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21: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함께 싸워 주십시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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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3 | 조회수4,103 | 추천수0 | |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 (21)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함께 싸워 주십시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사랑으로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나를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나와 함께 싸워 주십시오. 내가 유다의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구출되고 예루살렘을 위한 나의 구제 활동이 성도들에게 기꺼이 받아들여지도록, 내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분과 함께 쉴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십시오.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아멘”(로마 15,30-33).
문맥 보기
바오로는 공동체에게 권고(12,1-15,21 참조)하는 것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미래 계획을 밝힌다(15,22-33 참조). 이번 호에서 우리가 함께 읽고 묵상하며 기도할 15,30-33은 16장에 나오는 안부 인사와 영광송을 제외하면, 로마서의 마지막 단락인 15,22-33에 속한다. 이 단락에서 바오로는 로마 여행의 이유를 밝힌다. 그러나 로마에 가기 전에 예루살렘 공동체에 모금을 전달하는 일이 남아 있다. 바오로에게는 거기서 체포되어 죽을지도 모르는, 두렵고 불안한 여행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행을 앞두고 바오로는 공동체의 기도가 자기에게 힘이 된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사랑으로
15,30은 12,1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오는 동사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έω)로 시작된다. 여기서 파라칼레오는 ‘권고하다’가 아니라 ‘부탁하다, 요청하다’를 뜻한다. 바오로는 1-14장까지 말해 온 모든 것에 기반을 두고, 예루살렘 교회에 모금을 전달하려는 계획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로마 공동체가 기도로 자신을 도와주기를 희망한다.
기도해 달라는 이 요청은 두 가지 수단을 통해 강조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을 통해서(διὰ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καὶ διὰ τῆς ἀγάπης τοῦ πνεύματος).” 첫 번째 전치사 디아(δια)는 ‘-의 이름으로’라고 풀이할 수 있다. 바오로는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를 부탁하는지 소개한다. 12,1에서처럼 자기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의지하고, 거기에 ‘성령의 사랑’ 곧 성령이 믿는 이들의 마음 안에서 울려 퍼지게 하는 사랑을 덧붙인다. 바오로는 성령이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영감을 주는 원천임을 명시한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바오로의 기도 요청이 삼위三位 체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함께 싸우다
바오로는 자신이 사도직을 하면서 겪는 싸움에 기도로 함께 참여해 달라고 부탁한다. 동사 ‘함께 싸우다(συναγωνίσασθαί)’는 일반 기도뿐 아니라 투쟁, 노동, 임무, 어둠의 힘에 맞서는 영적 고뇌라는 요소까지 진정한 사도적 기도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이런 식으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오로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와 사도직 투쟁을 함께 한다. 바오로는 자신의 유익이나 행복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그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위해 중재 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복음을 온전히 전하는 사명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열정 때문이다.
‘하느님 앞에’ 선다는 것은 바오로에게 항상 기쁨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사도직이 성공하게 된 원천은 ‘하느님’이었다. ‘하느님 앞에’라는 정식(定式)은 바오로가 기도한다고 명시하지 않아도, 그의 사도 직분이나 믿는 이들을 위한 기도라는 문맥 안에서 사용된다. ‘하느님 앞에서 기쁘게 바치는 중재 기도’라는 주제는 구약성경에도 자주 나온다. 예언자들의 중요한 소명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 앞에서 백성을 위해 중재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인들과 하느님의 관계는 성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2코린 3,4; 로마 15,30 참조). 바오로는 자신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체험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느님과 맺는 친교로 정의한다(필리 1,21; 갈라 2,20; 로마 8,10-11; 에페 3,17 참조).
하느님 뜻에 따라
로마 공동체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목적은 31-32절에서 나오는 목적절(히나 ἵνα) 문장 두 개에 소개된다. 첫째, 31절에서 바오로는 예루살렘 공동체가 자신이 가져가는 모금을 잘 받아 주도록 기도해 달라고 청한다. 바오로가 모금을 전해 주고 예루살렘 공동체가 그 모금을 받는 것은, 그의 관점에서 갈라진 이방계 그리스도인과 예루살렘 유다계 그리스도인이 이루는 협력과 평화를 상징한다. 그들 사이에 있었던 적대감은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극복되었다. 다양한 교회가 물질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깊은 차원에서 은총의 열매, 곧 여러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하는 영적 협력에 해당한다. 둘째, 32절에서 바오로는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에 로마의 그리스도인들 곁에서 쉴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쉬다’로 번역된 동사 쉰아나파우오마이(συναναπαύομαι)는 ‘누구 곁에서 함께 휴식을 취하다’를 뜻한다. 동사 아나파우오(αναπαύω)는 기쁨과 위로의 열매인 내면의 고요함과 평화를 뜻한다. 바오로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오는 어떤 종류의 휴식을 찾고 있다(1,12 참조).
“내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는 바오로가 하느님의 뜻이라면 로마에 오기를 바란다는 갈망을 표현한 1,10을 상기시킨다. ‘하느님의 뜻’은 그의 부르심(2코린 1,1; 참조 콜로 1,1; 에페 1,1; 2티모 1,1 참조)이든지, 그 후 계속된 사도직(1,10; 15,32 참조)이든지 바오로의 삶을 조각하는 핵심 용어다. 바오로의 기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갈망과 하느님의 뜻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에 주목해야 한다. 로마서에서 바오로가 하느님께 바친 모든 기도는 그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영적 열매를 나누어 주고 신앙 안에서 함께 힘을 얻기 위해 로마에 가기를 기도하지만(1,9-10 참조), 죄수로서 쇠사슬에 감겨 죽기 위해 로마에 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부하는 동족 유다인들의 구원을 위해 자기 목숨을 걸고 기도하지만(9,3; 10,1 참조), 죽는 순간까지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기도해 온 동족 유다인들의 고발로 죽게 된다. 예루살렘 공동체가 자신에게 맡겨진 이방인 선교의 ‘열매’인 모금을 잘 받아 주기를 청하였으나(15,30-33 참조)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교를 위한 바오로의 싸움, 복음을 통해 교회를 일치시키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는 바오로의 사도직에 참여하라는 호소는 하느님의 평화를 비는 축복으로 마무리된다. “평화의 하느님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16,20에 나오는 “평화의 하느님”(2코린 13,11; 필리 4,9; 1테살 5,23 참조)이라는 표현은 평화가 하느님에게서 오는 선물임을 상기시킨다(레위 26,6; 민수 6,26; 이사 26,12; 예레 16,5 참조). 이 평화에는 모든 이에게 제공되는 구원이 포함된다.
바오로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
15,30-33은 로마서에서 처음으로 바오로가 자신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는 구절이다. 바오로는 자기와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자기와 직접 관계가 없는 로마 공동체도 기도를 통해 자신의 사도직에 함께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그는 로마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신자들도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잘 알고 있고 로마인들도 그것을 알기를 바란다.
바오로의 기도 요청에는 일반적인 선교 활동뿐 아니라 사도직 상황에서 비롯된 자신의 근심과 두려움, 특별히 필요한 것까지 포함된다. 15,30-33에서 바오로는 솔직하게 그리스도인의 체험에 호소하며 우리에게 기도에 대해 이렇게 가르친다. “당신이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면, 당신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성령의 사랑을 체험한다면, 자매와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그 사랑을 보여 주십시오!”
* 임숙희 님은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로마서의 바오로 기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회의 신앙과 영성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며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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