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탈출기를 처음 읽는데요: 내가 그들 가운데에 머물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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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20,286 | 추천수0 | |
[탈출기를 처음 읽는데요] 내가 그들 가운데에 머물겠다
‘유비쿼터스(Ubiquitous).’ 한 번쯤 들어 본 말입니다. 라틴어 ‘유비크(ubique)’를 어원으로 하는 이 말의 뜻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입니다. 개인용 컴퓨터(PC)뿐 아니라 휴대전화, TV, 게임기, 내비게이션 등 컴퓨터가 아닌 기기로도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합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이 용어를 6-7년 전에는 자주 사용했습니다. 아무데나 유비쿼터스를 붙였습니다. 뭔가 획기적인 새 세상이 온 것 같아서였습니다. 2013년 현재 유비쿼터스를 잘 구현한 기기는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있으니까요. 바야흐로 유비쿼터스 시대입니다.
눈만 뜨면 스마트폰을 켭니다. 지하철과 버스, 길에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부터 백발의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외로움으로 인한 자살은 늘어만 갑니다. 언제 어디서나 소통하는데 우울하고 쓸쓸합니다. 날마다 정보가 넘쳐나는데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다지 없습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인간이 사는 천막에 머무르시겠다는 하느님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 머무르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에게서 십계명과 모든 법규를 받았습니다. 이제 백성이 해야 할 일은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이 나를 위하여 성소를 만들게 하여라. 그러면 내가 그들 가운데에 머물겠다”(탈출 25,8-9).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지상으로 내려오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백성은 하느님께 거룩한 곳(성소)에 머물러 달라고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분께서는 저 높은 시나이 산에 계시지 않고 백성이 사는 한가운데에서 그들을 만나겠다고 하십니다. 그분의 깊고 깊은 자비입니다.
탈출 25,1-31,17의 내용은 하느님의 말씀으로만 이뤄져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어떻게 성소를 건립하고 그 내부를 장식해야 하는지 아주 상세하게 말씀하십니다. 건축가나 실내디자이너처럼 재료, 크기, 높이, 길이, 모양 등을 낱낱이 지시하십니다. 그런 다음 의상디자이너가 되신 것처럼 사제들의 옷을 규정하고, 임직식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려 주십니다. 덧붙여 인구 조사와 속전, 물두멍, 성유, 향료, 성막 기술자, 안식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성소를 건립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지루하고 복잡하다?
본문을 계속 읽다 보면 지루함을 느낍니다. 현재 우리가 쓰는 길이 단위가 아닌 ‘암마’가 도대체 몇 센티미터인지 몰라 규모를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마실, 아마포, 커룹, 에폿, 쓰개, 홍옥수, 물두멍, 세켈…. 낯선 낱말이 연이어 나와 어지럽습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것도 성경인가?’ 성경이 맞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니까요. 그럼 도대체 하느님께서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말씀하실까요? 답은 그 복잡함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탈출 24,3) 하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들이 그분의 말씀에 따라 성소를 짓고 부속 기물을 만들고 사제 옷을 짓고 임직식을 하려면 그분의 말씀을 아주 여러 번 되뇌어야 합니다. 게다가 금과 은을 비롯한 귀중품을 저마다 내놓아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물건과 재능과 기술을 함께 나누며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는 일, 그것이 바로 거룩한 천막에 하느님을 모시고 그분과 만나는 신앙 체험입니다. 그런데 아둔한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뭐 그리 말씀이 많으신 거냐고 투덜거립니다. 지시 사항을 그림 한 장에 담아보여 주시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준비해 봤습니다. 이동용 성소인 성막(만남의 천막) 그림입니다.
- 성막(만남의 천막, 《성경의 백성》, 53쪽)
① 계약 궤: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궤. 안팎이 순금으로 되어 있다. 궤 위에 속죄판을 얹고 궤 안에는 증언판(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을 넣는다.
② 제사상: 아카시아 나무에 순금을 입혀 만든다. 그 위에 대접, 접시, 단지, 잔, 제사 빵을 올려 둔다.
③ 등잔대: 등잔대와 그에 딸린 기물들은 순금으로 만든다.
④ 분향 제단: 향을 피우는 제단으로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 순금을 입힌다.
⑤ 물두멍: 몸을 씻기 위해 물을 담는 청동 기물. 만남의 천막(성막)과 제단 사이에 놓는다.
⑥ 번제 제단: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 청동을 입힌다. 속죄 제물을 바칠 때 쓴다.
⑦ 성막: 널빤지로 기초를 세운다. 성막 내부를 세 공간(지성소·성소·성막 뜰)으로 구획하는 물건은 휘장과 막이다.
⑧ 휘장: 자주와 자홍과 다홍 실, 가늘게 꼰 아마실로 만든다. 휘장 뒤에는 증언궤를 모시고, 휘장 앞에는 제사상, 등잔대, 분향 제단을 놓는다. ㉮ 지성소: 계약 궤가 모셔진 곳. 대사제가 1년에 하루(속죄일)만 들어갈 수 있다. ㉯ 성소: 제사상과 등잔대가 있는 곳. 사제들만 들어갈 수 있다. ㉰ 성전 뜰: 제단이 있고 울타리가 쳐져 있다. ㉱ 울타리: 휘장, 기둥, 밑받침, 기둥 고리, 가로대로 만들어진다.
하느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신다
하느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성막의 지성소일까요? 예루살렘의 거대한 성전일까요? 오늘날 성당에 모셔진 감실일까요? 그분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방식대로 지성소와 성전과 감실에 머무르십니다. 마침내 그분께서는 사람이 사는 천막뿐 아니라 짐승이 사는 곳(구유)까지 갓난아기가 되어 찾아오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소통하는 유비쿼터스 시대, 수시로 스마트폰을 만지듯 언제 어디서나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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