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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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1-08-20 | 조회수1,148 | 추천수1 | 신고 |
+샬롬 샬롬.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요한 3,16-18)
- 인간 구원의 복음이 요약된 구절이다.(1요한 4,9-10참조). "사람의 아들"이 십자가상 죽음을 거쳐 영광스럽게 되는 길에서 이루어진 구원계획(13-15)은 한마디로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연유된 것으로 선포된다. 이 "세상"은 하느님의 "생명"을 잃어버리고 하느님의 "진노"가 머문(36참조)인간세계를 가리킨다. 즉, 구원이 필요한 인간세계이다. 바로 이 "세상"을 하느님은 사랑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이 사랑은 "외아들을 주심"으로써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하느님이 이 "세상"에 주실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외아들" 은 하느님으로부터 났고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유일무이한 아들이기 때문이다(1,14주석 참조). 하느님의 이 무한한 사랑의 행위는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 "외아들"은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는데 있다. 따라서 이 "생명"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멸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생명" 이냐" 멸망" 이냐,"구원" 이냐 "심판" 이냐(17절)의 갈림길에 놓여 있음도 아울러 시사된다. "생명" 이 현재적이듯 "멸망" 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오로지 "외아들" 을 믿음으로써 이 비 구원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36절 참조)
- 세상에 "아들" 을 파견하신 하느님의 목적은 세상 구원에 있다. (4,42참조)
이 목적 또한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를 나타낸다. 하느님은 오로지 세상 구원만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_- 하느님은 심판을 원치 않으시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이미 심판이 주어진다. 심판은 인간이 자초한 것으로 "지금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종말론적 심판이 현재 이루진다고 명언하는 이른바 "현실화한 종말론"에 속한다.
- 심판을 자초한 불신의 내용인즉,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파견된 "하느님의 외아들"(16절)을 믿지 않음이다. 특히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으로써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외아들" 파견)과 구원의지 ("이름" =파견된 하느님의 아들) 및 인간 구원의 유일 무이한 가능성(14,6 참조)이 강조된다.(16주석참조)
-"빛"은 한 실체로서 세상에 파견된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그도를 가리킨다(8,12; 9,35). 그러나 "어둠" 은 악의 세력이 인격화했을 뿐이다(1,5참조) 심판은 "빛" 보다 "어둠" 을 좋아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 예수는 심판하러 세상에 온 것이 아닌데(17절),심판음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9,39참조)예수의 계시활동을 통해 심판도 사실상 이루어 지는데,그것은 "빛" 을 거절하고 "어둠"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잘못이다. "빛" 보다 "어둠" 을 사랑한 이유가 사람들의 "악한 행실" 때문이라는 말도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한다(20절참조)
따라서 심판은 항상 어디서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심판은 단죄나 처벌을 뜻하지 않는다. "빛" 을 거절하고 믿지 않는,"어둠" 의 지배를 받는 지속적 상태를 가리킨다. (8,24.35.46-47참조)
이상은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451쪽과 452쪽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요한복음서의 종말론은 현재적 의미가 두드러지게 부각되기 때문에(4,23;5,25;참조:3,19;4,36) 일반적으로 '현재적 종말론'내지는 '현실화된 종말론'이라고 부른다. 즉 종말에 얻게 될 인간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 여기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3,15-16.26;5,24참조). 또한 미래에 가서야 완성되는 구원관도 배제하지 않기 때문에 종래의 미래적인 종말이나 기대도 내포된 종말론이다 (5,27-29;6,39-40.44.54;12,48참조). 신약성경 가운데 요한복음서에만 '마지막 날에'란 표현이 언급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6,39-40.44.54;11,24;12,48) 사실상 '들어 높여져 영광스럽게 된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서 오늘도 내일도 계속 활동하신다는 신학적 해석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란 말은 요한복음서의 구원론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3,16.36참조). 영원한 생명은 종말론적인 개념으로서 일반적으로 미래적인 구원을 가리킨다. 하지만 요한복음서에서는 오히려 이미 누리게 되는 현재적인 구원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즉 구원의 중심 개념인 영원한 생명도 역시 현재적인 의미가 지배적이지만 미래적인 뜻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는 마르타와 예수가 나눈 대화(11,21-27)에 잘 나타난다. 종말이,구원이 예수 자신에 의해서 현재적인 의미로 강조되면서도 죽은 자들의 부활이 언급됨으로써 종래의 미래 구원이나 종말에 대한 기대도 한층 더 심화된 것이다(1요한3,2-3)
이와 같이 인간 구원이 현재적으로 가능해짐으로 인해서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종말사건이 이미 이루어진 셈이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지금 여기서' 실제로 구원을 얻게 되지만, 에수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심판도 받게 된다(3,17-20;5,20-30). 이러한 신학사상은 인간 세계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구원체험 (부활의 현재적 체험)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한마디로 요한복음사가의 고유한 그리스도론적 신학이 종말론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상은 가톨릭교리신학원 요한계문헌 교재 93쪽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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