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13: 누가 이 비참한 나를 죽음에서 구하리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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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3 | 조회수3,673 | 추천수0 | |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 (13) 누가 이 비참한 나를 죽음에서 구하리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 7,24-25ㄱ).
문맥 보기
로마 6장에서 초대 그리스도인에게 세례는 죄와 갈라서는 결단,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여정을 시작하는 초대인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인생이란 항상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 그것을 아는 바오로는 7장에서 세례 받은 이의 삶을 영과 육 사이에서 겪는 ‘투쟁’으로 소개하며, 이 투쟁을 ‘율법’과 관련지어 설명한다.
먼저 율법에서 해방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주제를 소개하고(7,1-6 참조), 하느님의 계획에서 율법이 하는 역할을 설명한다(7,7-13 참조). 이어서 아직도 율법 아래에 있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묘사한다(7,14-25 참조). 그러나 바오로는 자기 힘으로 빠져나오기 힘든 이 갈등의 상황을 그리스도를 통해 벗어나게 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7장을 마무리 짓는다(7,24-25ㄱ 참조). 7장에서 우리는 탄식이 어떻게 감사로 바뀌는지 보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7,7-25은 신약성경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무엇보다 ‘나’의 정체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나의 체험’에 대해 학자들은 많은 논쟁을 하는데, 그 논쟁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에덴 정원에서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아담의 체험, (2)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의 체험, (3) 율법의 구속 아래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의 체험, (4) 사도 바오로 자신. 필자는 ‘나’를 자기 갈등에서 벗어난 인간 바오로, 나아가 그리스도의 제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할 것이다.
바오로는 7,7-25에서 자기가 겪은 ‘영’과 ‘육’의 투쟁 체험을 묘사한다. 바오로 안에서 일어났던 ‘영’과 ‘육’의 투쟁은 갈라 5,13-6,10에 잘 묘사되어 있고, 로마 8,3-17; 필리 3,3; 1코린 3,1에서도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바오로는 7,7-25에서 ‘영과 육의 투쟁’이라는 체험을 서로 구분되면서도 연결되는 두 단락(7,7-13; 7,14-25)에서 전달한다. ‘나’의 체험은 인생의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인생이란 죽을 때까지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주제가 로마 7,7-13; 7,14-25의 인간 ‘나’와 연결된다.
율법과 죄는 무엇인가?
먼저 로마 7,7-13의 주제는 율법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율법은 “탐내서는 안 된다”(탈출 20,17; 신명 5,21)를 인용하고 ‘계명’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사용하는 것으로 봐서(7,8-11 참조), 모세의 율법에 제한되지 않고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법을 가리킬 것이다. 바오로는 율법 자체를 비난하지 않고 죄가 율법을 도구로 사용했다고 강조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루스가 든 예는 율법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어떤 장소에 이르게 하는 넓은 길을 상상해 봅시다. 거기에는 버려진 돌이 많고 또한 여기저기 구덩이가 패어 있습니다. 어두운 밤에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이 장애물들 때문에 계속해서 넘어지고 뜻하지 않게 구덩이에 빠진다고 상상합시다. 이런 상황일 때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장애물을 볼 수 있도록 어떤 사람이 횃불을 들어 교차로에 갖다놓습니다. 사람들이 더 넘어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애물들을 드러내서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빛이 죄가 무엇인지 환하게 드러낸 것이 잘못한 것입니까? 아니면 여행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더욱 안전한 여행이 되게 하는 이 빛을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까? … 우리는 이것 때문에 이성적으로 율법을 죄로 여기거나 죄로 정의하지 말아야 합니다! … 율법은 무엇보다도 … 죄가 무엇인지 밝혀 주는 것입니다”(《Commento alla lettera ai Romani》, Citta Nuova, Roma, 1991, 69쪽).
이 글에서 보는 것처럼 빛(=율법)은 넘어질 위험이 있는 것을 보여 주면서 감추어진 악행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긍정적 역할을 한다. 빛(=율법)은 부정한 것(악행)의 원인이 되거나 그것을 만들어 내지 않고 뚜렷하게 드러냈을 뿐이다. 바오로는 율법 자체의 가치는 긍정하면서도 현실에서 율법이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죄의 확장에 사용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죄라는 사탄 세력이 안심하고 발을 내디딜 교두보를 마련해 주는 것은 ‘육’이다. 죄란 단지 몸으로 짓는 죄뿐 아니라 우상 숭배, 미움, 투쟁, 격노, 이단 등 육신이 저지르는 모든 종류의 죄다(갈라 5,20 참조).
7,14-25에서는 7,7-13처럼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 동사를 주로 사용한다. 바오로는 아직도 그리스도인 안에 머물고 있는 죄의 힘을 자기 체험으로 깊게 인식하고 있기에 그것을 다시 설명하려고 한다. 바오로에게 죄인이란 경매에서 일단 낙찰되어 주인의 확실한 소유가 되어 버린 노예와 같다. 어떤 습관이나 악행에서 벗어나기를 필사적으로 원하지만 그렇게 할 힘이 없다.
바오로는 이 단락에서 ‘나’가 겪는 내면의 투쟁을 드러낸다. 이런 인간의 내면 분석은 18-19절에서 심오하게 드러난다. “사실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7,18-19). 그러니 나쁜 것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 안에 들어가 그를 구속하고 종처럼 부리는 죄다(7,20.23 참조). 하느님의 계명과 나의 갈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의 정체’는 모든 인간의 드라마를 요약한다.
누가 나를 죽음에서 구할 수 있는가?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7,24)는 ‘나’의 탄식은 마지막에 감사의 외침으로 바뀐다. 7,25ㄱ에는 7,14-25에서 바오로가 묘사한 투쟁이 요약되어 있다. 마지막에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체험한 자유의 원천 때문에 계속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는데, 이 감사 내용은 8,1-4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소개될 것이다. 7,25ㄱ은 로마서 전체의 메시지, 아니 인간과 그의 하느님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역사의 메시지를 요약한다. 그리스도인은 좋고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어두운 터널을 혼자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다. 우리가 이 상황에서 빠져나오도록 그리스도께서 실질적 기회를 제공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7,24의 탄식에서 7,25ㄱ(8,2 이하)의 감사로 넘어가는 것은 구약성경의 시편에서도 자주 보는 표현이다. 감사 시편에서 하느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나’의 찬미는 강도 높은 탄식 후에 자주 일어난다(시편 22,22-23; 69,30-31 참조).
바오로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
로마서에서 기도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이나 특별한 훈련 방법을 배울 수는 없다. 그것은 바오로의 의도가 아니며, 서간이 그런 목적으로 기록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바오로가 성경이 가르쳐 주는 기도의 스승이라면, 그것은 바오로가 기도의 방법과 기교보다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 앞에 머물러야 하는지, ‘기도하는 사람의 본질적 자세’를 우리에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감사 기도는 하느님의 법과 말씀에 비추어 자기 삶을 솔직히 들여다보고 자기의 비참함을 깨달은 사람의 탄식, 그렇지만 그를 계속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자비와 은총을 깨달은 사람이 외치는 기쁨의 환호이다. 인생이란 싸우는 것! 눈물과 탄식의 기도가 그치지 않을 것이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니 감사기도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 임숙희 님은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로마서의 바오로 기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회의 신앙과 영성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며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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