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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경과 영성10: 동방 교회의 수도 생활은 어떻게 발전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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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4,729 추천수0

성경과 영성 (10) 동방 교회의 수도 생활은 어떻게 발전되었을까?

 

 

소아시아를 비롯하여 지리상 동쪽에 위치한 그리스도교인 동방 교회에서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대(大) 바실리우스’라고 불리는 카이사리아의 바실리우스(329/30-379년) 성인이다. 물론 몇십 년 앞선 안토니우스나 파코미우스도 동방 교회에 속한 인물이었지만, 바실리우스는 수도 생활을 위한 방대한 《규칙서》를 저술하여 수도 생활을 더욱 체계화했다고 높이 평가받는다.

 

이집트 사막에 수도자들이 출현하고 몇십 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 이미 수도 생활을 하는 수도자의 수가 수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인근 지역에서 살던 평범한 신자였지만, 때로는 먼 곳에서 찾아온 신자도 있었다. 평범한 신자들은 비록 많이 배우지 못하였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열정만큼은 대단하였다. 그런 가운데 간혹 학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 수도 생활에 합류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글을 아는 수도자들 중에서 때로는 자신의 수도 생활을 보고문 형식의 글로 써서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자 시도하는 이도 있었다. 학식이 있는 수도자들 중에서 때로는 자신의 수도 생활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이론 체계를 갖추고자 시도하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수도 신학을 학문적으로 정립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동시대에 공존했던 다양한 이단 사상으로부터 수도 생활을 지키기 위해 올바른 관점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특히 그들은 수도 생활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전에 영적 투쟁이나 금욕 생활에 대한 저서를 남기면서 영성 생활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오리게네스(185?-254?년)의 사상을 새롭게 적용하였다. 대표 인물로 이집트 사막에서 은수자로 지냈던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345/46-399년)를 들 수 있다. 그는 오리게네스의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수도 생활에 대한 이론적 가르침을 담은 여러 작품을 저술하였다.

 

한편 이렇게 수도 생활을 학문적으로 정립하려는 시도는 수도자들 사이에 분열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학문에 무지한 수도자들은 수도 생활에 대한 체계적 작품을 이해할 수 없어 유식한 수도자들을 시기하였다. 반대로 유식한 수도자들은 무지한 수도자들이 수도 생활의 열정과 정신을 너무 단순화하거나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무시하고 이단 관습에 물들었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감정싸움으로 번진 분쟁 때문에 에바그리우스를 추종하던 수도자들은 이집트 사막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동방 교회의 수도 생활은 이 과정을 겪으면서 이론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고, 훗날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줄 준비를 차곡차곡 하게 되었다.

 

 

성경을 통해 참된 그리스도교인이 누군지 알려 준 바실리우스

 

동방 교회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실리우스는 사실 평생 수도원에서 수도 생활만 한 인물은 아니다. 20대 후반에 세례를 받은 바실리우스는 하느님께 전 생애를 바쳐 복음 정신대로 살기로 결심하고 1년여 동안 이집트와 팔레스티나와 시리아를 돌아다니면서 훌륭한 수도자들을 만나 수도 생활을 체험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인근에 수도 공동체를 설립하여 동조자들과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30세 중반에 지역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고, 40대 초반에는 카이사리아의 교구장 대주교가 되어 더는 수도 공동체에서 수도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수도 생활 초기에 오리게네스의 저서에 심취했던 바실리우스는 주교직을 수행하는 동안 교의상 논쟁이 되던 많은 주제에 대한 신학 작품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수도 생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그는 수도 생활을 돕는 수덕적 작품도 질의응답 형식으로 여러 편 저술하였다. 그 수덕적 작품들은 동방 교회에서 오늘날까지 중요한 수도 규칙서로 인정받고 있다. 그중에서 203개의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진 《소(小)수덕집》은 일찍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방 교회에 《바실리우스의 규칙서》라는 이름으로 알려지면서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수도 규칙서로 인정되었던 바실리우스의 수덕적 작품들은 성경 말씀과 긴밀히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이 수도자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성경 말씀을 어떻게 수도 생활에 적용하여 실천해야 하는지 다루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실리우스는 많은 경우에 성경을 인용하면서 대답하였다.

 

그 작품들 중에 《도덕집》이 특별하다. 당시에 과장되고 엄격한 금욕주의가 유행인 것을 알게 된 바실리우스는, 그리스도교인은 누구이며 그리스도교인의 삶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신약성경에 찾고자 하였다. 그 결과 참된 그리스도교인과 관련된 주제들을 총 80장에 걸쳐 다루면서 신약성경을 직접 인용하여 해답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도덕집》을 완성하였다. 바실리우스는 이 작품에서 다룬 내용이 수도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인에게도 해당한다고 생각하였다. 신약성경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인을 위한 참된 규칙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한 채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 카시아누스

 

서방 교회에 동방 교회의 수도 생활을 본격적으로 알려 준 인물로 에바그리우스의 제자로 알려진 요한 카시아누스(360/65-430/35년)를 들 수 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던 카시아누스는, 젊은 시절 팔레스티나와 이집트에서 동방 교회의 수도 생활을 몸소 배우고 익혔다. 무지한 수도자들과 분쟁하여 이집트 사막을 떠나게 된 카시아누스는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로마에서 잠시 지내다가 말년에 남프랑스 지방에 직접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수도 생활을 하면서 사방 교회에 올바른 수도 생활 전통을 확립하는 데 일조하였다. 특히 카시아누스가 말년에 저술한 《제도서》와 《담화집》은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카시아누스는 저서 《담화집》에서 성경의 일부를 암기하고 그 뜻을 배우고 싶어 하는 수도자들에게, 네스테로스 아빠스가 가르치는 형식으로 영적 지식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마음이 약간이라도 복잡한 세속 일에 몰두하면 지식의 은사를 얻을 수 없고 영적인 감각을 느끼지 못하며 거룩한 독서에 항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입을 다물고 깊은 침묵을 지켜서 독서에 대한 열정과 그리움으로 가득 찬 노고가 헛된 교만으로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담화집》 제14담화 9항). 자만심이야말로 독서에 열중하지 못하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카시아누스는 성경 말씀을 빨리 알아듣지 못한다고 조바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권고하였다. “암기하기 위하여 자주 반복하여 읽어도 시간의 여유가 없어 그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뒤에 해야 할 일들과 눈에 들어오는 영상이 우리 마음을 빼앗지 않는 조용한 때 – 특히 밤의 침묵 가운데 되뇔 때에 – 그 내용을 더 밝게 알아차릴 수 있다”(《담화집》 제14담화 10항). 결론적으로 카시아누스는 “거룩한 말씀을 정성으로 받아들이고 마음 깊숙한 곳에 간직하여 침묵으로 봉하면 그것이 나중에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향기로운 포도주와 같이‘(《담화집》 제14담화 13항) 되고, ”깨끗하지 못한 영혼은 독서에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영적 지식을 얻을 수 없다“(《담화집》 제14담화 14항)고 언급하였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하고 육신의 악습을 끊어야만 성경을 열심히 읽거나 외우더라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편 카시아누스는 고대와 중세에 교회에 통용되던 성경 해석의 방법론에 대한 식견도 소개하였다. 그는 ’역사적 해석‘과 ’영적 이해‘를 언급하고, 영적 이해는 다시 ’윤리적 해석‘과 ’우의적 해석‘과 ’신비적 해석‘으로 나뉜다고 소개하였다. 카시아누스는 이 방법론을 갈라 4,22-27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적 해석이고, 사라와 하가르가 두 계약을 가리킨다는 것은 우의적 해석이며,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을 언급하는 것은 신비적 해석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예루살렘을 인간 영혼으로 이해하는 것은 윤리적 해석이라고 언급하였다(《담화집》 제14담화 8항 참조).

 

고대 동방 교회에서 시작된 수도 생활은 이집트 사막을 벗어나 다른 지역까지 멀리 전파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도 생활을 단순히 실천하는 것을 넘어 학문적으로 조명하고 이론적으로 체계를 세워 나가는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후대에 널리 영향력을 미쳤다.

 

특히 서방 교회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바로 바실리우스와 카시아누스이었다.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480/90-555/60년)는 저서 《수도 규칙》에서 그들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였다. ”수도 생활의 완덕을 향해 달려가려 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거룩한 교부들의 가르침이 있으니, … 교부들의 담화집이나 제도서나 그들의 전기나 그밖에 우리의 거룩한 사부 《바실리우스의 규칙서》는 착하게 살고 순종하는 수도승들의 덕을 닦기 위한 도구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수도 규칙》 제73항 2.4-6항)

 

그들의 영향은 체계화된 수도 생활을 서방 교회에 가르쳐 준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방 교회의 수도자들이 성경 말씀을 어떤 자세로 대면하여 읽고, 어떻게 삶에 적용하여 살아갔는지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를 통해 서방 교회에서는 거룩한 독서를 실천하는 틀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 전영준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2년 10월호(통권 439호), 전영준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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