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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집회서 - 더 넓고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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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4,873 추천수0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집회서] 더 넓고 깊게

 

 

가끔 높은 산의 정상에서 수평선이 보이는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 너머에 그보다 더 넓은 곳이 있음을 느낍니다. 마음이 눈에 보이는 것의 이면(裏面)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혜 또한 그 생각이 바다보다 풍부하고 그 의견이 큰 심연보다 깊어(24,29 참조) 우리는 성경의 현인들이 들려주는 지혜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깨닫게 됩니다.

 

24장은 집회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지혜를 아름답게 묘사한 장엄한 찬미시입니다. 요한 복음사가가 이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말씀(로고스)’ 찬가를 지었을 것으로 봅니다. 24장에는 이미 앞에서 다룬 모든 지혜의 특징이 종합되어 있으며, 창조주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서 지혜가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설명되어 있습니다. 잠언 8장처럼 의인화한 지혜는 인격적 모습으로 자신을 묘사합니다.

 

 

24,1 지혜는 자신을 찬미하고 자신의 백성 한가운데에서 자랑하리라. 2 지혜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모임에서 입을 열고 자신의 군대 앞에서 자랑하리라.

 

도입 부분에서 지혜는 두 번이나 자신을 자랑합니다. 지혜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입에서 나와 홀로 하늘의 궁창을 돌아다니고 심연의 바닥을 거닐고 모든 것을 다스립니다(24,3-6 참조). 만물의 창조주께서 “야곱 안에 거처를 정하고 이스라엘 안에서 상속을 받”(24,8)게 하십니다. 2-3절에 각각 언급된 ‘지극히 높다’는 말은 그리스어로 ‘휩시스토스(ὕψιστοϛ)’입니다. 이는 ‘휩소스(ὕψοϛ)’의 최상급으로 ‘가장 높은’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의 궁창’이라는 뜻으로 쓰인 그리스어는 창세기의 창조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창조 때 하느님께서 만드신 ‘궁창’(창세 1,6)과 의미가 다릅니다. 5절에 나오는 하늘의 궁창은 ‘퀴클로오(κυκλόω)’로 ‘에워싸다(surround), 두르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창세기에 묘사된 창공은 ‘스테레오마(στερέωμα)’로, 단단하면서도 평평하거나 둥근 천장 같은 하늘, 천공(天空 firmament)을 뜻합니다. ‘심연(深淵)의 바닥’은 ‘깊은 곳’을 뜻하는 그리스어 ‘바뛰스(βαθύϛ)’와 ‘끝없이 깊은 구렁’을 뜻하는 ‘아뷔쏘스(ἄβυσσοϛ)’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는 죽음과 악의 세계를 의미합니다(로마 10,7; 루카 8,31; 묵시 11,7 참조). 이러한 용어들로 봐서 지혜는 그야말로 천상천하를 다스리는 엄청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처를 찾던(24,7 참조) 지혜에게 하느님께서는 천막을 칠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이스라엘 안에서 상속을 받게 하셨습니다(24,8.12 참조). ‘천막’은 그리스어로 ‘스케네(σκηνή)’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여정 중에 당신의 현존과 영광을 드러내신 성막을 연상하게 합니다. 또 세상에 거처를 마련하고 사람들과 함께 살며 육화의 신비를 드러내신 예수님을 떠오르게 합니다(요한 1,14 참조).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씀이 육신을 취하여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우리 마음이 치료되었다고 했습니다.

 

 

24,12 나는 영광스러운 백성 안에 뿌리를 내리고 나의 상속을 주님의 몫 안에서 차지하게 되었다.

 

지혜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께 상속 재산을 받듯 주님의 몫을 차지하게 됩니다(에페 1,14.18; 콜로 3,24; 히브 9,15 참조). 주님에게서 거처와 상속을 받은 지혜는 특별한 본성과 위대함을 가지고 이스라엘 역사에 생명을 부여하고 번성시킵니다(24,13-17 참조). 지혜는 이스라엘, 특히 자신의 권세를 둔 예루살렘에서 힘찬 생명력을 지니고 아름답게 자라며 사방에 향기를 풍깁니다(24,11-15 참조). 이스라엘 전역에서 자라는 온갖 나무(향백나무, 삼나무, 야자나무, 올리브 나무, 플라타너스, 낙타가시나무)는 지혜가 이스라엘 땅에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는 의미입니다(24,13-15 참조). 여러 향료와 향기(아로마, ἄρωμα)는 주님 앞에 바치는 제물과 기도를 연상하게 하며, 지혜가 전례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24,15; 참조 탈출 30,23-24).

 

지혜는 찬란하고 우아한 가지에서 친절을 포도 순처럼 틔우고, 꽃을 피우고, 영광스럽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24,16-17 참조). 그 열매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아름다운 사랑과 경외심의 어머니요 지식과 거룩한 희망의 어머니다. 나는 내 모든 자녀들에게, 그분께 말씀을 받은 이들에게 영원한 것들을 준다”(24,18). 이 구절은 대중 라틴어(불가타) 성경에서 “내 안에 길과 진리의 온갖 은총이 있고 내 안에 생명과 힘의 온갖 희망이 있다”로 수정되었습니다. 이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는 예수님의 말씀을 반영한 듯하며, 지혜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그리스도교 사상을 반영합니다(《주석성경》 참조).

 

 

24,19 나에게 오너라, 나를 원하는 이들아. 와서 내 열매를 배불리 먹어라.

 

이제 지혜는 음식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초대하듯 자신을 찬미하는 사람들을 초대합니다(잠언 8-9장 참조). 지혜의 열매를 먹는 것은 영적 양식으로서 지혜를 차지하고 기억하는 것이며(24,20 참조), 하느님의 계약과 율법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24,23 참조). 그러나 먹을수록 배고프고 마실수록 목이 마릅니다(24,21 참조). 대개 꿀보다 달고 꿀송이보다 단(24,20 참조) 열매는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어집니다. 이러한 의미는 예수님에 의해 새롭게 바뀝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4,1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 6,54-55).

 

지혜의 근원이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잔치에 날마다 초대하시어 당신의 거룩한 양식을 먹고 마시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생명의 양식을 먹고 마시며 사람답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나에게 순종하는 이는 수치를 당하지 않고 나와 함께 일하는 이들은 죄를 짓지 않으리라”(24,22).

 

 

24,25 율법은 지혜를 피손 강처럼 첫 수확기의 티그리스 강처럼 흘러넘치게 한다.

 

저자는 지혜와 율법을 여섯 줄기의 강에 비유합니다. 곧 생명의 원천을 이루는 피손 강,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기혼 샘(창세 2,10-14 참조)과 이집트의 나일 강, 이스라엘의 요르단 강입니다(24,25-27 참조). 지혜는 자신이 강에서 끌어낸 운하이고 정원으로 이어지는 물길이며, 그 운하가 강이 되고 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24,30-31 참조). 율법이 지혜를 넘치게 준다는 것을 활기차고 생기 있게 비유합니다. 강과 물줄기가 땅을 비옥하게 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듯 집회서에서는 지혜와 율법(토라)의 관계가 잘 맺어져 있습니다. 저자는 말씀으로 전승된 지혜가 이미 율법에 담겨 있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또 다양한 이스라엘 전승을 통합하려고 시도합니다.

 

 

24,33 나는 가르침을 예언처럼 다시 쏟아 붓고 세세 대대로 그 가르침을 남겨 주리라.

 

이스라엘의 지혜 전승 과정에는 네 가지 흐름이 있는데, 토라 중심, 영(spirit) 중심, 묵시주의, 쿰란 공동체의 지혜 전통입니다(C. 벤네마). 전통(traditum)과 전승(traditio)은 의미상 다릅니다. 전통은 확정적 개념으로 오랜 역사 전승의 결과물이며, 전승은 유동적 개념으로 하나의 전통이 역사의 변천 과정을 겪으며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와 미래를 잇는 역동적 과정에 놓인 것이 전승입니다.

 

저자는 지혜 전승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현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언자처럼 가르침을 쏟아 붓고 세세 대대로 그 가르침을 남기려고 한 사람이었습니다(24,33-34 참조). 밤낮으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주님 안에서 참된 양식을 얻어 생명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음을 전해 주려고 한 사람이었습니다(시편 1,2-3 참조). 하지만 어느 누구도 지혜라는 대양(大洋)의 풍요로움과 깊음을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24,28 참조). 따라서 무한히 깊고 광대한 지혜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은, 주님께 온전히 의지하여 지혜를 얻고 자기 구원에 힘써야 한다고 일깨웁니다. “주님 안에서 끊임없이 강해지고 그분께서 너희를 강하게 하시도록 그분께 매달려라. 전능하신 주님 홀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 아무도 구원자가 될 수 없다”(24,24).

 

지혜가 우리 안에 거처를 마련하였듯, 우리도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팔을 활짝 벌리고 높이 달리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 안에 머물러야겠습니다. 심원한 지혜를 더 넓고 깊은 마음으로 깨닫기 위해서 말입니다. 다음 호에서도 집회서의 말씀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김경랑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이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삶의 현장인 수지 가톨릭성서모임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열매 맺으며 살아간다.

 

[성서와 함께, 2014년 4월호(통권 457호), 김경랑 귀임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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