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시편 - 냇가에 심긴 나무 | |||
---|---|---|---|---|
이전글 |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시편 - 그럼에도 하느님의 자비가! | |||
다음글 |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시편 - 나의 아픔을 시편으로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5,314 | 추천수0 | |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시편] 냇가에 심긴 나무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1,2-3). 수녀원 입구에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따라 생긴 작은 개울이 하나 있습니다. 밭 가장자리에 심긴 옥수수는 잎이 건조하고 줄기가 약해 보이는데, 냇가에 심긴 옥수수는 푸르고 튼튼할 뿐 아니라 옥수수 알도 잘 영글어 갑니다. 시원한 물 한 잔이 감사한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흐르는 물가나 그늘 아래에 앉아 시편을 벗 삼아 주님께 기도해 보십시오. 그 순간 여러분은 “물가에 심긴 나무”(예레 17,8)와 같은 지혜 교사이자 현자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편의 저자들은 생명수를 길어 올리듯 가르침을 되새겨(1,2 참조) 주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여러 시편 중에 37, 39, 49, 73 등이 ‘지혜 시편’에 속하는데, 이는 지혜문학의 주제인, 의인들이 받을 보상과 악인들이 받을 심판에 대한 전통적 문제와 하느님의 정의에 관하여 숙고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나쁜 사람인데 잘 살고, 착한 사람인데 힘들게 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이러한 상황이 나오면 속상합니다. 시편의 저자들도 세상의 불합리한 문제를 하느님 안에서 고민하고, 가르침(토라)의 전통 위에서 참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37,39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고 그분께서는 곤경의 때에 그들의 피신처가 되어 주신다.
시편 37의 저자는 악을 저지르거나 불의를 일삼는 자들 때문에 격분하거나 흥분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1절). 성공은 피상적인 것으로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시험이 다가오면 푸성귀처럼 시들어 버립니다. 악인은 의로운 자들과 같이 “푸른 월계수처럼 뻗어”(35절) 가도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이 시편과 비슷한 구절이 잠언에서도 자주 발견됩니다(잠언 23,17; 24,1.19 참조). 저자는 “의인이 가진 적은 것이 악인들의 많은 재산보다 낫다”(16절)고 하며, “악인들의 팔은 부러지지만 의인들은 주님께서 받쳐 주신다”(17절)고 합니다. 따라서 주님 안에서 길이 살기 위해서는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27절)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올바른 것을 사랑하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을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37에서 악인들이 일시적으로 잘 되어 가더라도 하느님께 마음을 두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 의로운 사람들은 승리하게 마련이고 악인들 사이에서 구원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며 희망의 격언으로 끝을 맺습니다(37,40 참조). 시편 37은 알파벳 시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편의 이러한 형식은 연결된 문자의 흐름을 이용하여 학생들이 그 구절을 외우기 쉽게 하려는 교육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P. C. 크레이기).
39,13 저는 당신 집에 사는 이방인, 제 조상들처럼 거류민일 따름입니다.
시편 39에서는 악인들의 번성 때문에 괴로워하는 개인의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욥 21,7-16 참조). 저자는 악인이 자기 앞에 있는 동안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고 결심하는데(2절 참조), 악인이 성공했다는 표현이 없어도 그 앞에서 침묵을 결심하는 것은 그의 처지와 상황이 불합리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자는 ‘살 날이 얼마인지, 사람은 모두 한낱 입김 혹은 그림자’(5-7절 참조)라는 표현으로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드러내며, ‘살아갈 날’을 매우 작은 단위인 ‘뼘’(손 너비)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악인 앞에서 억지로 입을 다물었던 저자는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하신 일임을 깨닫고 진정한 침묵을 하게 됩니다(10절 참조). 인생은 매우 짧고 모순과 불합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에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저자는 하느님과의 연속성이 이 세상에서 드러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당신 집에 사는 이방인, 제 조상들처럼 거류민일 따름입니다”(39,13).
49,16 하느님께서는 내 영혼을 구원하시고 저승의 손에서 나를 기어이 빼내시리라. 셀라
죽음을 주제로 다루는 시편 49은 코헬렛과 욥기에 나오는 교훈적 주제와 비슷합니다. 저자는 수수께끼를 풀 만큼 숙고하며(5절 참조) 누구나 겪는 이 문제를 ‘천하거나 귀하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3절 참조) 지혜의 말씀 안에서 들으라고 합니다. 이 시편의 저자는 지혜 교사로서 인생 문제에 대한 질문에 대답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사람들은 가진 자들의 권세에 위협을 받을 때 “불행한 날에 왜 원수들을 두려워해야 하는가?”(6절 참조) 하고 묻습니다. 지혜 교사는 ‘자기 재산을 믿고 재물이 많음을 자랑하여도 영혼의 값이 너무 비싸 하느님께 몸값을 치를 수 없고’(7-8절 참조), 흙으로 빚어진 사람(아담)은 오래가지 못하여 짐승의 운명과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13절 참조). 저자는 지혜로운 이들도, 어리석거나 미욱한 자도 함께 사라지기에(11절 참조) 재산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또 “누가 부자가 된다 하여도, 제집의 영광을 드높인다 하여도 불안해하지 마라. 죽을 때 모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17-18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자신을 위해 재산을 모아도 영혼이 세상을 떠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12,19-21 참조). 이 지혜 교사는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은 부(富)와 권력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시는 주님이라고 알려 줍니다(잠언 1,7 참조).
위의 두 시편에 나오는 ‘셀라’가 시편에서 모두 71번 나옵니다. 이 용어가 시편 전체에 걸쳐 흩어져 나오는 것은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셀라’는 보통 제목을 가진 시편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주로 반주에 맞춰 노래로 불렸다고 추측합니다.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이 용어를 디아프살마(διάψαλμα)로 해석합니다. 그 뜻은 ‘쉼’이나 ‘간주곡’ 또는 ‘더 큰 소리로’입니다.
“제 몸과 제 마음이 스러질지라도 제 마음의 반석, 제 몫은 영원히 하느님이십니다”(73,26). 시편 73의 저자는 하느님을 배반할 지경에 이르렀던 경험을 언급합니다. “하마터면 발이 미끄러지고 걸음을 헛디딜 뻔하였으니”(2절)라고 하였는데, 이는 어느 누구도 유혹과 악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의 저자도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이들과 함께하지 않은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했나 봅니다(1,1 참조). 이 시편에서는 악인들이 잘될 때 불편한 감정과 마음의 위기를 잘 묘사하였는데, 핵심 용어로 보이는 ‘마음(레브)’이라는 단어가 6번 나옵니다(M. 부버). 또 ‘정녕’이라는 말이 세 번(1, 13,18절 참조) 나오는데, 이는 히브리어의 ‘아크’라는 부사입니다. 변하지 않는 확신을 나타내며 ‘아무리 그렇더라도(the great nevertheless)’라는 의미를 지닙니다(M. E. 테이트). 따라서 모든 상황이 반대가 되더라도 하느님은 선을 행하시고(1절 참조) 악인들이 잘되어 갈지라도 악인들이 가는 길을 거절했다고 합니다(13절 참조).
시편의 저자는 악인이 겉으로 잘사는 것처럼 보여도(4-12절 참조) 주님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길에 세우시고 그들을 멸망으로 떨어지게”(18절) 하시리라 확신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현존에서 영광에 참여하게 하시리라는 것을 믿음으로 깨닫고 하느님의 인도에 모든 것을 내맡깁니다(23-24절 참조). “제 몸과 제 마음이 스러질지라도 제 마음의 반석, 제 몫은 영원히 하느님이십니다”(26절).
세상의 이치가 흐르는 물처럼 순리대로 정의롭게 이루어지거나 우리의 바람대로 되지 않더라도 마음의 반석이신 주님께 마음을 두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다음 호에서는 탄원 시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김경랑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이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삶의 현장인 수지 가톨릭성서모임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열매 맺으며 살아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