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과 영성23: 오늘날 성경 해석의 방법은 어떻게 확장되었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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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3 | 조회수4,323 | 추천수0 | |
성경과 영성 (23) 오늘날 성경 해석의 방법은 어떻게 확장되었나?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누구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포악한 독재자나 흉악한 범죄자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다면 ‘책을 단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책을 단 한 권만 읽은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단 한 권의 책을 단 한 번만 읽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책을 단 한 번 읽을 때 대충 읽은 사람’이다. 그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있다면 ‘책 목차만 살펴본 사람’이며, 가장 무서운 사람은 ‘책 제목만 본 사람’이다. 이는 책 한 권마저 겉만 훑어보고 많이 아는 사람처럼 생색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관련 주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여러모로 살펴야 현명하다는 의미이다.
얼마 전 국내 한 대학교의 학내 무신론 동아리가 제작한 ‘전도 퇴치 카드’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 유인물에 쓰인 문구가 눈에 띄었다. “당신은 아마 한 권의 책을 읽고 맹목적으로 믿겠지만, 저희는 더 많은 책을 읽고 합리적으로 생각합니다.” 얼핏 보면 한 권의 책과 여러 권의 책을 대조하고, 맹목적 믿음과 합리적 생각을 대조하여 나름대로 호소력을 지닌 듯 보인다. 종교와 신앙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길에서 선교하는 이에게 한두 번 시달린 사람이라면 솔깃할 수 있는 주장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지구 상에 출판되어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성경’이다. 그리스도교인은 물론이고 타 종교인이나 비종교인도 한 번쯤 관심을 두고 본 책이 성경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이 어떤 책인지 다 안다. 그런데 성경책 한 권을 읽은 사람이 책 한 권만 읽은 무서운 사람으로 취급되거나 책 한 권에만 빠진 광신자라고 평가될 수 있을까? 오히려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는 신자들이 한 권인 성경마저 읽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하기야 한 권의 성경마저 설렁설렁 들여다보고 아는 척하는 신앙인은 정말 무서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열린 마음으로 성경에 다가가고자 한 20세기 영성가 토마스 머튼
오늘날 가톨릭 영성가를 대표할 인물로 토마스 머튼(1915-1968년)을 들 수 있다. 토마스 머튼은 엄률 수도회인 트라피스트회 수도자인데도 중세에 세상과 단절하고 살던 수도자와 조금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이는 그가 살던 20세기가 두 차례나 일어난 큰 전쟁, 서양과 동양사상의 만남, 사상의 대변화를 체험한 시기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토마스 머튼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가 중세 이래 전통 수도 신학에 정통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동양 사상과 종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직접 교류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도 알 수 있다. 그가 태국에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것도 타종교간 대화를 위한 모임에 참석한 때였다. 한편 유작 형식으로 발표된 작품들에서는 토마스 머튼이 생전에 세계 평화에 대해 많이 염려하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탈고한 《성서를 펼치며》를 살펴보면, 성경을 대하는 그만의 새로운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동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체험이 바탕이 되어 성경을 열린 자세로 들여다보고 싶어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토마스 머튼의 생각에 따르면, 성경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독자에게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인간의 사고 범주에서 기록된 책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에 의해 쓰인 천상 기원의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메시지는 우리의 이성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통해 알아듣게 된다. 즉 성경이 오히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우리는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면서 자아실현과 자기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성경 읽기는 다양한 독자의 삶과 연관된 독서이기에 그 메시지를 파악하는 데도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다.
토마스 머튼은 20세기에 최고의 관심을 받은 역사 비평적 성경 연구 방법론에 회의적이었다. 이는 방법론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한 가지 방법론에 매달리는 연구 자세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리스도교인들이 과거부터 전해오는 전통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선입견에 빠져 있거나 몇몇 연구 방법론만 유일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할 때, 성경의 메시지를 올바로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비그리스도교인이 더욱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성경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암울한 상황만은 아니라고 역설했다. 현대는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타진해 보고자 투쟁하는 혁명의 시기이므로, 열린 마음으로 성경에 다가갈 가능성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이 성경 안에 인격적으로 참여하여 성경과 관계를 맺어 갈 때 성경을 제대로 통찰할 수 있다. 또 모든 사람이 제각기 역동적으로 성경에 참여하는 모습을 받아들인다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린 자세를 유지하는 모습이다. 이것이 다양한 이념과 종교를 접한 토마스 머튼이 언급할 수 있는 성경 해석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가톨릭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에 이르러 역사 비평적 방법론을 긍정적으로 고찰하고 받아들인 것과 비교할 때, 토마스 머튼은 역사 비평적 방법론을 뛰어넘고, 심지어 신앙인이라고 스스로를 제한하는 선입견마저 넘어서서 열린 마음으로 성경에 다가가자고 한 걸음 더 앞선 주장을 펼친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고자 한 20세기 후반 성서학자들
성경 해석에 대해 해석학적 관점을 제시하려는 시도는 이미 시작되었다. 20세기 전반에 성서학계의 일부 신학자들은 심리학적 관점에서 예수님의 자의식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반대 입장을 보인 전통 학자들과 일대 공방을 벌였다. 이 와중에 1970년대 이후부터 심리학계에서는 종교 심리학자로 유명한 칼 융의 심리학적 해석학의 접근 방식으로 성경과의 대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결국 1990년대에 들어서 성서학계에서도 심리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 주었다. 이 시기에 미국 성서학계의 대표 모임 중 한 곳이 소단위 연구 모임에서 ‘심리학과 성서학’을 주제로 정할 정도였다. 이 연구를 계기로 20세기 후반 성서학자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입장에 다양한 관점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가톨릭 교회에도 나타났다. 1993년에 교황청 성서위원회는 문헌 <교회 안의 성서 해석>에서 성경 해석을 위한 다양한 접근 방법을 소개했다. 이 문헌에 따르면, 가톨릭교회는 기존의 보편적 방법인 역사비평, 문헌 분석, 전승비평뿐 아니라, 인문과학을 통한 접근 방법과 상황에 따른 접근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 문헌은 인문과학적 접근 방법으로 사회학과 문화인류학적 접근 및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심리학은 신학과 대화를 계속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리학적 · 정신분석학적 연구는 성경 주석을 풍요롭게 한다고 강조했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은 성경에 나오는 상징어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성경 주석가와 심리학자들은 올바른 성경 해석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문헌은 상황에 따른 접근 방법으로 해방신학에서 제시하는 해방의 관점과 현대에 와서 더욱 주목받는 여성 해방의 관점을 제시하였다.
성경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본다 해도 외형적·방법론적 틀만 집착하고 접근한다면 놓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토마스 머튼의 언급대로 성경의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는 데 소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관점의 방법론보다 열린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심리학적 관점은 영성 신학이 활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본의 아니게 심리학을 중심으로 성경과 영성 생활이 만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심리학이 영성 생활을 전부 대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이 아무리 심리학과 만난다 해도, 심리학의 관점만으로 성경에 담긴 영성 생활을 다 살필 수는 없다. 영성 생활에 칼 구스타프 융 서도 성경에서 들려오는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 전영준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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