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지혜서 - 참된 동반자, 지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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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5,065 | 추천수1 | |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지혜서] 참된 동반자, 지혜
넓은 바다나 사막에서는 신기루 현상이 일어납니다. 수평선 아래에 있거나 산에 가려진 물체가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사라져 안 보이는 수도 있습니다. 북극권 이상以上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본다거나 숨이 가빠지는 ‘파타 모르가나(Fata Morgana)’ 현상을 겪는다고 합니다. 인생에서도 삶의 질이 달라져,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 보이거나 잘 보여야 할 것이 안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 바른 길의 인도자나 동반자가 있다면 헛 것을 따라가지 않겠지요.
9,11 지혜는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기에 제가 일을 할 때에 저를 지혜롭게 이끌고 자기의 영광으로 저를 보호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섭리’(프로노이아 πρóνοια, 14,3; 17,2 참조)로 당신의 자녀들을 이끄시어 어떠한 위험이 닥쳐도 보호해 주십니다. 솔로몬은 임금으로서 백성을 지혜롭게 이끌고(9,11 참조) 자신이 하는 일이 주님께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또 의로운 재판을 할 수 있도록(9,12 참조) 거룩한 하늘에서 지혜를 파견해 달라고 청합니다(9,10 참조). 9,11의 동사 ‘이끌다’는 그리스어로 ‘호데게오(ὁδηγέω)’라 합니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광야의 여정 중에 주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주셨다는 데 쓰였습니다(신명 1,33 참조). 신약성경에서는 성령께서 이끌어 깨닫게 하시고(요한 16,13; 사도 8,31 참조) 목자이신 어린양이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주신다고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묵시 7,17 참조).
창세기의 성조들은 어려운 순간마다 그들 곁에서 고생을 함께 나누던(9,10 참조) 지혜로 보호와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집트 탈출의 역사에 나타난 지혜의 충실성은 거룩한 예언자를 통하여 빛을 발하였습니다. 지혜는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 여정 중에 이스라엘과 동행하면서 신앙의 백성을 이끌었습니다. 이에 지혜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모든 일에서 당신 백성을 들어 높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으며 언제 어디에서나 그들을 도와주시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19,22).
9,10 거룩한 하늘에서 지혜를 파견하시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어좌에서 지혜를 보내시어 그가 제 곁에서 고생을 함께 나누게 하시고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제가 깨닫게 해 주십시오.
이 구절은 솔로몬이 지혜를 청하는 기도에서(9,1-18 참조)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으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요한 1,14-18 참조). 솔로몬은 주님에게서 지혜가 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됨을 알고 있기에(9,6 참조) 주님의 어좌에 자리를 같이한 지혜를 달라고 청합니다(9,4 참조). 또 하느님의 아들딸을 다스리고(9,7 참조) 거룩한 산에,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장소인 성전을 짓고 제단을 만들라고 분부하셨음을 강조합니다(9,8 참조). 솔로몬은 임금의 자격으로 백성과의 관계에서 하느님의 거룩함을 유지해야 할 의무를 지녔습니다.
다음의 두 구절이 지혜서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3,9). “곧 은총과 자비가 주님께 선택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들을 돌보신다는 것이다”(4,15). 여기에 쓰인 형용사 ‘거룩한’은 그리스어로 ‘호시오스(ὅσιοϛ)’입니다. 하느님의 최상의 법 가운데 한 부분으로 올바름과 헌신적 생활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거룩함을 뜻합니다.
거룩함을 뜻하는 또 다른 그리스어는 ‘하기오스(ἅγιοϛ)’인데, 이 용어는 인간의 두려움에서 유래한 제의적 개념으로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의 상태를 말합니다. 지혜서에서는 주님의 돌봄과 거룩함에서 벗어나 지혜롭지 못한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다음의 말씀을 명심하라고 합니다. “두 가지 이유로 그들에게 형벌이 내릴 것이다. 우상들에게 정신을 빼앗겨 하느님을 잘못 생각하였기 때문이고 거룩한 것을 무시하면서 거짓으로 불의한 맹세를 하였기 때문이다”(14,30).
지혜가 세상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능력으로 빛을 발하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들은 주님께 선택된 은총을 누릴 뿐 아니라, 드러난 것은 물론 감춰진 것에서까지 만물의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또 지혜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한 그 세상을 돌보시는 분임을 알게 해 주며, 균형과 조화로 세계 질서를 이룹니다. 무형의 물질로 세상을 창조한(11,17 참조)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위대한 창조의 힘과 능력을 드러내시고, 사람에게 심오한 인지 능력을 주시어 세상을 거룩하고 의롭게 관리하도록 하셨습니다(9,3 참조).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말씀으로 만드시고 인간을 당신의 지혜로 빚으시고(9,1-2 참조), 무엇이 주님의 마음에 드는지 배워 아는 사람들을 지혜로 구원하셨습니다(9,18 참조). 이로써 지혜는 창조와 구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지혜의 훌륭함을 통찰한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묻고 답합니다. “예지가 능력이 있다면 만물을 지어 낸 장인인 지혜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것이 어디 있겠는가?”(8,6) “사람이 사는 데에 지혜보다 유익한 것은 없다”(8,7). “그래서 나는 지혜를 맞아들여 함께 살기로 작정하였다. 지혜가 나에게 좋은 조언자가 되고 근심스럽고 슬플 때에는 격려가 됨을 알았기 때문이다”(8,9). 그러나 그가 지혜를 받아들여 살기로 작정했어도 하느님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달리 얻을 수 없음을 깨달았기에, 그는 주님께 호소하며 지혜를 달라고 마음을 다하여 청합니다(8,21 참조). 마침내 기도로 지혜를 얻은 솔로몬은 주님께서 높은 곳에서 지혜를 주시어 거룩한 영으로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 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9,17-18 참조).
9,5 정녕 저는 당신의 종, 당신 여종의 아들 연약하고 덧없는 인간으로서 재판과 법을 아주 조금밖에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솔로몬은 임금이었으나 한낱 인간이기에 하느님의 뜻을 알고 올바로 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연약하고 덧없는 인간이며, 재판과 법을 아주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9,5 참조). ‘덧없다’는 말은 그리스어로 ‘올리고크로노스(ὀλιγοχρόνος)’입니다. 작다는 뜻의 ‘올리고(ὀλιγο)’와 물리적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χρόνοϛ)’가 합쳐진 말로 지극히 짧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지는 솔로몬도 자신을 ‘죽어야 하는 인간’이라고 인정합니다. 보잘것없는 생각과 변덕스러운 속마음을 지녔고 썩어 없어질 ‘흙으로 된’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한다고 말합니다(9,14-15 참조). ‘흙’은 그리스어로 ‘게오데스(γεῶδεϛ)’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 단 한 번 나오며, ‘흙(게, γη)’과 ‘형상(에이도스, ειδοϛ)’을 뜻하는 두 단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말씀과 차이가 납니다(창세 2,7 참조). 아마도 이 표현은 창세 1장과 2장의 인간 창조를 한 단어로 드러내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으나 흙으로 지어진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주님께 흙으로 만들어진 연약하고 덧없는 인간에게 필요한 지혜와 하느님 백성을 다스릴 임금이 지녀야 할 지혜를 청합니다.
16,26 주님,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여러 가지 곡식이 아니라 당신을 믿는 이들을 돌보는 당신의 말씀임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로 이스라엘의 선조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실현하셨습니다(10-19장 참조). 지혜서 저자는 일곱 번에 걸쳐 이집트 탈출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받은 은총을 이집트인에게 내린 징벌과 비교합니다(11,4-14; 16,1-19,8 참조). 나아가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은 뒤에도 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되었음을 고백하며,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과 삶의 타락을 경계합니다(14,12 참조). 지혜서는 이스라엘 조상들의 경험을 통해 헛것을 좇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 줍니다(14,14 참조). 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던 만나는 단지 배고픔만 해결해 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혜 안에서 주님을 섬겨야 하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고 전합니다. “불에도 없어지지 않던 그것이 잠깐 비치는 햇살에 따뜻해지자 그냥 녹아 버린 것은 당신께 감사하기 위하여 해 뜨기 전에 일어나야 하고 동틀 녘에 당신께 기도해야 함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16,27-28).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식과 지혜를 존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습니다. “기도 시간은 짧게 하고, 학문에는 오랜 시간을 보내라.” 인간의 기도는 하느님께 하는 일방적 말이므로 맑은 정신으로 짧게 하고, 배움은 하느님의 진리를 익히는 것이므로 오랫동안 정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말씀 안에서 진리를 배워 참된 동반자인 지혜를 얻도록 힘써야겠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집회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김경랑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이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삶의 현장인 수지 가톨릭성서모임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열매 맺으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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