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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아가, 노래들의 노래3: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아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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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234 추천수0

아가, 노래들의 노래 (3)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아가 2,7)

 

 

아가에서는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깨우지도 말아 주오,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2,7; 3,5; 8,4)를 후렴구처럼 여러 번 되풀이하여 말합니다. 사랑에 홀린 남녀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겉보기에 둘을 떼어놓을 수 있다 하더라도 마음을 갈라놓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랑하라고 법으로 정한다고 무작정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하지 말라고 명령한다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고 있는, 또는 사랑하지 않으려 하는 이도 자기 마음대로 사랑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가의 연인들은 “우리가 원할 때까지” 사랑하게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고,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 방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제부터 아가 본문을 읽으려고 하는데 도무지 계획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지금 아가를 읽기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도 전혀 모르겠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될지, 그 알 수 없는 길을 오직 사랑의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듯 아가를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넘치는 사랑의 감정을 쏟아 놓은 책

 

아가의 짜임새를 알아보기 어려운 것도 어쩌면 사랑 자체를 도식화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가는 사랑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아니라 넘치는 사랑의 감정을 쏟아 놓은 책입니다. 연애편지에서 중요한 것은 추론 과정이 아닙니다. 같은 말을 끝없이 반복해도 사랑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쌍둥이라서 그것을 잘 압니다. 저희 둘은 “응”이라는 한 글자로 자주 메일을 주고받습니다. 이런 메일을 가지고 어떻게 본문의 구조를 논할 수 있을까요?

 

여러 사람이 정말 여러 가지로 아가의 구조를 설명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한 의견이 정설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상당수의 학자가 아가에는 구조가 아예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가가 단순히 여러 개의 사랑 노래를 엮어 놓은 책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대중가요 모음집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아가의 노래들 안에서도 공통점이 눈에 띕니다. 앞서 말한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깨우지도 말아 주오,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라는 후렴구 외에도 몇 가지 후렴구가 1-8장에서 몇 번씩 반복하여 사용됩니다. 사슴, 노루, 나리꽃(또는 연꽃), 목동, 솔로몬, 정원 등 여러 은유도 한 단락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가 전체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서로 무관한 여러 노래를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학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문학 작품이라면 저자가 구상한 어떤 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아가의 단일성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사랑의 감정

 

어떤 이들은 아가에서 한 편의 연극 같은 줄거리를 찾아내려 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가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은 포도원을 가꾸고 염소를 치는 시골 처녀라고 보고, 이 아가씨의 연인은 양치기이며, 중간에 끼어드는 솔로몬은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고 아가씨를 차지하려 하는 인물로 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 뒷이야기는 시골 아가씨가 솔로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자기 연인을 사랑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등장인물을 나누고 서사적 줄거리를 찾다 보면 본문을 줄거리의 틀에 꿰어 맞추게 됩니다. 이를 가리켜 ‘본문에 무리를 가한다’고 하는데, 하다 보면 맞지 않는 부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상충하는 본문도 많기에 아가가 단순히 노래들의 모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인물들을 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으로 말하자면, 아가의 솔로몬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인물이 아닙니다. 3장의 솔로몬은 1장의 목동과 동일 인물입니다. 여인이 사랑하고, 여인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혼란스럽지요. 사랑에 빠진 여인에게 자기 연인은 목동이기도 하고 솔로몬이기도 한 것입니다. 사랑은 목동처럼 자연의 일부이며 솔로몬처럼 화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8장의 솔로몬은 목동과 다른 인물입니다. 사랑을 방해하고 돈으로 사랑을 사려는 사람입니다.

 

결국 아가라는 문학 작품의 단일성은 잘 짜인 줄거리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아가의 단일성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사랑이라는 감정에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이 거기에 달렸습니다. 사랑이 연인을 목동으로 또는 솔로몬으로 보게 합니다.

 

 

반복되는 사랑의 여정

 

그러나 사랑이 전개되는 장면을 나누어 볼 수는 있습니다. 단락 구분의 기준에는 ‘등장인물의 변화’, ‘시간과 공간의 변화’라는 고전적 요소 외에도 소위 ‘사랑의 여정’이라는 요소가 있습니다. 물론 사랑에는 법칙이나 도식이 없지만, 사랑을 이야기하는 문학 작품에는 대개 기본 틀이 있습니다. 먼저 둘이 서로 찾고(둘이 동시에 찾지 않고 시간차를 두기 때문에 온갖 TV 드라마가 생겨납니다), 서로 만나고, 마지막에 둘이 결합합니다.

 

아가에서는 5장 1절이 두 연인의 사랑 단계를 알아보는 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전체 8장인 책에서 4장이 막 끝났는데, 거기에 나오는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나의 정원으로 내가 왔소. 내 몰약과 발삼을 거두고 꿀이 든 내 꿀송이를 먹고 젖과 함께 포도주를 마신다오”(5,1)라는 표현이 남녀가 이미 합일을 이루고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너무 난감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맙게도 우리보다 먼저 여러 사람이 이 문제를 고민했으니까요. 그래서 제시한 의견이 ‘5장 1절에서 아가 제1부가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여정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됩니다.

 

 

사랑의 때가 서로 일치할 때 비로소

 

이제 더는 세부 논의를 하지 않고, 아가의 구조에 대한 결론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1은 머리글이며, 1,2-2,7은 서문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는 주로 등장인물들이 소개됩니다. 2,8-17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눈에 띄는 것은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주인공이 여인이라는 점입니다.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2,8) 이렇게 자신을 부르는 사랑의 목소리를 듣는 여인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여인은 그 순간 부름에 응답하여 즉시 따라 나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3,1-5에서 여인은 잃어버린 애인을 찾아 길거리로 나섭니다. 이렇게 둘이 서로를 찾아 나선 다음, 여인은 가마를 타고 솔로몬에게 옵니다(3,6-11 참조). 드디어 두 연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4,1-7에서 남자는 자기 애인을 바라보며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나의 애인이여”(4,1)라고 경탄하며(여기서 ‘경탄’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단어입니다) 사랑을 향유하려는 갈망을 표현합니다. 그런 다음 4,8-5,1에서 그 사랑이 정점에 도달합니다. 앞서 인용한 5,1에서는 남녀의 결합이 완성됩니다.

 

5,2-5에서 제2부가 시작됩니다. 1부와 같이 남자가 밖에서 여인을 부릅니다. 여자는 대답할 때를 놓쳤고 한 발 늦게 연인을 찾아 나섭니다(5,6-6,3 참조). 남녀는 서로 만나고, 여기서도 남자가 자기 애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경탄합니다(6,4-7,11 참조). 그 후 다시 사랑이 완성됩니다(7,12-8,4 참조).

 

이것이 아가의 줄거리입니다. 사랑이 시작된 한쪽에서 상대에게 사랑을 호소하지만 상대는 아직 사랑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르는 소리를 놓칩니다. 뒤늦게 그 소리를 뒤따라가며 애타게 찾고, 이렇게 서로의 갈망이 커진 다음에 서로를 마주보는, 마치 거울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단계가 옵니다. 서로의 아름다움을 경탄하고, 그 경탄이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자신을 상대방에게 온전히 내줄 수 있게 합니다.

 

결국 이번 호에서도 본문 읽기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계획이란 것이 쉽게 실행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가는 저를 뒤집어 놓았던 책입니다.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던 책입니다. 이제 아가를 읽고자 하신다면, 이 책이 나를 완전히 뒤집어 놓아도 좋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안주하려는 마음으로는 사랑을 할 수도, 사랑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성 도미니코 말씀의 은사》,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2년 3월호(통권 432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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