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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3: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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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481 추천수0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 (3)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지난 두 달에 걸쳐 바오로가 왜 기도하는 사람인지, 로마서 전체 구조에서 기도가 어느 곳에 자리 잡고 있는지 보았다. 로마서에서 처음 다루게 될 기도 본문은 바오로가 로마서 서문(1,1-7 참조)을 마무리하면서 로마 신자들에게 은총과 평화를 비는 기도이다(1,7 참조). 이 기도에서 바오로는 자신을 ‘하느님의 복을 인간에게 도달하게 하는 중재자’로 소개하면서 우리가 서로 ‘은총과 평화’를 빌 수 있도록 초대한다.

 

 

문맥 보기(1,1-7)

 

바오로 시대의 일반적 편지 양식은 본론을 시작하기 전에 발신자와 수신자, 그리고 간단한 안부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안부에는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건강과 행운을 비는 말 등이 포함되기도 하였다. 바오로도 로마서를 시작할 때 이 양식을 따른다. 발신자와 수신자, 그리고 안부가 포함된 서문으로 시작하면서 자기 목적에 맞게 다른 내용을 덧붙여 확장한다(1,1-7 참조). 바오로는 1,1에서 “그리스도의 종,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복음을 위해 따로 가려내어진 사람”(필자 직역)이라는 세 가지 표현으로 로마 신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한다. 이 용어들은 그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일어난 부르심(회심) 체험과 관련된 삶을 암시한다. 바오로는 ‘하느님의 복음’(1,2-4 참조),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선포하는 사도가 되는 사명을 주님에게서 받았다(1,5 참조). 그는 수신자인 로마 신자들도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로마에 있는 모든 이들”(필자 직역 1,7 참조)이라고 긴 문장으로 표현한다. 바오로는 이들에게 ‘은총과 평화’를 비는 기도로 로마서를 시작한다.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로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필자 직역 1,7 참조).1)

 

 

은총과 평화

 

바오로는 로마서뿐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서간에서도 ‘은총과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로 시작한다. 더욱 짧은 인사 형태는 테살로니카 1서에 나타난다.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1테살 1,1). 더 후대에 쓰인 편지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인사에 은총과 평화의 기원인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로마 1,7; 1코린 1,3; 2코린 1,2; 갈라 1,3; 필리 1,2, 필레 3절)를 덧붙인다. 이런 강복(축복의 기원)은 전례에서 사용되는 말과 비슷하다. 바오로가 쓴 서간에서 이런 표현이 자주 발견되는 이유는 바오로 서간이 원래 공동체 전례 모임에서 읽혔기 때문이다.

 

‘은총’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카리스(χαριs)’는 유다 종교 문학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단어이다. 아마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해석하기 위하여 이 단어를 그리스도교에 사용한 첫 번째 신학자일 것이다. 고전 그리스어에서 이 단어는 선물하는 사람의 순수하고 선한 마음과 그 선물을 받는 사람의 감사한 마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이런 뜻을 알면 바오로가 사용한 ‘은총’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아가 하느님은 항상 변함없이 인간에게 주시는 분이고 모든 인간은 그분의 은총에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사실 때문에, 바오로는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에 들어 있는 ‘감사’의 의미도 받아들여 ‘카리스(χαριs)’를 신앙에 관련된 다양한 문맥에 사용한다. 문맥에 따라 ‘은총’은 여러 가지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근본 개념은 하느님의 자비와 거저 주시는 하느님의 관대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은총’은 위대하고 전능하신 하느님의 본질과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께서 일하심으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선물 받았다. 이 ‘은총’에 대한 지식은 바오로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해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삶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은총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일까? 바오로의 사고에 비추어 보면 그리스도인은 ‘은총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하느님께서 거져 주시는 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은총’이 지닌 깊은 신학적 의미는 단순한 안부 인사를 넘어서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 즉 인간은 자기 일이나 업적 때문이 아니라 철저히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것과 관계된다(1,16-17 참조).

 

나아가 바오로는 ‘은총’에 ‘평화(ειρηνη)’라는 말을 덧붙인다. ‘평화’는 유다인들의 인사인 ‘샬롬’을 연상시킨다. ‘평화’는 단지 다툼이나 전쟁이 없고, 인간 영혼이 내적으로 평온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번영과 성공 등 충만한 자아실현을 의미하는 개념을 상기시키면서도 ‘평화’라는 인사가 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6). “이 법칙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내리기를 빕니다”(갈라 6,16).

 

그러므로 ‘평화’라는 용어 뒤에는 인간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느님의 풍요로움을 암시하는 유다인의 사고가 존재한다. 나아가 ‘평화’는 구약의 예언서에서 메시아의 도래와 연결된 하느님의 종말론적 선물이기도 하다(이사 9,5-6 참조). 바오로는 ‘평화’라는 유다인의 평범한 인사를 그리스도인을 위한 축복으로 변화시킨다. ‘평화’라는 말은 ‘은총’처럼 하느님의 행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가장 깊은 차원에서 인간이 누리는 ‘평화’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은총’과 ‘평화’라는 선물은 바오로 자신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온다. 따라서 ‘은총과 평화’를 비는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토대를 부여한다. 그리스인과 유다인이 사용한 ‘은총’과 ‘평화’라는 두 개념이 혼합되어 서간 첫머리에 나오는 축복의 정식(定式)이 된 것은 바오로 시대에 매우 드물었다. 이 축복은 바오로 서간의 경우, 바오로가 자신을 ‘구원의 특별한 신적 선물을 중재하는 사람’으로 여겼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은총과 평화’는 그리스도인들끼리 따뜻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뿐 아니라 권위를 지닌 축복의 인사이기도 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서로 축복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로마 12,14).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복을 상속받게 하려는 것입니다”(1베드 3,9).

 

 

바오로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

 

바오로가 1,7에서 ‘은총’과 ‘평화’라는 말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사할 때,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위해 그들을 보살피는 아버지요 사목자로서 기도하고 있다. 바오로의 마음을 감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는 이런 심정이었으리라!

 

“나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본질상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신앙을 성숙시키기 위해 새 것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이미 받은 ‘은총’의 체험을 매일 깊이 있게 배우십시오. 피조물이 하느님 앞에서 지녀야 할 유일한 자세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인간에게 주신 구원의 선물에 감사하는 것임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항상 하느님과 화해하여 삶 전체를 하느님께서 주신 충만한 생명력으로 활짝 꽃 피우십시오. 또 만나는 형제자매에게 온 마음을 다해 ‘은총’과 ‘평화’를 빌어 주십시오.”

 

1) [ ] 안의 말은 원문에 없지만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삽입하였다. 

 

* 임숙희 님은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로마서의 바오로 기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회의 신앙과 영성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며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2년 3월호(통권 432호), 임숙희 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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