계적인 성서학자이자 사제로, 독일 튀빙엔 대학교에서 신약성서 주석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가톨릭통합공동체(katholische Intergrierte)에서 복음 정신에 따라 살며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국내 출간된 저서로는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예수마음코칭』 외 다수가 있다.
* 번역 : 김혁태 - 전주교구 소속 사제로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그리스도론을 가르치고 있다.
*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Bible Insight) : 저명한 성서학자인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가 매월 『생활성서』 독자들을 위해 나아가 한국의 신앙인들에게 보내는 연재 글로, 성경 안에서 길어낸 신앙과 삶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생활성서, 2018년 5월호,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 김혁태 신부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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