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잠언 - 하느님의 약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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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5,695 | 추천수0 | |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잠언] 하느님의 약속
잠언은 짧은 경구로 사람을 크게 흔들어 놓는 촌철살인의 특징을 지닙니다. 잠언의 말씀은 오랜 세월을 거쳐 그 삶의 자리를 넓혀 왔습니다. 그렇게 광범위한 배경을 지녔기에, 잠언의 말씀은 성격상 매우 다양한 삶의 자리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또 끊임없이 새로운 삶의 자리에 적용될 수 있다는 유익함도 지닙니다.
잠언의 연구는 1-9장을 다루느냐 10-31장을 다루느냐에 따라 주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1-9장은 부모, 지혜, 교사들의 훈계에 관한 내용과 지혜의 강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명시하는 10,1-22,16은 가장 오래된 376개의 잠언으로 통일성 없이 엮여 있습니다. 이 잠언들은 주로 도덕적 삶을 다루며 주님의 이름을 자주 언급하여 종교적 색채를 나타냅니다. 22,17-29,27은 현인들의 잠언입니다. 그중 25-29장은 “유다 임금 히즈키야의 신하들이 수집한 것”(25,1)으로 보이는 127개의 오래된 잠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30-31장은 아구르의 잠언, 수잠언, 르무엘의 잠언이 모여 있습니다.
1,2 이 잠언은 지혜와 교훈을 터득하고 예지의 말씀을 이해하며 3 현철한 교훈과 정의와 공정과 정직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잠언 1,1-7은 1-9장의 서론으로, 잠언 전체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잘 드러냅니다. 중심 구절 1,3에 언급된 정의(체데크), 공정(미쉬파트), 정직(메샤림)은 도덕적이며 공동체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1,1-7에는 생활에서 지혜로 드러나는 다양한 용어가 나옵니다. 즉 포괄적이고 지적인 가치를 지닌 지혜(호크마)와 훈계(무싸르), 문학적으로 표현한 잠언(마샬), 비유(멜리짜), 수수께끼(히다), 실천 덕목으로 드러나는 현명(하스칼), 분별(오르마), 신중(메지마), 영리함(타흐불) 같은 용어입니다. ‘얻게 하려는’이라고 번역된 말은 ‘얻다(receive)’라는 히브리어 라카흐에서 나온 용어로 지혜 언어에서 매우 적극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는 가르침과 교훈 및 훈계로 얻게 되며 공동체의 삶을 위한 것입니다. 페르시아 속담에 “지혜를 얻고자 애쓰고 힘쓰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이다. 자신이 그것을 이미 찾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애쓰고 힘써야 하며,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힘써 얻은 지혜는 지혜로운 사람들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됩니다.
3,1 내 아들아, 너는 내 가르침을 잊지 말고 너의 마음이 내 계명을 지키게 하여라.
잠언에는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 받은 약속이 많이 나옵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약속은 “내 아들아”(2,1; 3,1)로 시작하는 3,1-12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 경외함을 깨닫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찾아 얻으리라”(2,5)는 구절에서 보듯, 주님의 약속은 2,1-8에서 지혜를 찾는 이들에게 이미 주어졌는데, 가르침과 약속이라는 주님과의 관계로 다시 반복됩니다. 주님의 약속은 신명기에 자주 나오는 전문용어(미츠오트: 명령들)로 쓰였으며 강한 권고의 특성을 지닙니다. 그러나 토라의 명령이 아닌 지혜 교사의 명령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R. E. 머피).
3,1-12에는 주님의 가르침과 그에 따른 약속이 여섯 번 이어집니다(B. K. 월키). 주님의 가르침으로는 계명을 지키고, 자애(헤세드)와 진실(에메트: 충절)을 떠나지 않는 것, 주님을 신뢰하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지 않는 것,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가르침을 물리치지 않는 것입니다(3,1.3.5.7.9.11 참조). 이에 대한 약속은 장수와 수명,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받는 호의와 호평, 곧은 앞길에 대한 약속, 몸에 약(healing) 또는 뼈에 활력소(건강), 부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3,2.4.6.8.10.12 참조). 이렇듯 가르침에 따른 약속이 있기에 “내 아들아, 주님의 교훈을 물리치지 말고 그분의 훈계를 언짢게 여기지 마라”(3,11)고 하신 말씀이 더 힘 있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잠언에서 언급하는 이러한 약속은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혜와 부활의 은총 안에서 이뤄집니다(1코린 1,18-2,16 참조). 오리게네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지혜이시므로, 현인賢人들은 저마다 지혜에 대해 제 능력껏 그리스도께 참여합니다.”
1,7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지혜와 교훈을 업신여긴다.
잠언에 따르면 주님을 경외하고 그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이들은 부모에게 순종합니다(1,8-9 참조). <효경(孝經)>에도 사람의 행위 가운데 효(孝)보다 큰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사람마다 부모를 부모로 섬기며, 어른을 어른으로 모시면 천하가 태평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늘 뜻을 즐기는 사람은 천하를 편안하게 하고, 하늘 뜻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부모와 현인들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주님에게서 나오므로, 조상의 전통에서 가르침을 얻고 터득한 사람은 주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심으로 지혜롭게 살아갑니다. 그러니 잠언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권고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너의 예지에는 의지하지 마라”(3,5). “인간이 마음으로 앞길을 계획하여도 그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시다”(16,9). “어떤 지혜도 어떤 슬기도 어떤 조언도 주님 앞에서는 가치가 없다”(21,30).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길 때 그 지혜가 어디서 오는지 살피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시작과 지식의 근원이 주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아는 사람이 바로 현인입니다(1,7; 9,10 참조).
31,30 우아함은 거짓이고 아름다움은 헛것이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
‘훌륭한 아내에 대한 칭송’(31,10-31 참조)을 통하여 묘사되는 지혜는 1-9장과 연계하면서 드러납니다(E. 쳉어). 지혜는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는 여인으로 묘사되고(1,20-33; 8,6 참조), 훌륭한 아내는 “지혜와 자상한 가르침이 그 입술에 배어 있다”(31,26 참조)고 말합니다. 이렇듯 잠언의 시작과 마침을 ‘여성’의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은 남성이 주로 이 말씀을 읽었기 때문입니다(A. 마인홀드). 여인으로 묘사하는 지혜 중에 ‘지혜로운 여인’이 단연 으뜸입니다. 잠언에는 여인의 이미지가 네 가지로 묘사되는데 지혜로운 여인(8,1-36; 9,1-6 참조), 우둔한 여인(9,13-18 참조), 배우자로서의 여인(5,15-19 참조), 낯선 여인(2,16-19; 5,1-14 참조)입니다. 이와 같이 지혜를 의인화하면 인격적으로 드러나기에 우리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1,1-7에서 살펴본 지혜와 관련된 여러 용어가 31,10-31의 훌륭한 아내의 모습에서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훌륭한 아내의 삶은 마침내 칭송을 받게 되며 주님 앞에서 잘 사는 사람들의 본본기가 되고, 지혜를 사랑하는 법과 지혜롭게 사는 법을 깨우쳐 줍니다. 이처럼 잠언의 저자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권고하며 그에 따른 주님의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잠언에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 곧 주정꾼(23,29-35 참조), 게으른 사람(10,4-5; 24,30-34 참조), 부정하거나 타락한 사람(26,23-28 참조)도 나옵니다. 이들은 지혜와 무관하게 살기에 그 반대되는 것에 끌려다닙니다. 가끔 전통 속에서 낯익은 격언들도 지혜의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논어>에 ‘지자요수(智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혜를 얻은 사람은 물이 흐르듯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산이 움직이지 않듯 세상의 헛것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교부 니네베의 이사악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혼은 덕행을 실천하는 데 무관심해질 때 그 반대되는 것에 이끌리고 만다.”
교부 오리게네스는 “지혜의 거룩한 신적 아름다움은 지혜를 명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혜를 사랑하도록 초대한다”고 하였습니다. 잠언이 들려주는 지혜의 말씀을 명상하며 지혜를 사랑하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길을 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코헬렛의 지혜로운 말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김경랑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이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삶의 현장인 수지 가톨릭성서모임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열매 맺으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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