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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경과 영성2: 성경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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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838 추천수0

성경과 영성 (2) 성경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천주교 신자들이 개신교 신자들 앞에만 서면 마냥 위축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성경 지식일 것이다. 흔히 개신교 신자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폄하할 때, 주로 천주교 신자들의 짧은 성경 식견을 이야기하곤 한다. 심지어 개신교 일부 교단에서는 성경 지식이 짧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선교하여 개종시킨다는 이야기까지 들릴 정도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을 대하는 천주교 신자들의 자세이다. 많은 천주교 신자가 성경에 대한 식견이 짧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경의 장절을 줄줄 외우지는 못할지라도 성경을 열심히 읽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성경을 열심히 읽지 않고서도 많이 안다고 하지 않고, 솔직하게 모른다고 인정한다는 점이다. 부족함을 인정하면 언젠가 개선할 여지와 가능성이 있다.

 

 

성경에 대해 조금만 열의를 가진다면

 

천주교 서울대교구 시노드 준비위원회가 지난 2011년 5-6월에 교구 내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여 정리한 <전 신자 대상 의견 수렴 결과 보고서>를 보면, 성경에 대한 흥미 있는 정보를 발견할 수 있다.

 

시노드 준비위원회는 20세 이상 일반 신자들이 제안한 의견을 정리하여 233개의 소분류 영역을 설정하였다. 그중 한 가지가 ‘단계별 심화 교육 등을 통하여 성경 교육을 좀 더 활성화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많은 신자가 성경 교육에 관심을 가져 성경 교육에 대한 제안이 전체 233개의 소분류 영역 중에 상위 5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아마도 1980-90년대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경 공부의 열기가 유행처럼 번졌던 분위기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성경에 대한 부족한 식견을 인식하고 공부의 필요성을 스스로 충분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목구 성서사목부가 2008-2009년에 교구 내 본당에서 시행한 성경 공부 현황을 조사하여 정리한 <서울대교구 성서사목의 현황과 과제>를 보면, 현재 한국 천주교회 내에는 성경 공부 사도직 프로그램이 11개 정도가 있다.

 

각 본당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실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 읽기, 성경 필사, 성경 특강도 함께 하고 있다. 일반 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스스로 조금만 신경 쓰고 열의를 가진다면, 어렵지 않게 성경 공부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많은 신자가 성경 공부에 참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부 신자들은 평신도 성서사도직 봉사자로 활동하면서 다른 신자들의 성경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예전에 비해 성경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성경에 관해 행복한 신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1784년 이승훈이 처음 세례를 받은 이후 1801년 신유박해가 있기 전에 교우들은 이미 한글판 《성경직해광익》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책은 주일과 축일 미사에서 읽는 성경 말씀과 약간의 설명을 첨가한 한문판 《성경직해(聖經直解)》와 《성경광익(聖經廣益)》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 신앙 선조는 천주교 전래 초기부터 일부이기는 하지만 성경 말씀을 한글로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77년 개신교와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 성서》와 2005년 한국 천주교회가 독자적으로 작업한 가톨릭 공용 《성경》을 통해 신자들은 신구약 성경 전체를 편하게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제12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보고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전 세계에서 성경을 일부만이라도 번역한 언어가 총 2,454개이다. 그중에서 성경 전체를 완역한 언어는 438개뿐이라고 한다. 게다가 성경의 일부조차 번역을 시도하지 못한 언어가 아직도 4,500여개에 달한다.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요새 천주교 신자들은 개신교 신자들에 비해 과거보다 덜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성경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참여한 성경 공부 프로그램만 강조하거나 성경 지식의 길고 짧음만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을 어떤 자세로 대하며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 오늘날 천주교 신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성경 말씀을 어떻게 바라보며 이해하고, 각자의 영성 생활에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살펴보고자 한다(101-133항 참조).

 

성경의 궁극적 저자는 하느님이시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초자연적 방법으로 직접 개입하시기보다 인간 저자들을 매개자로 앞세우셨다. 하느님께서는 성경 각 권의 인간 저자들에게 성령의 감도로 영감을 주셨고, 인간 저자들은 영감 받은 진리를 기록하였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이간 저자의 자유 의지를 허락하셔서 저자들은 자신의 능력과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여 성경을 저술하였다. 물론 저자들이 자유롭게 저술하였지만 성령의 영감을 받아 저술하였기에, 기록된 성경은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담고 있다.

 

 

“성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기록으로 보존된 성경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접한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죽은 문자로 경전 안에 갇혀 계시지 않는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미 사람이 되시어 살아 계신 말씀으로 늘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 말씀을 잘 깨닫기 위해서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체험하였던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셔야만 한다. “성령을 통해 쓰여진 성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111항).

 

서경이 다양한 장르와 문체와 주제로 꾸며진 여러 권의 책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하느님의 커다란 계획 아래에서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가는 단일한 책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의 관점에서 성경 전체를 단일한 구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오해하고 잘못 해석할 수 있다. 가끔 개신교 신자들이 성경의 일부분만을 확대 해석해서 현혹할 때 천주교 신자들이 쉽게 걸려 넘어지는 것은 우리 신자들이 구원 역사라는 단일성의 관점에서 성경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은 교회의 거룩한 전통 안에서 읽고 해석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경전(經典) 안에 문자로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교회의 마음, 교회의 거룩한 전통 안에 함께 하신다(113항 참조). 개신교 신자들이 그럴듯한 논리로 성경을 해석하여 유혹한다 하더라도 우리 신자들은 교회의 거룩한 전통인 성전(聖傳)에 비추어 성경 말씀을 바라봐야 한다.

 

또 우리는 성경을 신앙의 유비(類比)에 의거하여 알아들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신앙의 진리는 외적 형태가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전체 계획 안에서 상호 일관성 있게 진리를 담고 있다. 간혹 다른 학문, 특히 과학 같은 분야에서 성경 안에 모순되는 내용이 있다고 오도하기도 하지만, 이는 신앙의 유비, 성경 전체의 일관성을 알아듣지 못해서 하는 지적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주의 사항들을 유념하면서 성경을 접하고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성경의 네 가지 의미를 파악하는 해석

 

가톨릭교회는 오랜 전통에 따라 성경 말씀의 의미를 자구적(字句的) 의미와 영성적 의미로, 영성적 의미를 세분해서 우의(寓意)적 의미, 도덕적 의미, 신비적 의미로 나눈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경 읽기는 이 네 가지 의미의 심오한 조화로써 더욱 생생해지고 풍요로워진다(115항 참조).

 

인간 저자가 처했던 상황이나 삶의 자리가 오늘날과 달라 성경 말씀을 얼른 알아듣지 못하는 것뿐이므로, 일차적으로 성경은 쓰인 글자 그대로 알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것이 자구적 의미를 파악하는 해석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느님 계획의 일관성과 단일성을 표현하므로 마땅히 문자 너머의 숨은 뜻을 살펴야 한다. 이것이 영성적 의미를 파악하는 해석이다.

 

성경 안에는 다른 사물에 빗대어 은연중에 어떤 의미를 비추는 내용이 있어 그것의 우의적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것을 의미하며 세례의 표징이 된다. 한편 성경은 다양한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를 올바른 행동으로 이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도록(1코린 10,11 참조) 도덕적 의미를 파악하도록 촉구한다. 또 성경 말씀은 우리의 시선과 관심을 종국에는 하늘 나라로 향하게 한다. 수많은 교부와 영성가들은 성경에서 이러한 신비적 의미를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우리가 단순한 지적 호기심으로 성경 말씀에 다가가면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믿음으로 성경 말씀에 다가가 그 말씀을 올바로 알아듣고 해석한다면, 분명 우리의 신앙은 깊어지고 굳건해질 것이다. 성경 말씀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가 영성 생활을 발전시키는 데 훌륭한 도구이자 지침서이다.

 

“글자는 행한 것을 가르치고, 우의는 믿을 것을 가르치며, 도덕은 행할 것을 가르치고, 신비는 향할 것을 가르친다”(118항).

 

* 전영준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2년 2월호(통권 431호), 전영준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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