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집회서 - 달인과 현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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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4 | 조회수4,540 | 추천수1 | |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집회서] 달인과 현인
요즘에는 획기적이고 창의적이면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이 크게 환영을 받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진 ‘달인(達人)’이라면 더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현인(賢人)’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인의 사전적 의미는 어질고 지혜롭기가 성인에 견줄 만큼 뛰어나거나 덕이 두드러지게 드러난 사람입니다.
44,1 이제는 훌륭한 사람들과 역대 선조들을 칭송하자.
집회서 저자는 42,15-43,33에서 경이로운 자연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마지막 부분(44,1-50,21 참조)에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빛나는 하느님의 지혜와 삼십 명 이상의 성경 인물이 나옵니다. 44,1-49,16은 거대한 딥티콘(diptychon: 중앙에서 접어 포갤 수 있게 경첩을 박아 댄 두 장의 판자)을 이룹니다. 이 부분은 에녹부터 느헤미야까지 과거의 위인들을 중심으로(44,16-49,16) 서술하되, 서언(44,1-15)에는 조상에 대한 칭송과 위인의 특징을, 결론(50장)에는 찬미와 축복의 기원을 기술합니다. 부록(51장)은 지혜와의 만남을 회고하는 감사 시편이며 훈계와 서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자 벤 시라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신앙의 영웅들과 함께해 오신 하느님의 가르침과 그 지혜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해 줍니다(시편 78; 105; 106; 135; 신명 32장; 느헤 9,5-37 참조). 저자가 묘사하는 역사는 계약의 역사가 아니라 지혜의 역사이며, 이 신앙의 조상들은 달인이 아니라 영웅이나 현인의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사람들”(44,1)이며 ‘자비로운 사람들’(44,10 참조)과 ‘경건한 사람들’(43,33 참조)로 묘사됩니다. 그들을 가리키는 말은 모두 히브리어 ‘헤세드(hesed)’에서 나왔는데, 이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히브리어가 ‘하시딤(hasidim)’입니다. 하느님께 충실한 이들을 가리키는(1사무 2,9) 하시드인은 마카베오기에 이스라엘의 용맹한 전사이며, 율법에 헌신한 사람이고, 평화를 모색한 사람으로 나타납니다(1마카 2,42; 7,13 참조).
44,16-49,16의 조상들에 대한 찬양에는 창세기의 인물인 노아,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그리고 이집트 탈출 시대의 아론과 피느하스를 거쳐 왕정 시대의 다윗까지 하느님과 맺은 일곱 번의 중요한 계약이 나옵니다. 이로써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고 이끄신 완전한 보호와 결속,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위상이 드러납니다. 저자는 대사제 시몬이 거행하는 제사의 화려한 묘사를 통해 이스라엘의 대사제가 드리는 경신례에서 계약이 실현되고 재현되어 왔음을 보여 줍니다(50,12-20 참조).
그리스 로마 문화는 신화적 영웅들, 자신의 자부심과 명예를 고취하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민족을 차별하면서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내세우는 데 이바지하였습니다. 집회서에서 묘사되는 선조들의 영웅담은 이러한 문화 배경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유다 민족 내에서 우월한 민족의식을 함양시키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부정적 여성관을 지닌 저자는 성경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드보라, 룻, 유딧, 에스테르 같은 여성의 영웅담은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네스 마르뵈크에 의하면 여성에 대한 저자의 부정적 관점(9,1-9; 23,22-26; 25,13-26,28; 41,21-22; 42,9-14 참조)은 여성에 대한 적대감이라기보다 지중해 문화에 만연하던 남성의 가치 체계(재산, 말, 가정, 성 등에 대한 여성관)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에 따른 지배권과 체면 상실에 대한 남자들의 두려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51,12 당신께서는 저를 멸망에서 구원하셨고 곤경의 날에 저를 건져 주셨습니다.
51장 부록 ‘시라의 아들 예수의 기도’에서 저자는 자신이 극심한 박해에서 구원받았던 일을 회고합니다. 저자가 겪은 고통스러운 박해 상황에 대한 언급은 집회서 전체의 부드러운 분위기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36,1-12 참조). 그는 중상하는 혀와 올가미, 거짓을 꾸며 내는 자들의 입술, 부정한 혀와 거짓말 때문에 큰 고난을 겪었다고 밝힙니다(51,2-6 참조). 본문 전체에 산발적으로 드러난 말에 대한 내용은 지혜롭지 못한 말에 대한 고통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르침입니다. 조상들에 대한 칭송 부분에서도 저자는 그 시대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물만을 골랐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시대의 요청에 따라 사제의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해 모세보다 사제직을 수행했던 아론과 대사제 시몬을 더 길게 언급합니다(45,6-22; 50,1-21 참조).
벤 시라는 무엇보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를 삶의 으뜸으로 여깁니다. 선조들의 칭송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경향은 그들이 하느님을 어떠한 방식으로 섬겼느냐는 것입니다. 위대한 다윗에 대한 내용만 보더라도 그는 누구보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추구한 사람이었습니다(47,5-10 참조).
47,2-5에 따르면 다윗은 달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자랑인 영웅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호소하고(47,5 참조), 모든 일을 하면서 거룩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영광의 말씀으로 찬미를 드리며,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한 현인이었습니다(47,8 참조). 그는 임금으로서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미하고 그 찬미가 이른 아침부터 성소에 울려 퍼지게 하였습니다(47,10 참조).
다윗이 주님을 경외하는 모습에 “지극히 높으신”(47,5.8)이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사용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어로 ‘휩시스토스(ὕψιστοϛ)’인데, 공간적 개념으로 ‘가장 높으신’이라는 최상급의 의미를 지닙니다. 5절에서 목적격, 8절에서 여격으로 쓰였습니다. 이러한 표현으로 다윗이 경외한 하느님의 절대 위상을 드러내고, 그러한 분을 섬긴 다윗의 위대함을 보여 줍니다.
24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지혜의 위대한 길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되고 우주와 이스라엘, 시온, 성전, 토라로 이어집니다. 집회서의 마지막 긴 단락에서 창조계에 현존하는 지혜(42,15-43,33 참조)와 이스라엘 역사(44-49장 참조)를 연결한 것은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집회서 저자 벤 시라가 묘사한 선조들의 모습은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위인들의 활동을 생생하게 회상시킵니다. 특히 의인의 묘사(44,4-8 참조), 달인의 경지에 이른 장인의 모습(38,24-34 참조), 율법 학자 현인의 모습이나 이상理想(39,1-11 참조)과 같은 위인들에 대한 훌륭한 기억은 지혜를 배우려는 학생들에게 민족 정신과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51,14 나는 성전 앞에서 지혜를 달라고 청하였는데 마지막까지도 지혜를 구할 것이다.
저자가 지혜를 열렬히 추구하는 모습은 지혜를 구하는 자세에서 잘 드러납니다. 32,14-16에서는 ‘찾는다’는 의미로 ‘우연히 발견하여 찾는다’는 뜻의 휴리스코(εὑρίσκω)를 사용하고, 51,14에서는 ‘조사나 탐색’의 뜻인 에크제테오(ἐκζητέω)를 사용합니다. 32,14-16에서 ‘찾음’에 대한 세 번의 언급 가운데 두 번은 하느님을 찾는 일이고 한 번은 율법을 찾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일은 율법 탐구자의 중요한 역할이며, 지혜를 추구하는 자세입니다.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행복과 지혜의 길은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50,28 참조).
저자는 지혜를 찾기 위하여 ‘배움의 집’에 묵으라고 권고합니다(51,23 참조). 배움의 집은 율법 연구에 전념하기 위한 장소를 가리키며 ‘가르침의 집(베트 미드라쉬)’이라 하는데, 유다 전통에서 처음 사용됩니다(《주석 성경》 참조).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을 찾던 첫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묵었고, 그곳에서 지혜의 원천인 메시아를 만났습니다(요한 1,39.41 참조). 메시아를 만난 제자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고 지혜로움을 마음에 간직했기에 주님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따른 제자들은 달인의 길이 아닌 현인의 길을 간 것입니다.
지금까지 1년 5개월 동안 지혜문학에 대하여 소개해 드렸습니다. 부족하고 미흡한 제 글을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김경랑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이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삶의 현장인 수지 가톨릭성서모임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열매 맺으며 살아간다.
[성서와 함께, 2014년 5월호(통권 458호), 김경랑 귀임마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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