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탈출기를 처음 읽는데요: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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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4,264 | 추천수0 | |
[탈출기를 처음 읽는데요]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
“당신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인가요?” 이 질문에 바로 “예” 또는 “아니요”라고 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조금 머뭇거리겠죠. 물론 속으로는 ‘나야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겠지만요. 그러면 다음 질문에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 법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세상이 엉망이 되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두 질문에 대한 답이 모순되어 보입니다. 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지만, 법이 없다면 세상이 엉망이 된다고 하니 앞뒤가 안 맞는 셈이죠. 나는 도덕과 양심에 따라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 수 있지만, 남들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오만함의 발로일까요?
법을 모르면 살 수 없는 현대 사회
현대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은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주차 구역이 아닌 곳에 주차하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과태료(범칙금)를 내야 하지 않습니까? 수많은 법이 제정된 현대 사회는 법 없이 사는 사회가 아니라 법을 모르면 살 수 없는 사회입니다. 법전에 쓰인 한 구절 때문에 없는 죄가 생기고, 지은 죄가 사라지며, 급기야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합니다. 법(法), 한 음절로 된 낱말인데 그 무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래서 법이라고 하면 골치가 지끈지끈 아픕니다.
탈출기, 신명기, 레위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법
탈출 20,22 앞에 붙은 제목은 ‘계약의 책’(계약 법전)이며, 그다음 줄의 제목은 ‘제단에 관한 법’입니다. 23장까지 쭉 훑어보면 제목마다 ‘법’이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종에 관한 법, 폭력에 관한 법, 상해에 관한 법, 절도에 관한 법, 손해 배상 법, 처녀를 범한 자에 관한 법, 약자 보호법, 하느님을 섬기는 몇 가지 법, 정의 실현에 관한 법, 안식년과 안식일에 관한 법, 연중 3대 축제에 관한 법. 본문을 꼼꼼하게 읽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법을 내려 주셨다고 눈치 챌 수 있습니다.
법이 탈출기에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신명 12-26장에는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법이 등장하고(신명기 법전), 레위 17-26장에는 ‘성결법’(성결 법전)이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성막 규정(탈출 25-31장)과 제사 규정(레위기) 등의 법령도 있습니다. 성경이 법전은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성경에 법이 많이 나올까요?
십계명을 주신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네가 그들 앞에 세워 놓아야 할 법이다”(탈출 21,1).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법은 십계명을 실천할 세부 사항입니다. 그런데 천천히 읽다 보면 좀 의아한 조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남종이나 여종을 몽둥이로 때렸는데, 그 종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경우, 그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종이 하루나 이틀을 더 살면, 그는 벌을 받지 않는다.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탈출 21,20-21). 주인은 이 법을 악용하여 종을 죽지 않을 만큼만 때릴 수 있습니다. 또 맞은 종이 사흘 째 되는 날 죽는다면 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법은 상해했다는 사실에 잘못이 있다고 하면서도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는 당대의 문화를 반영합니다. 현대의 법에 따르자면 종을 상해한 주인은 종의 생사와 관계없이 처벌됩니다.
하느님의 법에 흐르는 정신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
이처럼 성경에 쓰인 하느님의 법은 오늘날의 법과 차이를 보입니다. 성경이 쓰일 당시의 사회 질서가 지금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법에 흐르는 정신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바탕은 정의와 공정입니다. 백성 간에 일어나는 갈등 상황(폭력, 상해, 절도, 손해, 살인)에 대해 하느님께서 불편부당하게 판결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분께서는 ‘-하면 -한다’는 조건법이 아니라 ‘-해야 한다, -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법을 말씀하십니다. 곧 정의 실현에 관한 법, 안식년과 안식일에 관한 법, 연중 3대 축제에 관한 법, 가나안 땅 입주에 관한 약속과 경고입니다. 이 법을 어겼다고 처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의 의지로 부과되는 사회적 · 윤리적 · 종교적 규범인 당위법은 계약 당사자인 개인의 양심에 따라 지켜집니다. 하느님 백성으로 살고 싶다면 마땅히 지켜야 할 법입니다.
시시콜콜하게 일러 주시는 하느님을 친절한 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깐깐한 선생님처럼 여길 수도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십계명’ 정도만 말씀하시고, 나머지는 인간이 알아서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하나 자세히 일러 주시는 하느님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큰 줄기만 말씀하시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도록 맡겨 주시는 하느님을 원하십니까? 참 고민스러운 문제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계약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하느님께 들은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백성에게 일러 줍니다. 그러자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탈출 24,3) 하고 다짐합니다. 모세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기념 기둥 열둘을 세웁니다. 주님께 친교 제물을 바치면서 그 피를 백성에게 뿌리고,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탈출 24,8) 하고 선포합니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원로 일흔 명은 주님을 뵙고서 먹고 마십니다. 그들은 분명히 주님의 모든 말씀을 받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법에 얽매일지 법을 받아들일지
하느님은 일정한 영역이나 한계를 넘어, 또는 그 위에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발밑에는 ‘청옥으로 된 바닥 같은 것’(탈출 24,10)이 있습니다. 그 맑기가 꼭 하늘 같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발을 내딛고 사는 이 세상이라는 바닥은 어떤 모습입니까? 그분께서는 우리도 청옥으로 된 바닥 위에 서 있기를 바라시지 않을까요? 하늘 같은 맑은 세상을 만들라는 뜻으로 그분께서 법을 세우셨습니다. 그 법에 얽매일지 그 법을 기쁘게 그 받아들일지는 우리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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