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과 영성21: 동방 교회는 어떤 기도 전통을 발전시켰는가? | |||
---|---|---|---|---|
이전글 | [성경] 성경과 영성20: 현대 가톨릭 교회가 성경을 바라보는 입장은 어떻게 변했는가? | |||
다음글 | [성경] 성경과 영성22: 동방 교회의 기도 전통에서 영향을 받은 기도 운동은?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3 | 조회수4,360 | 추천수0 | |
성경과 영성 (21) 동방 교회는 어떤 기도 전통을 발전시켰는가?
기원전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땅이었고,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후에는 그리스도교에 중요한 성지가 되었으나 여성과 동물의 암컷은 들어갈 수 없는 땅은 어디일까? 정답은 그리스 북쪽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에게 해를 향해 돌출한 곶串에 위치한 ‘아토스 산’이다. 그곳이 금녀의 땅이 된 데는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어느 날, 사도 요한은 성모님과 함께 키프로스 섬에 사는 라자로를 방문하러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아토스 산자락에 표류하였다. 그러자 성모님은 아토스 산이 너무 아름다워 하느님께 그 땅을 자신에게 주십사고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그곳을 ‘마리아의 정원’이라고 이름 지으셨다. 그 후 그곳은 성모님만을 위한 땅으로 여겨져 여성은 어느 누구도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게 되었다. 다만 하느님께서 그곳이 구원을 찾는 자들의 피난처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에, 3-4세기에 수도자들이 들어와 수도원을 짓고 수도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9세기에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수도자들만 출입할 수 있도록 하여 지금까지 수도원 공화국이 유지되고 있다.
근현대를 지나면서 유럽 사회는 정신적 피곤을 느끼게 되었다. 17-18세기에 계몽주의가 등장하여 이성을 계몽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고, 19세기 초에는 실증주의의 영향으로 모든 것을 이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19세기 말에는 역사주의가 출현하여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매사 점검하느라 정신없이 살아야 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유럽 사회는 전 세계를 정복하려고 나서면서 동양과 동양 사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서양이 이성을 통해 합리적으로 영성 생활에 접근했다면 동양은 감성을 통해 직관적으로 접근했다. 서양이 분석적인데 반해 동양은 종합적이라는 면이 유럽 사회의 지성인뿐 아니라 신앙인에게까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영성 생활을 실천하면서도 이성적 접근 방법으로만 분석하여 피곤을 느끼던 차에 동양의 방법론은 하나의 해방구 같았다. 다만 너무 급작스럽게 동양의 사상 체계를 서양 사상에 접목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동양적이면서도 그리스도교적인 동방 교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게다가 20세기 중반에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가 화해한 분위기는 서방 교회가 동방 교회의 영성 생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방 교회는 성경을 배경으로 한 수도 생활에 커다란 가치를 두었다
동방 교회의 영성 생활과 기도 생활은 오랫동안 수도자와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약성경 시대에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유다교 제도권과 마찰을 빚은 참된 예언자들은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의 뜻을 받들고자 광야로 찾아들어 갔다. 구약의 마지막 인물인 세례자 요한도 광야에서 낙타 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로 요기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로 나가서 사탄의 유혹을 이기셨다. 이렇게 광야에서 하느님의 뜻을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한 동방 교회 그리스도교인은 사막 은수자의 삶을 적극 수용하였다. 그러므로 동방 교회는 성경을 배경으로 한 수도 생활에 큰 가치를 두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기도 생활과 성경의 관련성이 미미해졌다.
4세기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는 카파도키아의 세 교부(카이사리아의 바실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와 친분이 있으며,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의 제자로서 신플라톤 사상에 친숙했다. 그는 엘리트 지성인으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사막 은수자의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지성적 배경을 가졌는데도 기도 생활에서 지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에바그리우스는 기도란 인간 지성이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라고 여겼지만, 인간의 감성을 통해 지성의 완고함을 깨버리지 않는다면, 하느님께 온전히 기도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성의 작용이 정지하여 모든 물질적 대상과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하느님께 ‘순수한 기도(Pure Prayer)’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에바그리우스는 금욕 생활을 기도 안에서 지성을 탈물질화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결국 지성 작용을 멀리하고자 한 에바그리우스의 순수한 기도는 성경의 배경과 다소 거리가 있는 지성적 기도로 인식되었다.
한편 영성신학 분야에서 펠라기우스주의로 일컫는, 하느님의 은총보다 인간의 기도를 우위에 놓았던 이단 사상인 메살리아주의에 속한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 위(僞)-마카리우스(4세기 말)는 저서 《영적 설교》에서 의미 있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이원론적인 신플라톤 사상에 기반을 둔 에바그리우스와 달리, 일원론적 인간학과 강생의 신비에 기반을 두고 ‘마음의 기도(Prayer of the Heart)’를 강조했다. 즉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은 나뉠 수 없는 영혼과 육신의 통합체로, 성자께서 바로 그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육신과 영혼 그리고 지성의 중심이요 으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뵙고자 끊임없이 기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을 통하는 마음의 기도를 바쳐야만 한다.
하지만 마음의 기도가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5세기 포티케의 디아도쿠스는 저서 《영적 완전에 대하여》에서, 하느님 은총의 현존을 더욱 느끼고 온몸에 확산되게 하기 위해 신앙인들은 주님께 시선을 돌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르면서 기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어린아이가 옹알거리며 계속 ‘아빠’라는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이 신앙인들도 예수님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른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7세기의 요한 클리마쿠스 역시 저서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단조롭고 더듬는 말이라도 단 한마디 말로 하느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요한 클리마쿠스는 나아가 마음 안에 현존하는 세례의 은총을 통해 자기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혼자 고요하게 머무르는 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훌륭한 기도라고 언급했다. 그러므로 혼자 고요하게 머물기 위해서 자신의 호흡 리듬에 맞추어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했다. 결국 이러한 ‘예수 기도(Jesus Prayer)’는 수도자뿐 아니라,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기도 생활을 쉽게 실천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고요하게 기도하는 방법인 동방 교회의 헤시카즘
동방 교회에서 발전한 기도 전통은 요한 클리마쿠스의 호흡법과 함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되었다. 요한 클리마쿠스가 혼자 고요하게 머물라고 강조하면서, ‘고요함’을 뜻하는 그리스어 ‘헤시키아(hesychia)’에서 유래한 ‘헤시카즘’(hesychasm, 묵적주의 默寂主義)에 따른 기도 방법이 13-14세기에 동방교회의 대표적 기도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헤시카즘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마음의 기도와 예수 기도를 종합하여 믿음과 사랑으로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이름을 끊임없이 암송하며 고요한 기도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특히 그리스의 아토스 산에 머무르는 많은 수도자가 헤시카즘 전통에 따라 기도 생활을 실천했다.
그중에서도 14세기 동방 교회의 신비 신학자인 그레고리우스 팔라마스가 헤시카즘 신학을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팔라마스는 당시 동서방 교회의 일치 운동에 따른 주장으로,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부정 신학적 견해를 극단적으로 주장하던 사상에 맞서, ‘하느님께서 당신을 계시해 주시므로 초자연적인 은총을 통해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하느님의 은총을 감지하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고요함을 유지하며 주님을 향하는 기도를 끊임없이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 동방 교회에서 주로 실천했던 기도가 단문 형식의 기도문이 결합된 헤시카즘 기도였다. 단문 형식의 기도문은 4세기 대大 마카리우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 마카리우스는 기도를 바칠 때,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언급했다.
헤시카즘의 기도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읽거나 생각하거나 추론하거나 상상하지 않고 고요함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예수 기도를 반복하여 실천한다. 물론 이때 다양한 형식의 단문 기도를 함께 암송하는 것이 유익하다. 대표적 단문 기도는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다. 그리고 기도문을 암송할 때 리듬에 맞춰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기도문을 자신의 호흡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배와 배꼽을 응시하면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기 쉽다. 이를 통해 내적 온기를 느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기도의 목표는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합일하는데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도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2베드 1,4)라고 언급했다.
동방 교회의 기도 생활이 성경에서 직접 기도 주제를 끌어오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간접 배경으로 삼아 주님께 더 깊이 다가가는 기도 생활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 전영준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