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과 영성9: 고대 이집트 사막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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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3 | 조회수3,754 | 추천수0 | |
성경과 영성 (9) 고대 이집트 사막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리스도교 수도 생활의 시조이며 이집트 수도자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안토니우스(251-355/56년) 성인이다. 그가 보여준 삶은 홀로 한적한 곳에 머물면서 고행을 실천하는 은수자의 모습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수도원 형태의 삶은 안토니우스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지역인 이집트 사막에서 활동했던, 수도원 제도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파코미우스(290/92-346/47년) 성인에 의해 소개되었다.
물론 그들이 글자 그대로 첫 번째 수도자이고 처음으로 수도 생활을 실천한 것은 아니다. 몇몇 문헌의 간접 증언과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신자들은 복음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모습의 하나로 고행을 실천하는 개념을 이미 알고 각자 처한 곳에서 극기를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3세기 오리게네스(185-254년)가 자신의 저서에서 영적 투쟁이나 금욕 생활을 다루었던 것을 보면, 이미 그런 삶을 추구하는 신앙인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3세기 초에 이미 시리아에는 교회에 봉사를 하기 위해 공동생활을 실천하였던 수도 공동체의 초기 형태가 존재했다는 증언도 접할 수 있다. 그렇지만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에 출현한 이집트 사막의 수도자들을 수도 생활의 기원으로 보는 것은 제대로 기록된 문헌이 있기 때문이다.
3세기 말에 안토니우스와 그를 본받아 수도 생활에 나선 사람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남쪽에 위치한 나일 강 하류 이집트 북부 지역에서 은수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곳은 깊은 계곡과 언덕에 위치한 동굴 때문에 은수자가 생활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이집트 북부 지역에서는 안토니우스 시대에 이미 세 곳에 은수 생활 중심지가 형성되었다. 반면 4세기 초에 나일 강 상류 이집트 남부 지역에서는 파코미우스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울타리를 둘러친 수도 생활 공동체를 형성하여 함께 생활하는 형태를 정착시켰다. 이집트 남부 지역에서는 파코미우스 시대에 이미 아홉 개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고대 교부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더 잘 알아듣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이론적으로 열심히 탐구하면서 삶에 적용해 나갔다. 반면 고대 수도자들은 하느님과 일치하여 살기 위하여 성경 말씀에 실천적으로 접근하면서 영적 삶을 심화시켰다. 수도자들은 비록 학식이 깊지 않았지만, 성경 말씀을 수도 생활에 매우 잘 적용하여 영성 생활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수도 생활을 온전히 성경 말씀에서 배웠다
안토니우스는 은수자로서 살아가기 위해 결단을 내리는 출발점뿐 아니라 수도 생활 전체에서 늘 성경 말씀에 귀 기울이고 가까이하며, 말씀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안토니우스는 《서간 1》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기록된 율법의 이러한 증언은 그들 안에 이 부르심에 순종하려는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서간 1》 1항).
안토니우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람들이 하느님께 불리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간 본성 안에 부여된 사랑의 법에 따르는 것이고, 둘째는 성경 말씀에 따르는 것이며, 셋째는 시련을 통해서이다. 안토니우스는 그중 두 번째 방법인 성경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을 깨달았다.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아타나시우스(295/300-373년)는 저서 《안토니우스의 생애》에서 안토니우스가 어떻게 하느님께 불리게 되었는지 그 일화를 소개한다. 스무 살 때쯤에 안토니우스는 성당에 갔다가 우연히 복음 말씀을 듣게 되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태 19,21). 안토니우스는 즉시 여동생의 몫만 조금 남겨 두고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안토니우스의 생애》 2항 참조). 얼마 후 다시 성당에 간 안토니우스는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의 복음 말씀을 듣고 나서 여동생의 몫마저 가난한 자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여동생을 수녀원에 맡긴 다음 본격적으로 수도 생활에 전념하였다(《안토니우스의 생애》 3항 참조).
이렇듯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수도 생활을 온전히 성경 말씀에서 배웠다고 소개한다(《안토니우스의 생애》 46항 참조). 때로는 그가 다른 이들에게 믿음을 가지고 격려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성경 말씀이면 충분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안토니우스의 생애》 16항 참조). 그런 까닭이었는지 안토니우스의 《서간》뿐 아니라, 아타나시우스의 《안토니우스의 생애》에 기억된 안토니우스는 늘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다른 수도자들에게 그들의 수도 생활을 격려하고 가르침을 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안토니우스의 모습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우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그는 읽은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에 실패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할 정도였고, 그의 기억은 성경책을 대신할 정도였다”(《안토니우스의 생애》 3항).
당시 성경책은 요즘처럼 잘 인쇄되고 제본되어 휴대하기 간편한 책이 아니라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손으로 직접 필사한 책이기에 부피도 컸을뿐더러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은수자로서 수도 생활을 하는 안토니우스가 성경책을 직접 소유하고 읽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낮에 마을의 성당에 가서 읽거나 전례 시간에 낭독되는 말씀을 귀로 듣고 기억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안토니우스는 한 번 접한 성경 말씀을 잘 기억하였을 뿐 아니라 반복하여 암송함으로써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영성 생활이나 다른 이들에게 가르침을 줄 때 늘 성경 말씀과 함께할 수 있었다. 고대 수도자들의 삶에서 성경 말씀은 이렇게 기억 속에서 암송되면서 그들의 영성 생활에 유익함을 주었다.
파코미우스는 수도자들이 말씀을 끊임없이 묵상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수도자들의 성경 사랑은 공동 거주 형태인 수도원에서 더욱 강조되었다. 회(會) 수도자의 아버지라 불리고 공주(公住) 생활 수도원 제도를 확립한 파코미우스는 자신이 쓴 수도 규칙서에서 성경 말씀과 밀접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파코미우스는 먼저 수도 생활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입회하고자 하는 순간부터 성경 말씀을 강조한다. “수도원에 처음으로 입회하려는 사람에게 … 시편 스무 개나 (바오로) 사도의 서간 두 개나 너머지 성경의 한 부분을 그에게 주어 (외우게 할 것이다)”(《계명집》 139항; 참조 49항). 파코미우스는 계속해서 수도자는 성경 구절을 꼭 암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수도언 안에서 글자를 배우지 못하거나, 성경의 어떤 것, 적어도 신약성경과 시편을 암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계명집》 140항). 모든 수도자가 각자 성경을 소유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수도 생활을 하면서 늘 성경 말씀과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을 암송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파코미우스는 수도 규칙서에서 수도자들이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도 성경 말씀을 끊임없이 묵상해야 한다고 자세히 언급하였다. 먼저 수도자들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기 방을 나서서 집회소에 다다를 때뿐 아니라, 모임 후에 자기 방이나 식당으로 갈 때까지 성경의 한 구절을 묵상해야 했다(《계명집》 3항, 28항). 또 식당 앞에서 다른 형제들에게 과자를 나누어 주는 담당자들뿐 아니라, 빵을 만드는 담당자들도 일을 하면서 동시에 성경의 한 구절을 묵상하거나 노래해야 했다(《계명집》 37항, 116항). 심지어 수도원의 모든 형제가 모여 걸어갈 때에도 각자 성경의 한 구절을 묵상해야 했다(《계명집》 59항). 그러므로 수도자들은 일과 중에 늘 성경 말씀과 함께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물론 파코미우스는 성경 말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수도자들이 성경 말씀을 멋대로 해석하게 방치하지 않았다. 만약 장상에게 성경 강의 등 가르침을 들으면,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듣고 암기한 내용을 서로 돌아가며 이야기하여 그 내용을 곱씹을 수 있어야 하고, 형제들의 모임에서 들은 강론 내용도 서로 회상하며 나누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계명집》 122항, 158항). 또 파코미우스의 제자들이 작성한 파코미우스의 전기를 보면 파코미우스 자신도 종종 형제들에게 주님의 말씀과 그에 대한 해석을 가르쳤던 모습을 볼 수 있다(《파코미우스의 생애》 86항). 결국 파코미우스가 수도 공동체를 기도와 성경 말씀으로 무장시켜 유지했던 점을 알 수 있다.
고대 수도자들은 오늘날과 다른 출판과 독서 환경에서 주님의 말씀에 매달리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지닐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하였고, 그것이 ‘암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경 말씀을 읽거나 듣고, 그 읽고 들은 바를 끊임없이 반복하여 암송하였다. 그렇게 암송한 성경 말씀을 그들은 일상에 늘 가까이 두고 수도 생활을 실천해 나갔다. 그들이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까닭은 그만큼 고대 수도자들에게 성경 말씀이 그들의 영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하면서도 거의 유일한 버팀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 말씀을 쉽고 간편하게 접하고 간직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 너무나 화려하고 산만하여 성경 말씀에 집중하고 머물러 있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과연 주변 환경만 탓하는 것이 옳은 길일까?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긴 이들이 바로 수도자였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실천’이다.
* 전영준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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